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따듯한 생각]

[오피니언타임스=김연수] 예쁘다는 말은 참 좋다. 기분 좋아지라고 하는 빈말일지라도 꽤 가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예쁨을 평가당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예쁨에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 각자가 예쁘다고 느끼는 부분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시대에 따라 마른 몸매, 쌍꺼풀이 있는 큰 눈, 하얀 피부 등등 사람들이 예쁘다고 느끼는 외적 요소는 쉬지 않고 바뀌어 왔다. 예쁨의 유행에 우리는 계속해서 탈바꿈해야 했다. 그게 자의인지 타의인지도 모른 채로 말이다.

ⓒ픽사베이

어린시절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내가 좋았다. 승부욕 강한 성격, 까만 피부, 부스스한 곱슬머리까지 늘 자랑스러웠다. 얼굴에 아무리 여드름이 나고 앞머리가 기름져도 나 자신을 사랑했던 시절이다. 그러나 뜨거운 여름 철없는 아이들이 적은 한 장의 종이는 자존감과 자기애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이동수업을 마치고 반으로 돌아와 무더위에 교복 셔츠를 펄럭이고 있을 때였다. 깨알 같은 글씨가 적힌 흰 종이가 교실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소란스러운 쉬는 시간, 그렇게 나는 혼자 그 종이를 집어 들었다. 맨 위에 큰 글씨로 2학년 4반 외모순위라고 적혀 있었다. 남자아이들이 모여 얼굴과 외모를 평가한 것이었다. 서로의 의견이 꽤 엇갈렸는지 급히 볼펜으로 엑스 표시를 한 것도 보였다. 순위변동도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괄호를 치고 왜 순위를 차지했으며 어디가 예쁜지도 적나라하게 적혀 있었다. 꾸미고 다니지 않던 나는 하위권이었고 얼굴과 몸매에 대한 평가도 빠지지 않은 상태였다. 상당히 치욕스러웠고 수치스러웠으며 난생처음 느껴보는 극도의 모욕감에 치를 떨었다. 아무도 이 종이를 보지 않았길 바랄 뿐이었다. 다른 이에게 내가 느낀 감정을 토로하지 않은 채 그해 여름이 지나갔다.

누군가를 평가하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 사건 이후 겉모습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안경 대신 렌즈를 끼고 서툴게 화장을 해도 아직 예쁘지 않다는 생각만 들었다. 우울감 속에서 나 자신에 대해 만족하지 못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이 나만 겪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종이에 적혀 있는 다른 여자아이들 모두, 그리고 언젠가 뜻하지 않는 비슷한 상황에 놓일 또 다른 사람들이 염려되었다. 생각하지 않고 내뱉는 말에 더 이상 상처받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가늠할 수 없이 바닥으로 내려치는 자존감을 붙잡기 위해 노력했다. 예쁘다는 기준을 내가 직접 세웠다. 단 한 사람이라도 날 예쁘게 생각한다면 무조건 예쁜 것이라고 간주했다. 내 가족들, 나의 친구들을 비롯해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애정을 쏟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다.

때때로 생각한다. 과연 그 종이는 악의가 조금도 없었을까.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타인의 미적 잣대는 배려 없이 너무나 무례하게 우리의 삶 속에 끼어든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옭아매거나 괴롭힐 수 없다고 날마다 되새긴다. 우리는 우리다울 때 가장 예쁘게 빛나기 때문이다. 세상에 예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특히 어느 순간 더 예쁜 사람만 있을 뿐이다.

김연수

제 그림자의 키가 작았던 날들을 기억하려 글을 씁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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