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기수의 중국이야기]

[오피니언타임스=함기수] 무려 30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다. 시골에서 같이 자란 친구가 부탁이 있다고 했다. 회사에 입사한지 3년 정도 지나 이제 막 사회의 분위기를 알아가고 있을 때였다. 그 친구는 의류 안감에 들어가는 직물 원단을 공급하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의류본부의 담당을 만나게 해 달라고 했는데 그는 마침 나의 입사동기였다. 별로 어렵지 않게 생각하여 그 친구와 함께 입사동기를 만났다. 그도 내가 입사동기인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있었음에도 그는 옆에 서 있던 친구에게 자못 고자세였다. 이미 접촉이 있었는지 ‘이런 가격으로 우리와 거래하길 바라느냐’고 몰아세웠다. 같은 회사로 들어왔음에도 입장은 참 많이 달라져 있었다. 거래선을 하늘처럼 모시는 부서에 있던 나는 정말 놀랐다. 같이 시험보고 입사해서 그저 부서 배치를 달리 받았음인데 그동안 커도 많이 컸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와 나는 안절부절하다가 그 자리를 뒤로 했다. 그 후 나는 다시는 그 입사동기를 만나지 않았다. 어렵게 살아보고자 했던 친구에게 나는 얼굴을 들 수 없었다.

호가호위는 어린이 동화책에도 나오는 ‘상식’이지만, 자기의 배경을 자기의 권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교보문고

온갖 짐승들을 잡아먹는 호랑이가 어느 날 여우를 잡았다. 죽음 앞에 이른 여우가 꾀를 내었다. ‘너는 나를 잡아먹을 수 없다. 천제(天帝)가 나를 백수의 우두머리로 삼았기 때문이다. 만일 네가 나를 잡아먹는다면 천제의 명을 거절하는 것이다. 만일 네가 나의 말을 못 믿겠다면 내가 앞장 설테니 네가 나의 뒤를 따라 오라. 그러면 모든 짐승들이 나를 보고 도망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여우의 말에 호랑이가 그렇게 하자 정말 짐승들이 여우를 보자마자 달아났다. 호랑이는 짐승들이 자기를 두려워해서 달아 난 것인지 모르고 여우를 두려워해서 달아난 것으로 여긴 것이다.

전국시대 초나라 선왕 때의 이 이야기는 중국 전한의 유향이 편찬한 ‘전국책(戰國策)’의 ‘초책(楚策)’편에 나온다. 당시 초나라는 삼려라는 세 집안의 세도가가 권력을 잡고 있었는데, 그 중 소씨 가문의 소해휼(昭奚恤)이라는 자가 그 중심에 있었다. 그의 전횡을 선왕이 걱정하여 신하들과 상의하게 되는데, 이 때 위나라 출신인 강을이라는 책사가 소해율의 전횡을 막고자하여 선왕에게 얘기한 우화이다.

‘지금 대왕께서는 오천리나 되는 넓은 영토와 백만의 대군을 소해휼에게 모두 맡기고 있습니다. 그러니 모든 나라들이 소해휼을 두려워하는 것은 사실 대왕의 군사들을 두려워하는 것이지 소해휼이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마치 온갖 짐승들이 호랑이를 두려워하듯이 말입니다.’ 결국 초선왕은 소해휼이 자신을 등에 업고 위세를 부리는 교활한 여우같은 자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사태 파악이 되지 않은 어리석은 호랑이 같은 임금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얘기이다.

재수 없으면 100세까지 산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지나치게 터무니없이 들리지만은 않는다. 평생 직업은 있어도 평생직장은 없는 시대이다. 강의를 계기로 직장인들을 만나는 기회가 종종 있다. 그럴 때 마다 그들로부터 진지하게 듣는 질문이 있다. 제2의 인생을 어떻게 준비하면 되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농담이지만, 공부 못하는 학생은 수학시간에 영어공부를 한다. 영어시간엔? 수학공부를 한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제2의 인생을 준비한다는 것은 자칫 수학시간에 영어 공부하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자신의 능력을 120% 발휘해도 될까 말까한 살벌한 경쟁터에서 사업구상이나 딴 생각을 한다는 것은 절대로 바람직하지 않다.

가장 좋은 준비는 사람을 사귀는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고 그렇게 얘기해 준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과 나의 배경을 통해 많은 좋은 사람을 사귀는 것, 이 사람들이야말로 제2의 인생을 위한 가장 든든한 배경이 된다. 그리하여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의 배경을 자기의 권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회사나 조직을 위한답시고 갑(甲)질을 하는 내 입사 동기 같은 사람이다. 우선은 굽히거나 잘 보이려고 할지 몰라도 그들이 굽히는 것은 그 사람이 잠시 거쳐 갈 뿐인 회사나 조직의 배경일 뿐이다. 거기에서 물러났을 때 깨닫는다면 이미 늦어도 한참 늦었다.

의외로 자기를 보고 절한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여우같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때로 언론에 회자되는 대리점에 대한 갑질 같은 일은 지금도 거의 매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웬만한 직장인들은 다 안다. 그들은 제2의 인생을 같이 할 훌륭한 동반자들을 스스로 내치고 있다. 언젠가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분의 애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은 상대방이 전혀 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할 줄 아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회사나 조직의 이해와 상관없이 무턱대고 사람을 사귀라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고 진솔하게 모든 사람을 대하라는 것이다. 최소한, 배경을 믿고 우쭐대는 여우는 절대로 되면 안된다.

 함기수

 글로벌 디렉션 대표

 경영학 박사

 전 SK네트웍스 홍보팀장·중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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