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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 전쟁[김부복의 잡설]
김부복 | 승인 2018.10.15 09:55

[논객닷컴=김부복] 머리카락 때문에 일어난 싸움이 있었다. 청나라 때였다.

청나라는 명나라를 정복하면서 주민들에게 자기들의 ‘헤어스타일’인 ‘변발(辮髮)’을 강요했다. 자진해서 변발을 하는 명나라 병사들을 군에 편입시켜 앞장세우기도 했다.

중국 사람을 시켜서 중국 사람을 제압하는 ‘이화제화(以華制華)’ 작전이었다. 우리가 이른바 ‘이이제이(以夷制夷)’에 빠져 오그라들었던 과거사와는 대조적이었다.

많은 중국 사람이 청나라에 굴복, 변발을 받아들였다. 소주(蘇州)지방의 경우 불과 하루 사이에 주민들 모두가 머리를 자르기도 했다.

반면 절강(浙江)지방에서는 격렬한 저항이 벌어졌다. ‘오랑캐 머리’를 할 수 없다고 버틴 것이다. 저항은 순식간에 퍼졌다. 양자강 이남이 모두 저항에 ‘동참’했다.

영화 ‘무인 곽원갑’ 스틸컷. 변발을 한 주인공이 상념에 잠겨 있다. ⓒ네이버영화

마르티니라는 외국인 선교사가 이 ‘머리카락 전쟁’을 기록했다.

“그들은 임금이나 국토를 방위하기 위해서 싸울 때보다도 훨씬 결사적이었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지키기 위해서 싸운 것이다.… 그들은 마침내 타타르인(만주인)을 쫓아낼 수 있었다. 아마도 마음만 먹었다면 수도까지 탈환할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지만 자기들 머리에 머리카락이 안전하게 남아 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더 이상의 승리를 바라지는 않았다. 그들은 승승장구하던 타타르의 군사를 1년 동안이나 저지했다.”

하지만 중국 사람들은 결국 변발을 하게 되었다. 게다가 그 변발의 관습은 무서웠다. 청나라 말에는 오히려 변발을 지키려고 했다. ‘신해혁명’ 이후 ‘변발 폐지령’이 내리자 자신들의 전통 머리였던 ‘속발(束髮)’을 거부하고 나섰던 것이다. 그 사이에 변발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돼지꼬리’ 같다며 우습게 여겼던 변발이었지만, 폐지할 때는 애를 좀 먹어야 했다.

우리 민족의 머리카락에 대한 애착은 대단했다. ‘단발령’이 내려진 것은 고종 임금 때인 1895년이었다. 대쪽 같은 선비 최익현(崔益鉉·1833~1906)이 차라리 상투 대신 목을 자르라며 버틴 일화는 유명했다.

단발령은 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쳐 경기침체를 불러오기도 했다. 머리를 잘린 사람들이 ‘두문불출’하는 바람에 유통시장이 마비되고 경제 전체가 엉망이 되는 불상사가 발생했던 것이다.

선비들이 단발령에 반발, 의병을 조직해서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기도 했다. 의병을 조직하게 된 동기 가운데 하나가 머리카락 때문이기도 했다.

단발령 31년 후인 1926년에 ‘희한한’ 조사가 있었다. 상투를 얼마나 잘랐는지에 대한 조사였다.

평양 99%, 목포 90%, 개성은 89%의 주민이 단발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남원은 단발을 거부한 ‘상투 인구’가 99.2%에 달했고, 괴산 90%, 부여는 85%였던 것으로 조사되었다. 30년 넘도록 단발령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았던 지역도 적지 않았던 셈이었다.

우리는 ‘세계 최강’ 몽골과 전쟁을 할 때도 머리카락을 지켰다. 몽골은 전 세계를 점령하면서 가는 곳마다 6가지 요구조건을 제시했다.

①인질을 바칠 것 ②군사를 내어 몽골을 도울 것 ③식량과 운송수단을 바칠 것 ④역참을 설치해 교통편의를 제공할 것 ⑤호구를 조사해 보고할 것 ⑥총독인 ‘다루가치’의 통치를 받아들일 것 등이다. 이를 ‘6사(六事)’라고 했다. 이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가차 없이 ‘쑥밭’을 만들었다.

몽골이 ‘6사’로 압박하자 고려는 6가지 강화 조건을 내놓았다. 그 첫 번째가 ‘우리의 풍속을 지키고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몽골의 복식과 변발을 따르지 않고 우리 식으로 하겠다는 요구였다. 몽골은 결국 이 강화 조건을 받아들였다.

임진왜란 때 조선 의병들은 상투를 풀어헤치고 싸웠다고 한다. 산발을 한 이유는 적에게 겁을 주는 한편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긴 머리카락이 목을 보호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왜병들은 날카로운 ‘일본도’를 가지고도 머리카락으로 감싸고 있는 의병의 목을 치기가 쉽지 않았다. 그 때문에 왜병들은 산발을 하고 달려드는 의병을 특히 껄끄러워했다. 산발을 한 외모가 우선 무섭게 보이는 데다 칼을 휘둘러도 효과가 적으니 의병을 무서워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왜병들은 조총과 일본도로 무장을 했어도 체격이 작았다. 조선 사람의 체격이 월등하게 컸다. 체격만큼 체력도 강했다. 그 우월한 체력으로 의병들은 낫을 들고도 ‘조그만’ 왜병과 싸울 수 있었다.

대체로 칼을 좋아하는 민족은 변발을 했다. 만주, 몽골, 일본 등이 그랬다. 우리에게도 칼을 좋아했던 군사정권이 ‘장발족’을 단속했던 과거사가 있었다. 젊은이들은 가위를 든 경찰관을 피해 요리저리 숨어 다녀야 했다. 숨바꼭질이었다.

반면 글을 좋아하는 민족은 ‘속발’이었다.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길러서 잡아 묶었던 것이다. 그래서 변발을 후진문화, 속발을 선진문화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서울시교육감이 중·고교생의 ‘두발 자유화’를 선언하면서 찬반논쟁이 요란하다고 해서 검색해보는 ‘머리카락 싸움의 과거사’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난데없는 머리카락 싸움이다. 

 김부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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