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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장은 정치적 고려 대상이 아니다[맹정주의 좌충우돌]
맹정주 | 승인 2018.09.07 11:30

[논객닷컴=맹정주/ 블로그재정경제원(현 기획재정부의 전신) 국민생활국장을 할 때(1996년)였다. 국민생활국은 물가안정 정책을 수립하고, 물가관리 총괄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다. 물가관리는 재정경제원 국민생활국 몫이었지만 관련 통계 조사는 통계청에서 맡았다. 매월 발표되는 물가 관련 각종 통계는 통계청이 전담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물가안정’과 ‘국제수지 흑자’는 경제부총리가 가장 신경 써야 할 목표 가운데 하나였다. 물가가 예상보다 올라 물가안정 기조가 흐트러지거나, 국제수지 적자가 지속되면 부총리가 경질되곤 했다. 자연히 국민생활국장은 매월 발표되는 물가 통계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었다. 국민생활국장이 부총리에게 정부의 어떤 정책이 물가안정에 반한다는 의견을 내면 그 정책이 재고될 정도였다.

통계청의 물가통계가 발표되는 날이 다가오면 국민생활국은 바싹 긴장하곤 했다. 그러나 누구 하나 감히 통계청에 전화하거나, 조사결과를 미리 알아보지 못했다. 그런 일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엄두를 낼 수도 없었다. 그 자체가 금기시(禁忌視) 되는 일이었다.

ⓒ픽사베이

통계청 직원들도 물가는 국민생활과 직결되는 만큼 관련 통계를 정확히 조사, 작성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강했다. 통계청도 재정경제원 본부에서 통계조사 작성과 관련된 전화를 받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생각했을 것이다. 

통계청에서 물가 통계가 발표되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사무실 탁자 옆에 있는 거울을 통해 내 얼굴을 보니 머리에 갑자기 서리가 허옇게 내린 것 같았다. 그만큼 물가 통계 수치에 노심초사했었던 게 아닌가 한다. 그 때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날 이후 머리 염색을 시작했다.

통계와 관련된 또 하나의 사례.

중국의 리커창 총리가 랴오닝성(遼寧省)의 당서기로 일하던 시절, 그는 북경 주재 미국대사에게 중국의 GDP 수치는 ‘만들어진 것(manufactured)’이라고 실토했다. 전 세계적으로 의심 받던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2012년 중국 총리가 되기 2년 전이었다. 중국의 거의 모든 공식 통계수치는 신뢰에 문제가 있었다. 도시 실업률은 십여년 넘게 4.1% 수준이고, 베이징과 상하이의 물가상승률은 실제보다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리커창 총리는 미국 대사에게 중국의 모든 공식 통계들은 참고용이라고 말했다. 자기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D.C. McMahon, China’s Great Wall of Debt,2018. P.9~10). 

이렇게 각종 통계가 부풀려져 있거나 왜곡돼 있으니 중국인들은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중국의 통계를 믿지 않는 것이다.

정부가 지난 8월 말 통계청장을 경질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퇴임하는 청장은 “제가 말을 잘 들었던 편은 아니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새로 임명된 통계청장은 지난 5월 청와대가 보건사회연구원 등에 통계청 소득 관련 자료를 다시 분석하라고 했을 때, “통계청 표본에 문제가 있다”는 자료를 만든 장본인이라고 한다. 정부는 통계청장 인사와 관련하여 “통계청의 독자성에 개입하거나 간섭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했다. 신임 청장은 “통계는 특정한 해석을 위해 생산될 수 없다”고 했다. 제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몇 년 전 언론에 공무원은 혼(魂)이 없다는 취지의 기사가 실렸었다. 30년간 공무원을 한 나는 무척 자존심 상하고 모욕감을 느꼈다. 공무원은 혼이 없다니! 

그런데 이번 통계청장 경질 후 통계청 노조는 성명을 발표하고 국회에 가서 항의했다. 모처럼 보는 신선한 일이었다. 공무원의 혼이 살아있다는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는 통계는 각종 정책수립의 기초가 된다. 통계의 정확성을 유지하는 것도 국가의 기본 임무다. 통계가 정확하지 않으면 국민들의 신뢰는 물론, 국가의 대외신뢰도도 떨어지게 된다.
상급기관이나 정치권이 통계작성에 간섭하거나 통계의 왜곡을 시도해서는 안 된다. 

차제에 통계업무의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통계를 왜곡하려는 시도를 막는 장치를 도입하면 좋을 듯싶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고위 공직자들이 통계 조사와 같은 국가 기본 업무에 간섭하거나 왜곡하려는 마음을 가지지 않는 기본적 소양을 갖추는 일이다. 공직자가 신의성실의 원칙을 지키는 일은 기본 가운데 기본이다. 

 맹정주

  전 경제기획원 정책조정국장

  전 국무총리실 경제행정조정관 

  전 강남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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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정주  imjmae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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