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의 글로 보다]

[오피니언타임스=김동진] 정부에서 새로운 부동산 정책을 발표할 때마다 현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요동을 친다. 9월 13일 종합부동산세(이하 종부세) 강화와 다주택자 주택 구매용도 대출제한을 골자로 하는 주택시장 안정대책이 발표된 이후 여론도 극명하게 엇갈렸다. 세금폭탄으로 안그래도 힘든 경제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고 종부세를 내야 될 정도의 자기소유 주택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종부세를 내는 것이 소원이라는 사람들도 있다. 새로운 부동산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나라 전체가 출렁이는 느낌을 받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이 ‘집’에 민감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픽사베이

과거 고등학교시절 학기 초에 작성하는 서류 중 본인 희망과 부모 희망을 적는 칸이 있었다. 문과와 이과 중에 선택해서 적는 것인데 부모 희망에 내 집 마련이라고 적혀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한국인의 내 집에 대한 열망은 강렬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집은 단순히 거주하는 곳이 아닌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지금은 아파트나 공동주택의 형태가 많지만 예전에는 단독 주택 안에 세를 들어 사는 경우가 많았다. 흔히 문간방이라고도 불렀고 엄연히 전세금을 내고 사는 데도 괜히 주인 눈치를 보게 된다. 같은 대문을 사용하는 경우 밤늦은 시간 드나드는 것도 눈치 보이고 주인집에 나랑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있으면 친구 사이인데도 묘한 권력관계가 형성되기도 한다. 어떤 경우 마치 그 집의 집사처럼 주인집의 허드렛일이나 집안 대소사에 동원되기도 한다. 그러니 너도 나도 그런 서러움에서 벗어나고자 내 집 갖기를 희망했다.

아파트가 보편화되고 대형 아파트 단지들이 조성되면서 생기는 풍경들도 있다. 같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도 자기보다 좁은 평수의 아이들과는 어울리지 말라고 하는 부모들도 있다. 어떤 아이는 친구 집에 놀러가서 친구 부모님에게 “이집은 몇 평이에요?” 라고 물어본다. 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옆의 공공임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자신의 자녀들이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것이 불쾌하다고 교육청에 항의하기도 한다. 실제 몇몇 대형 아파트 단지 안에는 그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만 다니는 초등학교가 존재한다.

‘소공녀’ 스틸컷 ⓒ네이버영화

얼마 전 영화 <소공녀>를 보았다. 주인공 미소는 가사 도우미로 일하며 받은 일당 4만5000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녀의 취미는 일과를 마치고 위스키 바에서 2500원짜리 담배(2014년 기준)를 피우며 1만2000원짜리 위스키 한잔을 마시는 것이다. 선천적으로 흰 머리가 나기 때문에 평생 꾸준히 약도 먹어줘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집주인이 월세 5만원을 올려달라고 한다. 해가 바뀌어 2015년이 되어 담배 값이 2000원 인상되자 미소는 4500원짜리 담배에서 4000원짜리 담배로 피우던 담배를 바꾼다. 담배를 끊으면 오른 월세는 감당할 수 있겠지만 그녀는 담배와 위스키를 포기하지 않고 집을 포기한다. 집주인에게 마지막 월세를 주고 자신의 살림이 담긴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대학시절 같이 밴드를 했던 멤버들의 집을 차례로 방문한다.

친구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한 친구의 직장으로 찾아간 미소. 친구는 점심시간에 휴게실에서 피로회복 링거를 맞고 있다. 그녀는 자신은 예민해서 옆에 누가 있으면 잠을 못 잔다며 하룻밤 또는 며칠만 신세지자는 미소의 제안을 거절한다. 또 다른 친구는 기꺼이 미소를 맞아주지만 그녀는 시험 준비를 하는 남편과 시부모님을 모시며 살고 있다. 다음으로 찾아간 남자 후배는 번듯한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결혼 8개월 만에 이혼의 위기에 처해, 쓰레기로 엉망이 된 집에서 혼자 살고 있다. 퇴근 후 방구석에 처박혀 혼자 술만 마시는 그는 대인기피증세에 시달리며 미소와도 문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눈다. 미소의 채근에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와 베란다에서 미소와 대화를 나누는데, 그는 아내는 떠나고 이 집만 남았다며 자기 월급이 190만원인데 대출이자로 한 달에 100만원씩 20년을 갚아야 이집이 자기 것이 된다고, 그때가 되면 이집도 낡을 거라며 울먹인다.

남편과 갓난아이와 대형저택에 살고 있는 한 여자 선배는 어차피 남는 방이 많으니 미소에게 편하게 있다 가라고 한다. 당분간 편하게 지낼 곳을 찾은 미소는 원래 피우던 4500원짜리 담배를 다시 피우며 오랜만에 찾아온 안정적인 생활에 만족한다. 하지만 평화도 잠시, 그녀는 집도 없으면서 위스키와 담배를 즐기는 미소를 비난하고 미소는 결국 그 집을 떠난다.

노총각 남자 선배의 집에서는 선배의 어머니가 미소를 극진히 대접한다. 선배 어머니의 작전(?)으로 둘은 한방에서 자게 되고, 선배는 침대에서 미소는 바닥에서 잠을 청한다. 선배는 미소에게 이왕 이렇게 된 거 너 집도 없다면서 그냥 여기에서 같이 살자며 결혼하자고 한다. 미소는 집은 없어도 생각이나 취향은 있다며 선배를 타박한다.

미소의 남자친구는 공장에서 일하며 웹툰 작가가 되길 꿈꾸지만 결국 꿈을 포기하고 월급을 3배나 준다는 사우디아라비아로 2년간 파견가기로 한다. 우리의 미래를 위한 거라며 설득하는 남자친구에게 미소는 나에겐 위스키와 담배, 그리고 너만 있으면 된다며 그게 나의 유일한 안식처라며 울먹인다. 영화의 마지막, 어느새 백발이 된 미소는 여전히 단골 바에서 위스키와 담배를 즐긴다. 위스키 값이 그새 2000원이 올랐지만 그녀는 기꺼이 가격을 지불하고 위스키를 홀짝인다.

미소는 집이 없지만 불행해 보이지 않는다. 친구들은 집이 있지만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미소는 자신의 생각과 취향을 존중하고, 열심히 일을 하며 그렇게 번 돈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돈을 쓴다. 물론 집을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들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생각과 취향이 존중받을 권리는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과 가족이 편하게 지낼 주거 공간을 원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집은 이제 더 이상 단순한 거주공간이 아니고 수익률 높은 투자 수단중 하나이다.

하루가 지나면 무섭게 가격이 오르는 집값. 그 속엔 어떤 생각과 취향이 담겨있을까? 당신에게 집은 무슨 의미인가요? 나에게 집은 무슨 의미일까? 집값 광풍 속에 새삼 집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요즘이다.  

김동진

한때 배고픈 영화인이었고 지금은 아이들 독서수업하며 틈틈이 글을 쓴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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