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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라지고 남긴 것[김봉성의 고도를 기다리며]
김봉성 | 승인 2018.10.10 09:27

[논객닷컴=김봉성] 지난 8월 31일, 오마이뉴스에서 원룸촌 쓰레기 불법투기 문제를 다뤘다. 그 기사는 문제의 주범을 외국인으로 단정했다. 원룸촌이 밀집된 충남 태안의 특수성 때문이었다. 일자리 때문에 1-2개월 머물다 갈 뿐인 외국인에게 질서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학가 원룸촌의 쓰레기 사정도 다르지 않다. 포털에서 ‘원룸촌 쓰레기’를 검색하면 전국의 문제들이 검색된다. 지자체는 자포자기한 채 양심에 호소했다. 이곳의 문제 원인도 '외국인' 때문이다. 대학가 원룸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서로 '외국인'이다.

ⓒ대전 서구청

2012년 음식물 쓰레기 종량제 정책 이후 불법 투기가 급증했다. 그 정책 이후 음식물 쓰레기가 줄었다는 자화자찬의 기사들은 탁상행정이 가져온 풍선효과에 눈감았다. 취지는 좋았다. 음식물 쓰레기 배출에 책임을 부과하는 일이기도 했고, 길 구석구석에 악취를 풍기는 음식물 쓰레기통을 없애 골목 미관을 개선하는 일이기도 했다. 각 가정마다 밀폐된 음식물 쓰레기통을 나눠주고, 그것을 정해진 날짜에 밖에 내놓으면 청소부들이 수거해 갔다. 문제는 각 가정의 사정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것에 있다.

원룸은 1인 가구가 대부분이다. 2인 동거라고 해도 레토르 음식을 사먹거나 외식이 잦아 음식물을 쓰레기가 일반 가정에 비해 적었다. 그나마 무더기로 나오는 닭뼈나 여름철 한정 수박껍데기는 수거 대상이 아니었다. 음식물 쓰레기통을 채우려면 시간이 걸렸고, 시간은 악취를 동반했다.

게다가 새 정책을 따르기에는 불안 요인이 컸다. 출근할 때 음식물 쓰레기통을 밖에 내놓았다가 퇴근할 때 집으로 가져오는 것이 일반적인 사이클인데, 쓰레기통 분실은 각자의 책임이었다. 실제로 원룸촌에서 밖에 내놓은 이 쓰레기통을 보기 힘들었다.

최소한의 양심은 일반 쓰레기 봉투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봉투는 컸다. 원룸촌의 1인 가구는 쓰레기가 자주 나오는 편은 아니다. 5리터 봉투도 큰 느낌이다. 음식물 쓰레기는 가급적 빨리 버려야 해서 5리터를 채울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일반 비닐에 버리는 한두 번에 습관이 붙어 2018년에 이른 것이다. 물론, 쓰레기를 무단으로 버리는 비양심이 문제다. 그러나 비양심을 비난하기 전에, 음식물 쓰레기 수거의 나비 효과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궁극적인 문제는 ‘우리’의 부재에 있다. 음식물 쓰레기통을 밖에 내놓았다가 가져가는 것이 번거롭더라도 ‘우리 동네’라면 양심을 수행할 것이다. 그러나 태안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원룸은 머무는 곳이 아니라 지나가는 곳이다. 대학가는 그곳보다 조금 더 길 뿐 6개월, 1년 단위로 계약이 이뤄진다. 오직 방과 나 사이의 관계만 단기적으로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이웃이 없다. 외출하려다가도 복도에서 도어락 소리가 들리면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묵계다. 이웃이 누군지 알게 될 때는 층간/벽간 소음 때문이므로 가장 좋은 이웃은 비어 있는 방이다. 이처럼 이곳에는 ‘우리 동네’가 없으므로 내 방을 제외한 공간이 아무래도 좋다. 불편하면 몇 달만 참다가 옮기면 된다.

그러고 보면, 근린 공원은 특수한 공간이다. 정자나 벤치에 쓰레기들이 남긴 어제를 보고 출근했는데, 퇴근할 때는 치워져 있었다. 쓰레기들은 밤에 다시 쌓였다. 처음에는 청소부들의 손길인지 알았다. 그러나 어느 늦은 출근길에 어떤 노인이 비질을 하는 것을 봤다. 휴일에도 간간히 목격할 수 있었다. 공원의 청결은 인근 노인들에 의해서 지켜졌던 것이다.

노인들에게 이곳은 ‘머무는 곳’이었다. 기간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였다. 건물주인지, 세입자인지 모르겠지만 이들은 서로 알고 지냈다. 윷놀이를 하고, 고스톱을 치고, 한담을 나누었다. 지나가는 총각에게 단감 한 조각을 건네기도 했다. 그들은 ‘자기 방’이 아니라 ‘우리 동네’에 살았던 것이다.

이처럼 원룸촌은 서로가 외국인인 채로 사는 파편들의 군집에 불과하다. ‘다양성의 우리’는 아름답되 무책임한 말이라는 것이 쓰레기로 증명되었다. 앞으로는 1인 가구는 증가할 것이고, 개인의 이동도 빈번해질 것이다. ‘우리’가 존재하던 시절을 살던 사람들의 정책은 실패했다. 단순히 몇 백원이 아까워 무작위로 쓰레기를 버린다고 생각한다면, 영원히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파편화된 현실을 인정하고, 파편들의 생태에 맞는 정책을 강구해야 할 때다. 

 김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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