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규의 하좀하]

[오피니언타임스=한성규] 9월26일까지 5일이나 쉰단다. 뭐라고? 원래 추석이 이렇게 길었나? 대체휴일이라고? 대체 이런 건 또 언제 생겨났지? 내가 일할 땐 없었는데.

어차피 토토토토토토일인 백수들에게는 상관없는 일이다. 명절이다. 본격적인 친척들 개소리의 시즌이 돌아왔다. 개소리라는 것은 할 말이 없을 때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말이라고 정의한단다.

백수에게 휴일이라는 건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날이지만 명절은 아주 특별하다. 바로 친척들의 참견잔치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보는 친척들이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고 던지는 소리가 백수들에게는 다음과 같이 들린다. 다음은 내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하지만 내뱉고 싶은 대답이다. 백수를 친척으로 둔 사람들에게 말조심하라는 말이나, 개소리 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고 그냥 알아두셨으면 하는 바람에서 쓰는 글이다.

Ⓒ픽사베이

1. 요즘 뭐하니? -> 알면서 왜 묻냐. 논다, 왜?
2. 이제 어쩔래? -> 어쩌긴, 뭘?
3. 어서 취업이 되어야 할 텐데. 쯧쯧쯧. -> 나는 걱정 안하는데 니가 왜?
4. 요즘 취업시장이 어렵지. 이게 다 XXX때문이야. -> 나는 남 탓 안한다. 취업이 안 되는 것은 개인의 문제지 정치나 경제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에 취업하는 사람이 0명이라면 나도 XXX탓을 할 거다.
5. 어디라도 일단 들어가서 생각해라. 이건 현실적인 조언이야. -> 시끄러우니까 니나 화장실이든 어디든 현실적으로 어디 좀 가라, 제발.
6. 공부 잘한다더니 왜 이렇게 되었니? -> 내가 어때서? 학교 다닐 때 공부는 안하면 안 될 것 같아서 했지만 취업은 안 해도 괜찮은데 왜 니가 참견이냐.

미국 프리스턴대학교의 철학과 명예교수 헤리 G. 프랭크퍼트는 <진리에 대하여>, <불평등에 대하여>, <필연성, 의지, 그리고 사랑> 등등의 어려운 책들도 썼지만 개소리가 만연한 현실에 분개해 개소리 연구에 들어갔단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끝에 불멸의 역작 <개소리에 대하여>라는 책을 펴냈다. 책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우리 문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개소리가 너무도 만연하다는 사실이다.” 영미 권은 추석이나 설날은 없지만 크리스마스가 있다. 내가 살던 뉴질랜드도 크리스마스 때 고향으로 가는 차들 때문에 도로가 몸살을 앓고,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이나 가족 간의 싸움, 시댁이나 친정집에 같이 가기 싫어하는 커플들의 싸움이 일어난다.

지난 명절 때 개소리에 속절없이 당한 나는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하면서 개소리 잔치를 참아냈다. 길을 가는데 똥개가 왕왕, 짖는다고 해서 나까지 바닥에 엎드려서 으르릉 왕왕, 하고 짖을 수는 없질 않나? 나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이 책을 읽고는 마냥 개소리를 피하는 것만이 상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랭크퍼트 교수는 개소리장이들의 특징은 자기가 하는 말이 맞든 틀리든 그 진릿값은 그들에게 중요 관심사가 아니라고 한다. 즉, 우리가 취업을 하든 못하든 그건 그 사람들에게 하나도 중요한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냥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목적, 즉 그냥 아무 말이나 지껄이기 위해서 개소리를 하는 것이다. 프랑크퍼트 교수에 따르면 우리의 위대한 개소리장이 친척들은 그냥 할 말이 없어서 아무 이야기나 끄집어내는 것인데 그게 취업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취업을 했으면 또 결혼은 왜 못하느냐고, 결혼을 했으면 또 아기는 왜 못 낳느냐고 지껄일 거라는 것이다.

프랑크퍼트 교수는 어쩔 수 없이 개소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딱 한 가지 있다고 하면서 글을 끝맺는다. 자신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데도 말을 해야하는 경우가 그렇다고 한다. 예를 들어 정치인이 자기도 모르는 정책에 대해서 갑자기 인터뷰 요청을 받았을 때가 그렇다. 국회의원의 한 사람으로서 그 정책을 만들 때 투표는 한 거 같은데,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 개소리를 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나도 내가 왜 1년 넘게 놀고 있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가 백수 짓을 그만두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개소리 하나하고 이 글을 끝맺고자 한다. 이제껏 학교나 직장에서 남들이 정한 성공이라는 목표만 보고 최단거리로 달려왔던 나는 지금 최대한 돌아가기를 연습하고 있는 중이다. 인생은 길고 성공이라는 것도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남이 정한 기준에서의 성공이 아니라 내가 만족할만한 성공으로 가는 길을 혼자 걸어가고 있다. 최단거리로 뛰어갈 게 아니라 여러 경우의 수를 다 건드려보면서 갈 생각이다. 그렇게 해야 소년검사로 성공해서 달리고 달리다 선배고 후배고 뭐고 다 무시하고 눈에서 레이저 쏘면서 내달리다가 감방에도 제일 먼저 들어가는 수모를 겪지 않을 것 같아서다.

성공으로 가는 여러 경우를 다 경험하고 돌아가서 성공에 안착해야 훗날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슬기롭게 해쳐나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인생은 길고, 양 옆 앞 뒤 다 무시하고 한 방향으로만 질주하기에는 주변에 아름다운 것들이 너무 많이 널려 있으니까.

한성규

현 뉴질랜드 국세청 Community Compliance Officer 휴직 후 세계여행 중. 전 뉴질랜드 국세청 Training Analyst 근무. 2012년 대한민국 디지털 작가상 수상 후 작가가 된 줄 착각했으나 작가로서의 수입이 없어 어리둥절하고 있음. 글 쓰는 삶을 위해서 계속 노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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