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진학 전 서울신문 전무

[오피니언타임스=곽진학]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끝도 없이 펼쳐진 하늘은 하도 높고 푸르러 인간의 언어로는 차마 담아낼 수 없는 무한과 영원을 향한 침묵이 숨결처럼 나부낀다.

광활한 대지를 살포시 채우는 소슬한 바람소리.

만물은 혼자 있는 침묵의 시간을 거쳤으리라.

매미의 울음도 그친 가을의 서정 앞에 이렇게 숙연해지는 것은 단지 희수(喜壽) 나이 때문만 아니리라.

산천의 초목이 싱그럽던 생기를 잃고 벌써 잎을 떨구는 모습이 겨울을 준비하는 시간인가 보다. 풋풋했던 희망과 열정의 속살을 다 삭이고 이제 곱게 처연히 물들여 가야 할 석양의 하늘 앞에 서있다.

세우기보다 허물기를 좋아는 세상에서 진실로 한 인간의 영혼이 깨어 있자면, 진정 삶의 종이 아닌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자면, 부단히 광야의 길을 걸어야 했지만 변변치도 않은 삶의 행복을 찾아 자신에게 매몰되어 유령처럼 살아온 것을 탄식하지 않을 수 없다.

헛되고 거대한 욕망은 끊임없이 어둠속에서 출렁이고 있었다.

산이라 해서 다 높은 것도, 다 험하고 가파른 것도 아닌데 어째서 나는 이 어두운 광장을 질풍노도처럼 달려 왔던가.

20세기 최고 영성가이자 하버드대 교수인 헨리 나우웬은 영혼의 안식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끝내 유명 교수 자리를 내려놓고 정신지체장애인 공동체, 라르쉬 데이브레이크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들을 섬기고 함께 살았지 않았던가?

미국 야구, 뉴욕 메츠 팀의 투수 팀 버크(Tim Burke)도 한창 명성을 떨치던 서른네 살에 심장에 구멍이 난 아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아이,오른 손이 없고 간질이 있는 아이, 입술과 천정이 갈라진 아이. 이 다섯 명의 장애 어린이를 입양하고 그들을 키우기 위해 조기 은퇴 선언을 하지 않았던가?

60년 대 초 무척 가난했던 이 땅에도 소록도를 찾아와 43년간이나 한센인을 보살핀 후 노령에 접어들어 힘이 부치자 작은 가방만 하나 달랑 들고 고국 오스트리아로 돌아갔던 수녀들이 있다. 그들을 보라.

도대체 그 분들은 가슴속에 무엇을 품고 있었기에 명예와 인기, 안일을 포기하고 험하고 고달픈 희생을 길을 선택했을까?

영국의 생물학자 도킨스는 인간을 ‘유전자라고 하는 이기적 분자를 보존하기 위한 기계’라고 단순히 여겼지만 나우웬이나 버크나 두분의 수녀는 도킨스의 이론(理論)대로 과연 이기적 생각만으로 자신의 편안함을 팽개쳤을까?

진정 우리들의 경쟁자는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아니겠는가?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세계에서만 머물며 얻은 편견과 아집에서 벗어나 완벽하게 다른 존재와도 만나야 하지 않을까?

인간의 위대한 여정은 고난과 죽음과 죄의 절망을 사랑으로 바꾸는 과정이다.

무릇 좋은 사람을 만나고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

한 사람의 의미는 그 한 사람만의 존재가 아니라 그가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만들어 질 진데 , ‘인간의 구원은 사랑 안에서, 그리고 그 사랑을 통하여 실현’되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有罪)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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