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진의 청춘사유] 노가다판을 전전하는 이 시대의 청년 이야기

마른 체형에 안경 낀 강재용씨(가명)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친근해보였다. 책가방을 메고 있었는데 그 속에는 뭐가 들어있는지 알 수 없었다. 언뜻 보면 고시생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앞뒤 설명 없이 공사 현장에서의 삶을 인터뷰하고 싶다는 의견을 전달했는데 흔쾌히 승낙하여 만남이 성사되었다. 사전에 준비한 질문(Question)에 답(Answer)을 하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Q) 보통 몇 시에 어디로 출근하시나요.

A) 일반적으로는 인부가 새벽 5시경 인력사무소에 대기하고 있으면 일을 배정받아 현장으로 가는 구조입니다. 상황에 따라서 공치는 날도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현재 경기도에 있는 공사현장에 한시적으로 출근하고 있습니다. 보통 6시까지 현장에 도착해서 식당에서 아침밥을 먹고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뒤 7시까지 아침체조장에 집합합니다.

Q) 그곳에서는 차별 없이 누구나 일할 수 있나요.

A) 건설업 기초안전보건교육 이수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한해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사전에 교육을 신청하고 지정된 센터에서 4시간 동안 교육에 참석하면 당일 수료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운전면허증을 취득하기 위해서 안전교육을 먼저 이수해야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Q) 말씀하신 기초교육은 어떻게 신청하나요.

A) 안전보건공단에서 운영하는 안전보건교육포털에 접속하면 내가 속한 지역의 교육기관을 찾아서 교육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아, 그리고 교육을 이수하더라도 현장에서 별도로 안전교육을 실시하는데 그 때 고혈압 같은 이상 증세가 발견되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건강한 신체, 그리고 사전교육 이수증을 지니고 있으면 일할 수 있는 자격이 생겼다. 일반적으로는 새벽에 인력소에서 일을 배정받아야 하지만 운이 좋으면 하나의 시공이 끝날 때까지 일 배정 걱정 없이 출근할 수 있는 듯 했다. 강재용씨는 후자에 속했는데 아무래도 그의 좋은 인상과 겸손한 말투가 한 몫 했을 거라고 추측해본다.

ⓒ픽사베이

Q) 현장에서는 주로 어떤 일을 하시나요.

A) 보통 저희 같은 일용직 근로자를 용역 또는 잡부라고 하는데 90프로 이상의 일이 자재정리와 청소입니다. 건설현장에는 목수공, 철근공 등 다양한 기술자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자들의 합작품이 바로 건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기술자들은 공정마다 발생하는 쓰레기를 직접 치우면서 일하지 않습니다. 또한 날이 갈수록 다양한 자재들이 필요하고 또한 그것을 운반해야하니 저희 같은 無기술자들도 필요한 것이지요.

Q)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현장에서 일을 시작하셨나요.

A) 전에 하던 일이 잘못되어서 1월부터 일을 시작했습니다. 4대 보험을 제공하는 회사에서 제 계좌로 월급을 받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어서 노가다판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지요. 그리고 일반 직장에 입사하면 최소 한 달 뒤에 월급을 받을 수 있는데 그 한 달을 버틸 여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민 없이 신체만 건강하면 일할 수 있는 건설현장 일용직을 시작한 겁니다. 더 구체적인 질문은 더 이상 안하셨으면 좋겠네요.

강씨에게 현장 일 말고 다른 선택권은 없어보였다. 매일 일할 수 있고 적지 않은 돈을 받을 수 있으니 지금으로선 만족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현장에서 잡부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인식이 강했다. 기술자들이 쉬쉬 하는 일을 도맡아 한다는 자부심이 느껴지기도 했다.

Q) 그럼, 함께 일하는 분들은 보통 어떤 이유로 현장 일을 시작하게 됐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A) 일하면서 종종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는데 그때 그들의 사연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개인 사업을 하다가 부도나서 오신 분, 지금은 본업이 비수기라서 오신 분, 다른 일을 준비하는데 그 사이 공백기가 생겨서 일하러 오신 분 등 노가다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다양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분은 고시를 준비하고 있는데 몇 번이나 낙방하여 더 이상 부모님께 손 벌리기 힘들어서 온 청년입니다. 또한 취업은 했지만 입사까지 시간이 남아서 생활비를 벌어야 해서 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간혹 주말만 나와서 카드 값을 메우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Q) 하루 일당은 얼마인가요. 가능하시다면 수수료 포함 전후까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지역마다 다를 수 있지만 제 경우에는 실수령액이 9만원에서 11만원 정도 됩니다. 보통 서울/경기권 기준으로 대략 12만원 수준입니다. 여기서 인력사무소에서 수수료 10%를 가져갑니다. 간혹 악덕 사무소에서는 수수료를 더 떼어간다고 들었습니다.

Q) 한 달에 자신을 위해서 쓰는 돈을 얼마인가요.

아침, 점심 식사는 현장에서 해결할 수 있으니 저녁식사만 제 돈으로 사먹습니다. 한 달 간 약 5만원을 쓰는데 대부분 고시촌에서 인스턴트 음식으로 끼니를 때웁니다. 그 외 교통비, 휴대폰 비용 등 포함하면 총 생활비는 30만원 수준입니다. 나머지 돈 전부는 빚을 갚는데 쓰고 있습니다.

Q) 이번 추석연휴는 어떻게 보내셨나요.

A) 아무 곳에도 가지 않고 푹 쉬었습니다. 사실 일하고 싶었는데 일거리가 없어서 강제로 쉰 셈이죠. 고향에 내려가자니 면목이 없을뿐더러 돈 마저 없으니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내년에는 달라질거라 믿어요. 이렇게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가보면 말이죠.

추석기간 고시촌에서 혼자 시간을 보냈다는 강씨. 그는 일하고 싶었지만 일거리가 없었다. 일을 못한 만큼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일해야 되는 처지가 되었단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명절날 오직 쉴 생각에 사로잡혀 일하고자 하는 자의 마음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한 것이다. 강씨는 빠른 시간 내에 지금의 어려움에서 벗어날 것이라 믿는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비록 ‘잡일’이지만 현장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믿는 ‘그 마음가짐’ 때문이다. 직업의 귀천(貴賤)은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내가 만드는 것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자부심을 느낀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좋지 아니한가. 나는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하고 다녔던가. 한참을 생각하다 긴 상념에 빠져버렸다. [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심규진

 퇴근 후 글을 씁니다 

 여전히 대학을 맴돌며 공부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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