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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상(兼床)[신영준의 신드롬필름]
신영준 | 승인 2018.09.18 09:00

[논객닷컴=신영준] 기록적인 폭염을 강력한 태풍이 휩쓸고 지나가더니 이제 반팔로 다니기엔 추운 저녁이 왔다. 그리고 이곳저곳에서 곧 추석이 온다는 것을 체감하게 해준다. 뉴스에서는 시장 물가 이야기, 지인들과는 긴 휴일의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명절증후군이니 제사니 벌초니 자기 집안은 어떤지 토로하게 된다.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가던 중 생각하면 할수록 이상한 주제가 튀어나왔다.

“우리 집은 겸상 안 해.”

ⓒ플리커

누구도 정확한 규칙이나 이유는 모르지만 어떤 패턴이 있었다. 남자 어른들은 큰상에서 먹고 아이들과 여자들은 구석에 작은 상을 펴놓고 먹었다. 남자아이들도 어른들이 인정하는 일정한 나이가 되면 큰상에 합류했다. 그리고 여자 어른들은 혹여 큰상에 반찬이 떨어질까 불편한 것은 없는지 그 상을 주시하며 식사 도중에도 몇 번이고 부엌을 오갔다. 하지만 우리 중 그 누구도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냥 어른들이 그렇게 하니까 어른들의 말씀을 따라야 하니까. 그래서 이리저리 뒤져보니 조선시대에는 ‘부자간 겸상을 하지 않았고 남녀가 겸상을 하지 않았다.’ 이유는 없는 일종의 유교적 금기다. 오죽했으면 조선시대에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 패륜사건을 조사하던 중 부자가 겸상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아비가 얼마나 경우 없고 몰상식한 인물이었으면 아들과 겸상을 했겠느냐며 아들은 정상참작이 되어 감형을 받았다는 야사도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남녀가 겸상을 안 하는 행위는 정말로 악독하다. 공간 효율이나 시간분배를 위해 남녀 두 개조로 나누어 따로 식사를 한다는 합리적인 것으로 위장한 변명이 깔린 것도 아니다. 그 행위는 남존여비 사상에 근거한다. 여성들은 식사를 할 때도 사상에 의거하자면 존귀한 남성을 주시하며 그들이 무사히 마칠 때까지 수발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반찬투정 심한 아이들의 식사까지 챙겨야 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번 추석에 상을 구분해서 차리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집이 많을 것이다. 조선시대처럼 큰 상과 작은 상의 반찬의 종류가 다르진 않겠지만 일종의 관습이 되어 행해질 것이다. 그냥 쭉 그래왔으니까. 그것이 차별이라고 생각할 새도 없이 자연스럽게 말이다. 어떤 집안에선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 누군가 이에 문제를 제기한다면 불편할 것도 많다며 눈총을 받을지도 모른다.

긴 대화 속에는 남아선호사상에 관련된 이야기도 있었다. 뱃속의 아이가 딸이라는 것을 알면 지우라는 압박을 받았던 예전과 비교하자면 아무 것도 아닐지 몰라도 열 살도 안 된 지인의 동생이 한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다.

“엄마, 누나는 여잔데 왜 (용돈을) 나보다 더 많이 받아요?”

성별의 우위가 나이를 뛰어넘는 것이 당연한 저 아이는 저대로 자라서 어떤 남편이, 아빠가 될까? 그야말로 요즘 시대에 이런 집안도 있다. 몇몇 어른들과 또래의 남성들은 이미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집안의 큰 어른의 뜻이 그렇다면 자손들이 그 어른을 그 자리에서 끌어내린다거나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명절 음식 준비로 여자들만 일하기 바쁘다는 말이 오가는 차에 한 지인이 말했다.

“남자들은 벌초하잖아요. 그것도 일이죠 뭐.”

그녀는 결코 비아냥거릴 의도가 없어 보였다. 그저 하는 일이 다름을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만약 남성인 지인이 저 이야기를 했다면 그 대화는 아수라장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저 말을 기점으로 점점 대화는 소강상태가 되었다. 물론 아직 남존여비, 남아선호사상은 해결되지 않은 문제다. 그냥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따르며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도깨비방망이 두드리듯이 한 번에 뿅-하고 모든 것이 변하길 바라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 1908년, 서프러제트(여성참정권 운동가)들이 던진 돌이 런던 거리의 유리창에 닿았을 때 전 세계 여성에게 참정권이 생긴 것은 아니지 않은가?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서프러제트 운동은 계속되고 있다.

지금 당장 며느리에게 엄하고 무서운 할아버님 옆에 앉아 밥을 먹으라고 한다면 그리 편치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르신이 자상하고 배려 깊은 사랑스러운 사람이라면 기꺼이 옆자리에서 식사를 하고 싶을 것이다. ‘딸이 좋아, 아들이 좋아’의 문제가 ‘치킨은 프라이드다, 양념이다’ 하는 것처럼 불변의 진리는 없는 정말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는 개인의 취향 차이가 되길 바란다. 고집스러운 집안의 어른이 완고하게 버티더라도 옳은 것은 막을 수 없다. 앉아야 하는 자리가 아닌 앉고 싶은 자리에 앉아 밥을 먹는 풍경이 당연해지는 세상은 꼭 올 것이다. 

신영준

언론정보학 전공.
영화, 경제, 사회 그리고 세상만물에 관심 많은 젊은이.
머리에 피는 말라도 가슴에 꿈은 마르지 않는 세상을 위해...

논객닷컴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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