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선의 컬처&마케팅]

A가 말했다. “책이나 쓰려고.”
내가 물었다. “책이나?”
“요즘 개나 소나 다 쓰잖아. 걔들 책 별거 없더라고.”
“요즘 책은 돈 안 돼. 그냥 강의 가서 재롱이나 떨어.”
대꾸는 이렇게 해줬지만 ‘개나 소나 다’, ‘별 거 없더라고’, ‘돈도 안 되고’... 이것들이 대체로 한국 저자들과 책의 현재 위상이다. 웃기게 슬프다. 그런데 책이 정말 개나 소나 다 쓰고, 돈도 안 되는... 아니 그런 것만이 책을 쓰는 이유일까?

ⓒ픽사베이

조지 오웰의 책 쓰는 동기

<1984년> <동물농장>을 쓴 조지 오웰은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에서 저자들이 책을 쓰는 동기를 네 가지로 본다.

1) 순전한 이기심. 남들보다 똑똑해 보이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죽은 후에도 기억되고 어린 시절 자신을 무시했던 어른들에 보복하고 싶은 욕망. 작가들은 대체로 저널리스트들보다 더한 허영과 자기중심주의를 갖고 있다. 2)미학적 열정.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 혹은 말의 아름다움과 말의 적절한 배열이 지니는 아름다움을 자각하기. 3) 역사적 충동. 사물/사건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한 사실들을 발견하며 후대를 위해 이것들을 모아두려는 욕망. 4) 정치적 목적. 세계를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욕망.

조지 오웰은 상황이 자신을 4)번으로 몬 것이지 평화 시대였다면 1,2,3)번 이유로 책을 썼을 거라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저자 성향이나 시대에 따라서 4가지 비중은 다를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필자는 감히 1번 이유 40%, 4번 30%, 2번 20%, 3번 10% 정도일 것 같다. 그래서 출판사들이 내 책을 선택할 때 ‘이건 정치 사회야, 경제 경영이야, 자기 계발이야?’ 늘 헷갈리게 만든다. 그런 필자에게 책이나, 개나 소나 운운은 참 웃픈 이유들이다. 그런 이유는 조지 오웰의 4가지 동기에도 들지 못한다. 그러나 그게 지금 한국에서 책을 쓰는 주된 이유다. 별 거 아닌데 잘 하면 돈이 좀 되지 싶은 것. 그런데 서점 핵심 매장 베스트셀러에 진열되어 있는 책들을 보면 실상이 또 그렇다.

그런데 그렇게 된 이유가 그들에게 있지 않으니 문제다. 방송에 나왔다고, 성공사례 하나 있다고, 어찌어찌해서 돈 좀 벌었다고 (부동산 투자로 대박쳤다는 새파란 강사가 출간 기념 강연에서 “책이요? 알아서 다 써줘요.”했다고 한다.) 출판사와 대필 작가가 달라붙고 그렇게 나온 책들이 대중에게 어필하고 그게 돈과 사회적 선망이 되고 그게 인생을 추동하는 가치가 되니까. 그러니 그렇게 말하는 A의 경박함은 무죄다. 그럼에도 A여, 조지 오웰이 말한 4가지 이유 중 하나로 책을 쓰기를 권한다.

ⓒ픽사베이

책 쓰기 건축학

한국은 그동안 배운 사람, 현장에서 뛴 사람들이 많아 이야기할 다양한 콘텐츠들이 과거 30년 전에 비해 훨씬 많아졌다. 그러니 말과 글로 세상에 자신을 내고 싶어졌다. 때는 바야흐로 가을이고 좀 있으면 겨울이니 오만 생각이 많이 들 때다. 책이나 써볼까, 개나 소나 쓰던데... 그런 용기도 날 만하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말하기, 글쓰기, 책 쓰기에 대해 말해볼까 한다.

건축학 용어로 말하자면, 말하기는 설계를 하는 것이다. 현실 건축에서는 불가능한 것도 말하기에서는 된다. 그래서 멋진 꿈을 감동적으로 표현할 수 있지만 그만큼 뻥&구름도 많다. 책이나 하는 사람들은 지금 머릿속으로 뻥을 설계하는 중일 것이다. 글쓰기는 방을 꾸미는 것이다. 연애편지나 신문 칼럼처럼 작은 용도를 정하고 그 칸을 잘 꾸미면 된다. 기분에 따라 다르고 감각적, 미시적일 수도 있다. 그에 반해 최소한 300P를 한 주제를 가지고 수미일관되게 채워야 하는 책 쓰기는 집짓기다.

방을 여러 개 모으면 집이 되는 것이 아니듯이 책도 칼럼 50개를 모은다고 되지 않는다. 집은 목적과 주인장의 취향을 설정하고 위치와 방향, 물길, 바람길, 사람 길을 보고난 후 전체 골조와 내구성을 정하고 방, 거실, 주방, 화장실, 쉼터와 조망대, 정원과 대문 등을 만든다. 책도 자신이 책 쓰는 이유와 독자의 결핍/왜곡/모순을 꿰뚫어 본 후 제목, 서문, 목차, 본문을 꾸미고 그 사이에 논증과 자료를 부은 후 자신의 개성, 우스갯소리와 에피소드, 위트 있는 소제목과 서체, 독서의 리듬감 등을 건축학적 이유로 넣는다. 시간도 집짓기만큼이나 많이 걸린다.

그래서 책은 전략, 구성력과 인내, 배려 등이 필요하다. 글쓰기는 약해도 좋은 책이 나올 수 있는 이유다.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는 ‘나의 소원’에 비해 글이 어눌하다. 문장가 이광수가 윤문을 했다는데도 좀 별로다. 내 기대가 컸을 수도 있고 꾸밀 줄 모르는 선생의 성향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려운 성장 과정과 노력, 시대를 보는 눈, 영웅 스토리라인, 진실함과 담담함, 시대의 잔혹함은 큰 생각꺼리를 준다. 그러니 작은 글을 못 쓴다고 책 쓰기를 포기할 일은 아니다. 나를 드러내고 세상을 바꾸고 싶은 자존감이라는 산이 하나 있다면 그 산에 올라 세상에 써라. 그러면 “내가 안 해서 그렇지 풀어 놓으면 책이 10권이야.” 그렇게 가슴에 할 말이 많고 경험과 지식이 많은 것 같아도 책을 써보면 그것이 모래알인지 반짝이는 유리조각인지 세상에 귀한 금강석인지 알게 된다. 그러니 자기 실력, 실체를 알기 위해서라도 써보라.

책 쓰기 4익(益)+1

필자는 글쓰기 책 쓰기로 덕을 본 사람이다. 처음 몇 번은 출판사에 망신도 당했다. 그 강을 건너면 새로운 길이 열린다. 그 길을 나만 알면 임무유기다. 그래서 최근 벤처프로그램인 ‘생각식당’을 통해 책 쓰기 메뉴를 만들어 놓고 책 쓰기 지도를 시작했다. 필자는 자기 콘텐츠가 없는 사람은 받지 않는다.

책을 쓰면 다음의 4가지 이익이 있다. ▲사회적 신뢰감이 올라감 ▲몸값이 올라감. 학사 학위자도 준(準) 박사 정도는 인정받음 ▲강의 기회가 만들어짐 ▲파편 같던 생각이 한 줄로 정리됨. 이건 사실이다. 그런데 이 4익은 요즘 시대의 니즈와 맞기는 한데 조지 오웰이 말한 1번 이유를 4개로 쪼개놓은 듯하여 좀 민망하다. 그래서 끝에 하나 더 보태고 싶다. ▲당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이 5의 이익이 단순-경박-실용 시대에서는 씨가 안 먹히는 소리일지라도 그렇다. 가을이다. 책 쓰기에 도전하자. 책 한 권 쓰려면 100권은 읽어야 하니 독서는 물론 필수다. [오피니언타임스=황인선] 

 황인선

브랜드웨이 대표 컨설턴트

2018 춘천마임축제 총감독 

전 제일기획 AE/ 전 KT&G 미래팀장
저서< 컬처 파워> <꿈꾸는 독종> <생각 좀 하고 말해줄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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