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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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아침부터 울리는 사이렌 소리. 출동한 경찰이 집 앞에 주차한 뒤 노크를 한다. 정신없이 눈을 뜨고 정면을 바라보니 아이가 환하게 웃고 있다. 얼마 전 사준 장난감 경찰차를 유독 좋아하는 아이는 쉴 새 없이 사이렌 버튼을 누른다. 사실은 내가 의도한 것이다. 아이의 첫 장난감이 캐릭터 경찰차인 것도, 사이렌 소리가 나는 모형차를 사준 것도.

“오빠, 경찰차는 있는데 또 사줘?”
“응, 다양한 종류의 경찰차를 사주고 싶어”

처음에 아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지금은 이런 나를 내버려둔다. 고등학생 시절 3년간 장래희망을 ‘경찰’로 표기했던 나의 열망(熱望)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못 다 이룬 꿈을 11개월 된 아들에게 부지런히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대화가 불가능하니 그저 경찰문양과 사이렌 소리에 익숙해지길 기대할 뿐.

얼마 전에는 지방경찰청에 탐방을 갔다. 비가 와서 구석구석 함께 돌아보진 못했지만 방문자 기념서명을 하고 왔다. 아이 이름을 큼직하게 써놓고 흐뭇한 미소와 함께 기념사진까지 촬영했다. 그리고 자치분권의 일환으로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자치경찰제’ 도입 계획을 살피는가하면 관련 논문도 빠지지 않고 정독하고 있다. 이 정도면 경찰이라는 직업에 대해서 오류 없이 설명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거 아닐까.

어느 날 다함께 TV를 시청하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왔고 아들은 환하게 웃으며 양손을 하늘 위로 올리고 엉덩이를 실룩거리기 시작했다. 아이는 어느 때보다 행복해보였고 그의 표정과 몸짓이 생생하게 내 기억 속으로 스며들었다. 세상에는 사이렌 보다 흥겨운 소리가 많았다.

이토록 흥이 많은 아이에게 한 가지 직업만 권하는 것은 폭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머릿속에 경찰제복을 입은 아이의 모습을 급히 지우고 백지 위에서 뛰노는 가능성을 상상했다. 그는 존재 자체가 가능성이었다. 그리고 사이렌 소리는 가능성 위에 놓여 있는 하나의 희미한 물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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