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미의 집에서 거리에서]

[오피니언타임스=신세미] 어머니가 사는 아파트에 갈 때마다 베란다를 꼭 둘러본다. 베란다에 놓여 있는 크고 작은 식물들을 관상하는 즐거움도 크지만, 화초의 모습을 통해 어머니의 건강 상태를 어느 정도 미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화초들은 사계절 내내 한여름 녹음처럼 늘 싱그러운 초록이다. 잎에선 반짝반짝 윤기가 돈다. 우리 집에선 첫해뿐 이듬해에 다시 꽃을 보기 어려운 서양란이며, 키 큰 행운목, 영산홍 등이 어머니의 베란다 정원에선 십 수 년째 꽃을 피우며 거실까지 각종 꽃 향기를 내품는다. 1988년 하와이서 사온 손바닥 길이의 열대 식물의 한 토막은 30년간 베란다 천장 높이로 자랐고 줄기도 4대로 늘었다.

ⓒ픽사베이

원예에 재주가 있는, 식물을 잘 기르는 사람을 영어로 ‘Green Thumb’, 즉 ‘초록 엄지’라고 한다니(반대로 식물을 잘 죽이는 사람은 ‘Black Thumb’이란다). 울 어머니가 ‘초록 엄지’다.

집이 햇볕 잘 드는 남산 자락의 정남향 아파트 3층이기도 하지만, 팔십 대 중반의 어머니는 하루 일과 중 베란다에서 보내는 시간이 상당하다. 베란다 한 구석에 분갈이 흙, 원예용 삽 가위 등을 갖추고 수시로 잎과 가지를 정리하고, 거실 어항을 물갈이하며 나온 찌꺼기를 거름 삼아 화초의 생육에 정성을 들이신다.

어머니의 베란다 정원이 그렇듯 식물들은 봄이면 새순이 돋고 키도 쑥쑥 크는 것이려니 여겼다. 그러다 몇 년 전 어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으셨을 때다. 어머니 집 거실에 앉아 무심코 베란다를 내다보니 화초들이 영 시원치 않았다. 관엽식물의 잎이 아래로 처지고 누랬다. 사계절 꽃을 볼 수 있던 베고니아, 제라늄도 시들시들했다. 어머니가 편찮으시자 그 손길로 자라던 화초도 편치 않은 모습에서, ‘초록 엄지’인 어머니의 존재를 새삼 느끼게 됐다.

그 때 어머니는 이제 화분에 물 주기도 힘에 부치니 마음에 드는 화분을 집으로 갖고 가서 기르라고 하셨다. 베란다 정원에서 어머니와 화초이야기를 나누며 소소하지만 특별한 행복을 느꼈던 나로선 즐기던 화분 돌보기조차 힘드신 어머니의 건강 상태에 마음이 아득했었다.

그러나 다행히 심신의 건강이 호전되신 어머니는 요즘도 화초 잎이 맨질맨질하고 짙푸르게 잘 키우고 계시다. 엊그제 올 여름 너무 더워 그런가 선인장과(科) 식물의 잎이 뚝뚝 떨어지고, 제라늄도 영 시원찮다고 하시는 어머니 말씀에, 식물에 관심을 두실 정도면 건강에 큰 이상이 없으시구나 싶어 마음이 좋았다.

ⓒ신세미

어머니만큼은 아니지만 나 자신도 원예에 관심이 있어 9년여 마당 있는 1층 빌라에 살았다. 2년 전 이사하며 마당 있는 집을 구하지 못했다. 결국 차선책으로 옥외 베란다가 있는 빌라 7층에 살고 있다.

1층 살 때는 봄부터 가을까지 아침에 눈 뜨면 마당으로 나갔다. 꽃 시장을 드나들며 나리, 수국, 금낭화, 도라지, 여주, 패랭이꽃, 다알리아, 마가렛, 튤립이며, 작은 텃밭에 상추 고추도 심었다. 냉장고 냉장칸에 두었던 밤들에 흰 뿌리가 났기에 혹시나 싶어 마당에 심었더니 이듬해 싹이 텄고 그 중 십여 그루가 1m이상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다. 몇 년 전 큰 수술을 받고 퇴원한 다음날, 집 마당에 나가 나팔꽃을 옮겨 심었더니 딸이 신기했는지 그 모습을 찍은 사진을 가족 카톡 방에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집의 옥외 베란다에선 식물 가꾸기가 뜻대로 잘 되지 않고 있다. 큰 화분에 심었건만 수국, 작약, 국화가 첫 해엔 옥외서 겨울을 나더니만 지난 겨울엔 강추위를 이기지 못해 올 봄 더 이상 새순이 돋지 않았다. 7, 8월 폭염에 물주기를 소홀했더니 작은 화초들이 말라버렸다.

문득 어린 시절 방학 때면 찾았던 시골 할아버지 댁의 마당이 떠오른다. 어려서 뛰노느라 관심도 없었을 테지만 누군가 화초를 심고 돌보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건만 마당 곳곳에 감나무 석류나무 등의 나무 뿐 아니라 화초들이 무성했다.

비오는 날이면 처마 아래 낙수 지점을 비껴 나란히 꽃을 피우던 채송화를 비롯해, 과꽃 백일홍 봉숭화 접시꽃 오미자며 장독대 뒤의 키 큰 노란 꽃…. 시골집 화초들은 누가 돌보지 않아도 절로 피고 지는 것으로 알았던 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볼품없어진 시골집 마당을 보면서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장날이면 읍내 장터에서 마신 술로 불콰해져서 집 골목 어귀부터 서울서 다니러 온 손녀 이름을 크게 부르시던 할아버지가 집 안팎에 온갖 꽃나무를 심고 가꾼 ‘초록 엄지’셨다는 것을.

지독히 덥던 여름이 가고 한결 선선해진 9월로 접어들며 아침이면 베란다로 향한다. 지난 여름 친구네 주말 농장에서 얻어 화분에 심은 세 뿌리의 국화는 과연 어떤 색의 꽃을 피울까.

신세미

전 문화일보 문화부장.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서 기자로 35년여 미술 공연 여성 생활 등 문화 분야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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