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렬의 맹렬시선]

[오피니언타임스=이명렬] 도시에 축제가 열렸다. 매년 장안동에서 열리는 세계 거리 춤 축제다. 1km가 넘는 자동차 도로를 막고, 춤을 주제로 한 다양한 행사를 한다. 자동차를 위해 만들어진 6차선 도로 위를 자유롭게 걷는 것은 색다른 재미다. 가족과 함께 저녁도 먹고 구경도 할 겸 축제 길로 향했다.

흥겨운 음악과 먹거리가 넘쳤다. 젊은이들은 긴 줄을 기다려 받은 푸드 트럭의 음식 사진을 SNS에 올리며 맛의 깊이를 태그 하느라 바쁘고, 노인들은 포장마차 파전과 막걸리 한 사발에 인생의 무게를 논하는데 바쁘다. 글로벌 축제답게 인도 탄두리 치킨, 터키 케밥, 중국 양꼬치도 등장하고 임실 치즈, 곰소 젓갈처럼 지역 특산물도 즐비하다. 고기 탄내와 향신료, 땀내가 뒤섞여 용광로처럼 부글부글 끓는다. 빈속에 역한 냄새지만 마냥 싫지만은 않다. 축제는 섞여야 제맛이다. 소맥이 더 빨리 취하는 것처럼 낯선 융합은 사람을 들뜨게 한다. 유모차를 탄 딸아이 손에 갓 구운 버터 새우 꼬치 하나를 쥐여주고 도로 중앙선을 걸었다.

“아빠! 나 이거 할래”

ⓒ이명렬

딸이 가리킨 곳엔 아이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모두 손에 뜰채를 들고 집중하고 있었다. 튜브 안에는 조그만 금붕어 떼가 가득했고, 아이들은 뜰채로 고기를 잡느라 야단법석이었다. 금붕어 건지기 놀이다. 뜰채와 고기 담는 대야 세트 하나를 빌리는 데 오천원이다. 뜰채로 수백 마리를 잡아도 되지만 두 마리만 집에 가져갈 수 있다고 했다. 계산을 하고 아이 손에 뜰채를 쥐여 주었다. 신이 나서 발을 동동 구른다. 서둘러 튜브 앞에 자리를 잡더니 연신 뜰채를 휘젓는다. 처음이라 손짓이 서툴다. 금붕어들이 약을 올리며 잽싸게 도망 다닌다. 한참을 뜰채와 씨름을 하더니 서서히 요령을 익힌 모양이다. 금붕어 밑에 뜰채를 살며시 집어넣고 구석으로 몰아세우더니 단숨에 집어 올린다. 금방 대야에 고기가 가득 찼다. 만선이다. 때마침 옆 무대에서 풍악도 울린다.

딸은 고기를 더 잡겠다며 의욕에 넘쳤다. 대야에 가득 찬 금붕어를 튜브 안으로 보내주었다. 금세 대야에 물고기를 가득 채웠다. 방생을 몇 차례 반복하다 보니 익숙한 녀석들이 보인다. 비늘에 상처가 나고 몸집이 작은 녀석들이 뜰채의 단골 손님이었다. 튼튼하고 재빠른 녀석들은 유유히 뜰채를 빠져나갔다. 움직임이 둔한 녀석들이 손쉽게 잡혔고, 상처는 계속 늘어만 갔다. 선명한 약육강식의 세계다. 딸 아이도 작고 느린 녀석들에게 싫증이 났는지, 좀 더 크고 빠른 놈들을 노리기 시작했다. 쉽지 않다. 수십 번을 허탕 치던 딸아이가 기어코 큼지막한 녀석을 잡아 올렸다. 아내와 함께 손뼉을 치며 축하했다. 대물 낚은 낚시꾼처럼 딸이 우쭐대는 표정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난다. 떠들썩한 도시 낚시를 한 시간 만에 마무리했다. 잡은 물고기는 애써 가져오지 않았다. 수족관도 없지만, 몸과 마음에 상처 난 녀석들을 가둬두고 지켜보고 싶진 않았다.  

ⓒ채널A

얼마 전 TV 채널에서 ‘도시어부’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큼지막한 대물을 낚아 올리는 짜릿한 손맛이 TV 너머로도 전해졌다. 갓 잡은 물고기를 손질하고 요리를 해서 먹는 출연진의 표정에는 뿌듯함과 자부심이 넘쳤다. 현대의 도시에는 음식이 차고 넘친다. 세네갈 갈치, 노르웨이 고등어, 캐나다 연어가 한 식탁에 오르는 세상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뱃멀미를 참아가며 힘들게 낚시를 하러 나간다. 인류가 농경 생활을 시작한 지는 고작 만년 정도이고, 이전 수백 만년은 오로지 수렵과 채집에 의존한 삶이었다. 낚시는 취미가 아니라 생존 수단이었고, 큰 고래라도 잡는 날이면 축제가 열렸다. 온 부족이 고래 고기를 나누어 먹으며 낚시꾼 특유의 허풍과 무용담도 오간다. 고래 사냥 그림을 바위에 새겨가며 풍성한 내일도 기약했을 것이다. TV 속 도시와 어부라는 이질적인 융합이 시선을 끈 것도 낚싯대의 팽팽한 긴장감과 먹거리 가득한 축제의 흥분이 우리 DNA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틀간의 춤 축제가 끝났다. 거친 본능이 끓어오르던 축제의 공간은 신호등과 교통법에 통제되는 지극히 사회적인 공간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뜰채 대신 스마트 폰을 들고 도로를 오간다. 이제 도시인의 생존 도구는 스마트 폰이다. 스마트 폰 만 있으면 음식을 구하고, 돈을 벌 수 있다. 하지만 돈이 전부는 아니다. 아프리카에 살던 초기 인류가 새로운 대륙으로 퍼져 나간 것처럼 모험과 일탈도 인류의 본능이다. 도시어부는 신도림역 안에서 스트립쇼를 하기 힘든 도시인의 일상에 새로운 일탈을 가져다준다. 손가락만 한 금붕어를 낚던, 사람 키가 넘는 대물 광어를 낚던 손끝의 짜릿함은 강렬하다. 설령 팍팍한 도시인의 하루 중 아무 것도 낚지 못해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오랜 본능에 충실한 것만으로도 축제를 열기에 충분하다. 도시어부의 삶에 축배를!

이명렬

달거나 짜지 않은 담백한 글을 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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