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화의 요즘론]

일반화와 혐오

[오피니언타임스=허승화] 무지의 무서움은 제대로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고 무작정 어떤 대상을 미워할 때 나타난다. 인종차별주의자가 무서운 건 그들이 누군가를 위협할 힘을 가져서라기 보다는 맹목적이기 때문이다. 조선족에 대해서 한국 영화가 다루는 방식은 완전히 인종차별적이다. 주기적으로 고개를 드는 반공 프레임만큼이나 문제 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흥행했던 두 영화 <청년경찰>, <범죄도시>는 각 영화가 그린 국내 중국동포 사회의 모습으로 인해 재한조선족 단체로부터 항의와 성명을 받았다. 사실 이 사안은 비단 두 영화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 몇 년간 개봉했던 <신세계>, <차이나 타운>, <황해> 등의 영화는 조선족에 대한 제한되고 일관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다. TV프로그램을 조금 봤다하는 사람들은 다들 영화 <황해>에 등장한 조선족의 말투를 따라하는 개그맨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최근에는 <범죄도시> 속 캐릭터인 장첸의 조선족 말투를 따라하는 성대모사가 여러 곳에서 두루 인기를 얻고 있다. 이렇듯 영화는 상당한 대중적 파급력을 가진 매체다. 따라서 영화창작자들은 자신이 무엇을 다루고 있는지 잘 알아야만 한다. 이만한 파급력을 지닌 매체를 다루면서 자신들이 쓰는 소재의 무거움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영화 '범죄도시' 스틸컷 Ⓒ네이버영화

지금은 이야기를 만드는 자들이 무작정 재미만 쫓아서는 곤란한 시대다. 앞서 언급한 영화들 대부분이 19세 이상 관람가인 작품이지만 별 제동장치 없이 청소년들에게 흘러가버리고 있다. 또한 갓 어른이 된 청년들 역시 편향된 정보에 취약한 계층인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니 창작자 차원에서의 경계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공산국가처럼 검열을 할 것도 아니고 무 슨 수로 혐오의 확산을 막는단 말인가. 이대로 놔두면 분명히 나쁜 쪽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문화를 통해서 흘러들어간 정보가 비교적 의심과 비판에서 자유롭다. 문화적 매체에서의 일반화는 ‘한 사회에 속한 어떤 민족’을 나쁜 쪽으로 매도할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진다. 아주 인기 있는 미국 드라마에서 한인에 대해 그릴 때 한국 조폭만을 걸고 넘어지면서 나쁘게 다뤘다고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조선족 혐오

혐오는 단어의 무거움에 비해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는 단어다. 그렇게 생활에서 먼 단어가 아니다. 여성 혐오, 남성 혐오 등은 이제 신문 기사의 단골 소재다. 고령층을 중심으로 한 한국인의 외국인 혐오는 상당히 뿌리깊다. 우리가 혐오라고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그러나 혐오를 갖고 있는 당사자가 인식하지 못한다고 해서 혐오가 혐오가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다. 조선족은 다른 외국인에 비해 지리적, 역사적, 문화적으로 한국인에 가장 가까운 외국인이다. 게다가 타국 외국인에 비해 국내에 정착한 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났다.

국내 외국인 노동자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조선족. 이들에 대한 혐오가 오랫동안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일부 네티즌은 이렇게 말한다. “조선족 극혐이다, 겪어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말라”고. 그런데 세상에는 이렇게 말하는 이가 있을 수 있다. “한국인 완전 극혐이다. 겪어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마라.”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전자는 무엇이라 대답할까?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네가 모든 한국인을 다 겪어봤냐?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이 대답을 듣고 나선 이제 분명하게 알게 될 것이다. 조선족(을 혐오하는 줄도 모르는) 혐오자들이 빠져있는 자가당착의 오류에 대해서.

국수주의와 조선족 혐오는 분명히 연결되어 있다. 조선족은 그 어떤 외국인보다 문화적으로 가까운 외국인임에도 가장 철저하게 타자화된다. <범죄도시>, <청년경찰> 뿐만 아니라 수많은 한국영화 속에서 조선족은 같은 인간으로 다뤄지기 보다는 설화에나 등장할 법한 금수 같은 존재로 다뤄진다. “과연 저들에게도 영혼이 있을 까?” 싶을만큼 단선적으로 잔인한 모습의 조선족만이 영화 속에 등장한다. 이것은 혐오를 넘어선 무시에 가까워보인다. 같은 인간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의심될 정도다.

나는 언젠가 이런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한국에서 한국어로 된 문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조선족 청년. 그리고 늘 웃는 얼굴로 일하시는 조선족 여성분들. 그들도 우리와 비슷하게 자기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부모이고 부모의 뒷바라지를 받는 자식이다. 또한 한국에서 소비하고 경제활동을 하는 노동자이며 소비자다. 국적 및 모든 것을 떠나서 그들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요구하는 경제 참여 인구라고 먼저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릴 적에 만주로 피난을 가셨던, 우리 할아버지도 조선족이 될 수 있었다. 아마 상당수의 한국인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북한, 조선족이 현재 차지하고 있는 땅과 연관성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외국인보다는 당연히 문화적, 역사적 맥락에서 한국과 연관이 깊은 민족이다. 그리고 정말로 어떤 이들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기도 하다.

얼핏 들으면 독립운동가, 이산가족, 조선족은 모두 결이 다른 단어처럼 느껴지지만 저 세 단어에 모두 해당하는 사람도 있다. 중국 국적을 가지고 한국어를 쓰는 독립운동가 후손은 실제로 존재하는 집단이다. 그들은 외국 국적을 지녔음에도 역사적 맥락에 따라 한국인에 가까운 애국 의식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이런 집단 역시 조선족 내에서는 소수다. 이들의 상황을 조선족 전체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한국인 중에도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양하듯이, 다양한 사람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싸잡아 욕해선 나아질 것이 하나도 없다. 어찌됐든 한국인들은 고려인이나 재미동포들보다 조선족에게 유독 가혹한 경향이 있다.

점점 한국 내 조선족 인구수는 늘고, 그에 따라 부끄러움을 모르는 혐오적 발언들이 고개를 내민다. 그들이 중국인이 아니라는 것이 아니고, 동포라고 감싸달라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가만히 있는 조선족마저 싸잡아 욕하는 것은 한국인들 얼굴에 침 뱉기 아니면 뭐란 말인가. 우리는 우리 중 상당수가 혐오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정확히 알아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이 이 시대의 문화인으로서 그리고 세계시민으로서 우리가 당면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허승화

영화과 졸업 후 아직은 글과 영화에 접속되어 산다. 
서울 시민이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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