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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생각과 취향을 지켜주는 ‘기본 소득’[박정애의 에코토피아]
박정애 | 승인 2018.09.27 10:29

[논객닷컴=박정애] 영화 ‘소공녀’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집은 없어도 나에게도 생각과 취향이라는 것이 있어.”
비단 집뿐만 아니라 직업도 돈도 그 어느 것도 없지만, 나의 생각과 취향을 지킬 수 있게 해 주는 제도. 그런 사회는 정말 불가능한 걸까?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최고 경영자), 일론 머스크(테슬라 최고 경영자) 등 실리콘밸리의 성공한 사업가들 사이에서 ‘기본 소득(재산, 노동과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무조건 지급하는 소득)’에 대한 얘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그들이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이유는 이제 곧 도래할 AI 4차 혁명 시대에는 실업자가 넘쳐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실업을 구제하고 실업에 빠진 이들이 좀 더 창의적인 미래를 모색할 수 있는 안전망을 구축해주자는 것이 바로 ‘조건 없이 기본소득’의 취지이다.

하지만 이 같은 취지 이전에 인권을 실현하기 위한 가장 필수 조건이 바로 무조건적인 기본소득 보장이 아닐까 싶다.

ⓒ픽사베이

문제는 이 정책이 실현된 나라는 지구상에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물론 다양한 시도와 실험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스위스에서 전 국민 월 소득 300만 원 지급과 관련된 국민 투표가 실시됐지만 부결됐다. 금액이 지나치게 높아 재원 마련이 어렵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반면, 알래스카에서는 석유 생산으로 획득한 이득을 전 국민에게 월 30만 원씩 나눠주고 있지만 이 금액은 그야말로 최소 생계비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기본 소득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럼 어느 정도가 가장 적정한 기본 소득 금액일까? 필립 반 파레이스 벨기에 루뱅대 교수(67)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10~15% 정도가 타당하다고 말한다.

이 외에도 핀란드나 캐나다 미국에서 경제 수준이 열악한 하층민들을 표본으로 뽑아 4년 혹은 6년을 기한으로 적은 금액의 기본 소득을 제공하는 실험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완전한 기본소득은 아니다. ‘무조건이라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소득, 기본 소득. 그런데 이 정책이 실현되지 못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대규모 실업으로 경제 성장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실시됐던 것이 ‘생산적 복지’였고 그 일환으로 주어진 것이 바로 실업급여 제도였다. 하지만 이런 조건부 복지는 당사자를 조급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자괴감이나 열등감에 빠져들게 하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 아닌 저임금의 원치 않는 직업으로 몰아넣는 상황을 만들고 만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여러 나라들의 실험 결과를 보았을 때 기본소득이 주어진다고 해서 곧 바로 실업을 선택하는 사람은 극소수였고 그 또한 모두가 회피하는 3D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기본소득 제도는 한 인간이 자신의 생각과 취향을 고려한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시간과 선택권을 보장해주는 제도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럼 힘든 일은 누가 하느냐고 물을 것이다. 그렇다면 힘든 일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회적 약자가 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힘들고 어렵고 더러운 일은 전 국민이 나누어서 하면 된다. 그리고 기본소득 보장으로 그런 일을 하려는 사람이 없다면 그 일의 임금은 높아질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고강도 노동일수록 고임금자가 되는 정의 실현의 촉매제 역할도 하게 되리라고 본다.

또한 성장만이 옳은 것인지, 일하는 것만이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성장은 필연적으로 경쟁과 치열함을 내포하고 있는데 이것이 맞지 않는 사람에게는 고문일 수밖에 없다. 경쟁과 치열함이 아닌 협력과 돌봄을 선택하고 싶고, 열외 인간으로서의 자유를 누리고 싶은 예술가나 철학자 종교 종사자들에게도 그들의 생각과 취향에 맞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져야 하고 이를 보장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기본소득인 것이다.

이러한 제도가 실현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어떤 존재도 사회에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이 사회에 보탬이 되고 있다는 범국민적 합의라고 본다.

기본소득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본소득을 바탕으로 사회에 보탬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응답하는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세금은 내지 않고 혜택만 누리려는 이기적인 인간이 난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즉, 전 국민 기본 소득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또 하나의 걸림돌이자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재원 마련이다. 재원 마련의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가장 좋은 것은 세금을 통한 것이다. 누진세, 재산세, 사치세, 토지세 등 중산층을 넘어 최고 부유층들의 세금이 그 재원 마련의 기반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전 국민에게 어느 정도의 소득을 보장해주는 것이 결국 소비를 활성화시켜 대기업 제품의 소비나 문화 소비 등 전반적인 소비 흐름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고 이로 인해 최고 부유층들이 그들의 부를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는 인식이 먼저 확고히 자리를 잡아야 할 것이다. 이 외에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는 ‘대변’을 바이오 에너지화해 기본 소득으로 제공하려는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시간 부자로 살고 자신의 생각과 취향을 지킬 수 있는 사회. 앞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이를 위한 제도가 지구 곳곳에서 시도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성남시 청년 배당(만 24세 청년들에게 매년 100만 원의 청년 배당 지급)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올해 지방선거에서 제주도 도지사 후보로 나온 고은영(제주 녹색당)씨도 제주 관광 소득을 제주 도민에게 배당해주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큰 호응을 얻었다.

무조건 전 국민 기본소득 보장. 이를 실현해 내는 그 첫 번째 국가가 대한민국이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세계 어느 국민보다 치열하게 살아왔기에 나만의 시간, 나만의 취향과 생각을 지키고 싶은 열망이 가장 뜨거우리라고 본다.  

 박정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수필가이자 녹색당 당원으로 활동 중.
숨 쉬는 존재들이 모두 존중받을 수 있는 공동체를 향해 하나하나 실천해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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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애  bock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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