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김호경 현대인 고전 읽기
비 내리는 뉴올리언스의 오후를 좋아하시나요[김호경의 현대인의 고전읽기]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
김호경 | 승인 2018.10.05 10:41

<나폴레옹 법전>의 신봉자

그의 말에 의하면 루이지애나 주에는 <나폴레옹 법전>이라는 것이 있다. 그 법전에 의하면,

“아내 껀 내 꺼구, 내 껀 아내 꺼지.”

몇 조 몇 항인지 알 수 없으나 스탠리가 이 법전을 들먹이는 이유는 아내 스텔라의 미상속분 유산이 혹시라도 남아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 때문이다. 남부 대농장의 딸이었으므로 분명 유산이 조금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유산을 차지하려는 속셈이다. 그러나 처형(妻兄) 블랑쉬는 “남아있는 것은 묘지뿐”이라고 냉소적으로 알려준다. 급기야 양말 속을 뒤집어 보여주듯이 가방을 홀랑 뒤집어 서류를 전부 쏟아낸다.

여기 다 있어요. 서류 전부! 이제 전부 당신한테 주는 거예요! 그걸 갖구, 낱낱이 보구 ― 모조리 외우라구요!

만약 블랑쉬가 조금의 땅덩이나 건물, 돈을 가지고 있었다면 스탠리는 아내의 언니를 그리 차갑게 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융숭하게 대접했을 것이며, 언니나 동생 모두 불행으로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돈(재산)이 있었다면 더 큰 불행이 닥쳐왔을지도 모른다. 두 여자와 한 남자는 유산을 두고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벌였을 것이므로.... 어느 경우이든 블랑쉬의 운명은 비극으로 끝나게 되어 있다. 첫사랑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불행과 파멸을 동반했으므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김호경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작가 T. 윌리엄스(왼쪽)는 아서 밀러(가운데), 유진 오닐과 함께 미국의 3대 극작가로 손꼽힌다. ⓒ김호경

65센트가 전부인 망상가 여인

두 자매의 고향은 미시시피 로렐의 벨 레브이다. 수백 년 동안 잘먹고 잘살던 선조들의 땅(농장)은 수천 장의 서류들에 의해 조금씩 파괴되고 결국 묘지만 남았다. 블랑쉬는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이었으나 17살 남학생과 성관계를 맺고 파면되었다. 동생의 집을 어렵사리 찾아왔을 때 호주머니에 든 돈은 65센트였다.

다행히 그녀에게는 유부남이기는 해도 대학 동창 쉐프 헌트리가 있었다. 그는 캐딜락 컨버터블을 타고 다니며 텍사스에서 유전 사업을 한다. “텍사스는 그의 주머니에 금덩이를 뿌려넣고 있다”고 믿는 블랑쉬는 헌트리에게 전화만 하면 가게를 차려줄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웨스턴유니온(Western Union)에 전화를 걸려 하지만....

스텔라가 호화로운 벨 레브를 떠나 어떤 과정을 거쳐 루이지애나 뉴올리언스 엘리지안 필드 632번지에 정착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곳은 애드가 앨런 포(Edgar Allan Poe)만이 묘사할 수 있을 정도로 음침하고 비좁고 더러운 곳이다. 짐승 같은 남자 스탠리와 어떻게 결혼을 하게 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스탠리가 폴란드 출신이며, 결혼 첫날 슬리퍼로 전구를 전부 깨부수었다는 것 외에. 그는 무엇이든 부수는 것이 습관이다. 그래서 친구들과 포커게임을 할 때 블랑쉬가 라디오를 켜놓자 창밖으로 던져버렸다. 그러한 야만적 사내가 고상한 척하는 빈털터리 여자를, 아무리 아내의 언니라 한들 좋아할 수는 없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1951년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김호경

그 여자가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이 희곡에 나오는 등장인물은 모두 비정상이면서도 우리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아픈 어머니를 홀로 돌보는 유유부단하면서도 팔랑귀를 가진 청년 미치, 그는 블랑쉬에게 말한다.

어머니께 당신 얘길 했어요. 어머니가 물어 보시더군요. “블랑쉬가 몇 살이니?” 근데 난 대답하지 못했어요.

블랑쉬는 나이를 정직하게 밝힐 만큼 어리석은 여자가 아니다. 그러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은 한없이 어리석다. 일이 끝나면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볼링 혹은 포커게임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스탠리, 그의 친구들인 파블로, 스티브... 모두 하루를 힘겹게, 그러면서도 노력없이 살아간다.

스탠리는 블랑쉬가 농장을 처분한 돈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녀의 가방을 뒤져 옷들과 액서사리를 꺼내 아내에게 보여주며 닦달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모두 모조품이고 싸구려들이었다. 그중에는 연애편지도 있었다.

“내가 먼저 한번 봐야겠어.”
블랑쉬가 질겁한다.
“당신 손이 닿으면 그걸 모욕하는 거예요!”

그 편지들은 소년이 쓴 시들이었다. 소년은 그 시와 돌아갈 수 없는 아름다운 시절의 사랑과 비난만 남긴 채 저세상으로 떠났다. 블랑쉬는 소년으로 인해 학교에서 쫓겨났음에도 편지를 버리지 못한다. 버리지 못하는 것은 편지뿐만이 아니다. 화려했던 나날의 즐거움과 뭇남성들의 추파, 한때나마 주인공이었던 영광을 버리지 못한다.

스탠리는 파괴주의자이다. 한편으로는 오늘을 즐기는 현실주의자이다. 블랑쉬가 오기 전 그의 삶은 그럭저럭 유지되었고 나름 즐거웠다. 비좁은 집이기는 해도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 곧 아버지가 될 예정이었다. 그러던 것이 창녀나 진배없는 블랑쉬로 인해 엉망이 되어 버렸다. 아내에게 호소한다.

“그 여자가 여기 오기 전까지 만사가 잘 되지 않았어?”

맞는 말이다. 그 여자가 등장하기 전까지 두 사람은 행복했고, 만사가 잘 되었다. 그런데 그 여자는 스탠리를 야만인, 원숭이, 비열한, 저급한 사내라고 멸시했다. 더구나 폴란드 출신이다. 언니가 그 사실을 알려주면서부터 스텔라의 결혼생활은 비참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소소한 행복들은 하찮은 것이 되고 말았다. 언니가 오기 전까지!

블랑쉬가 동생 스텔라의 집으로 가기 위해 탔던 실제 전차 노선의 이름이 ‘욕망(Desire)’이다. ⓒ픽사베이

욕망의 종착역은 어디일까

욕망은 두 가지이다. ‘돈’에 대한 욕망과 ‘성욕’에 대한 욕망. 스탠리는 두 가지를 다 가지려 한다. 미치는, 돈에 관심이 없으나 블랑쉬에 대한 성욕(결혼)이 있다. 블랑쉬는 돈이 필요하다. 스텔라는 그 사이에서 방황하는 가엾은 여자이다. 예쁜 아기를 낳고 남편과 오순도순 살기를 원한다. 남편은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해도 어엿한 기술자이고, 직장이 있다. 그러나 블랑쉬는 더 많은 것을 원한다. 블랑쉬에게 돈이 없다는 사실을 명백히 파악한 스탠리는 이제 성욕을 채우려 한다.

일반적 관념에서, 한 남자가 아내의 언니와 불법적으로 성관계를 맺으려 하는 것은 매우 비도덕적이다(여자와 합의를 했다 해도 비도덕적이다). 여자는 그것을 알고 있다. 병을 깨서 사내의 얼굴에 들이민다. 그러나 사내는 그녀의 말처럼 야만적이고, 짐승이나 다름없다. 저항하는 여자에게서 더 성적 쾌락을 느낀다.

“오! 그래 당신은 한바탕 소동을 원하는군! 좋아, 소동을 벌여 봅시다!”

그 소동이 과연 사내의 의도대로 펼쳐질 수 있을까? 욕망이라는 전차에 올라탄 사내의 종착역은 과연 어디일까? [논객닷컴=김호경] 

더 알아두기

1. 이 희곡은 1947년에 발표되어 에셀 배리모어 극장에서 첫 공연되었다. 이후 여러 나라에서 공연되었고, 1951년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2. 블랑쉬가 동생 스텔라의 집으로 가기 위해 탔던 실제 전차 노선의 이름이 ‘욕망(Desire)’이다. 스텔라의 집은 엘리시안 필드(Elysian Field)와 포부르 마리니(Faubourg Marigny)가 만나는 곳의 2층집이다.

3. 작가 T.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 1911~1983)는 미시시피에서 태어났다. 아서 밀러(Arthur Miller), 유진 오닐(Eugene O’Neill)과 함께 미국의 3대 극작가이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와 더불어 <유리동물원>,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가 걸작이다. A. 밀러의 대표작은 <세일즈맨의 죽음>(Death of a Salesman)이고, E. 오닐의 대표작은 〈느릅나무 밑의 욕망〉(Desire under the Elms)이다. 두 작품을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루이지 피란델로 ⓒ김호경

4. 시간이 나면 페터 한트케(Peter Handke)의 <관객모독>(Publikums Beschimpfung)도 읽어보라. “이 부패한 민중들아, 이 교양 있다는 계급들아, 이 말세를 사는 속물들아, 이 망망한 황야에서 울부짖거나 하는 놈들아, 종말이나 와야 회개할 놈들아”라는 식의 꾸짖음이 난무한다.

5. 루이지 피란델로(Luigi Pirandello 이탈리아)의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은 아버지, 어머니, 의붓딸, 아들 등 이름없는 사람들이 등장하여 무대감독과 연출가들을 괴롭히는 기이한 희곡이다. 

 

 김호경

1997년 장편 <낯선 천국>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여러 편의 여행기를 비롯해 스크린 소설 <국제시장>, <명량>을 썼고, 2017년 장편 <삼남극장>을 펴냈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호경  sosul62@naver.com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매체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논객닷컴 | (03163)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12, 대일빌딩 1405호
대표전화 : 070-7728-8569 | 팩스 : 02-722-65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종국
제호: 논객닷컴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78 | 등록일 2011년 9월 27일 | 발행일: 2011년 10월 1일 | 발행ㆍ편집인 : 권혁찬
Copyright © 2018 논객닷컴.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