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구의 문틈 금융경제]

[오피니언타임스=김선구] 열대야가 기록적으로 길게 이어지는 등 끝이 보이지 않던 무더위가 물러나나 싶더니 제법 차가운 바람도 부는 환절기다. 반팔이나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 사람도 가끔 보이나 역시 옷은 제철 옷을 입어야 보기에도 좋다.

제철 옷처럼 씀씀이나 사회관습도 경제적인 형편과 함께 변하는 게 자연스럽고, 또 변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도 부유해지면 어려운 이웃에 대해 베풀 줄 아는 여유를 보여야 사람답게 사는 거고 사회적으로도 부강해지며 선진사회에 맞는 규범으로 옮겨가야 마땅하다.

ⓒ픽사베이

선진직장문화가 자리잡는 걸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붙들고 있는 가난하게 살던 시절의 관습이 자리잡고 있다.

1970년대 말 체이스맨해튼 은행에 다니면서 신기하게 느꼈던 제도가 있다. 당시 외국계은행은 국내에서 급여를 많이 주는 직장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노조에서는 김장철이 되면 “김장LOAN”이라는 형태의 복리후생을 요구해 받아내곤 했다. 고금리 시대라 거의 무이자에 가까운 형태의 직원대출을 많이 받기만 하면 돈을 번다는 생각에 김장을 담그는데 큰돈이 든다며 노조가 요구해 관철시켜 받아내곤 했었다.

캐나다로얄은행에서 노조와 협상하던 때를 떠올리면 웃음이 나온다. 점심값이 출근한 날수로 계상되고 있었는데 노조에서 큰 금액도 아닌데 한 달 다 근무한 걸로 쳐 월정액으로 주자고 요청하여 받아들인 후 한 두해가 지나자 아예 정규월급에 포함시키자는 요청이 들어와 그것도 받아들였는데 몇 년이 지나자 새로 들어선 노조집행부에서 다른 회사들은 점심값을 주는데 왜 안 주느냐고 주장하는 빌미가 될 줄은 몰랐다.

캐나다에서 파견 나온 직원들과 함께 일하며 그들을 설득시키기 어려웠던 문화적인 차이가 많았다. 영업을 시작하고 첫 해 추석이 다가오자 은행감독원과 파출소등 관련 관공서에서 추석떡값을 달라고 요청이 들어와 큰 애를 먹었다. 그 전에 들어와 영업하던 다른 외국은행들은 현지문화존중이란 취지에서인지 쉽게 응해주었는데 캐나다인들은 “우리는 공무원 접대하러 오지 않았다”라며 단호하게 거절하여 관련 관공서의 담당자와 몹시 불편해지기도 했다.

산업화 초기 일반적으로 회사원들과 공무원들 모두 경제적으로 궁핍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보니 회사원들은 가급적 회사에서 점심도 해결해주고 가끔 회식이라는 명목으로 고기도 먹여주는 걸 당연하게 여기게 되고 공무원들은 ‘급행료’라 하여 적은 금액에 편의를 봐주는 행태로부터 큰 액수의 뇌물과 인허가를 고민하지 않고 바꾸기도 했다.

동사무소에서 이름이 바뀐 주민센터나 구청에 민원으로 출입하다보면 놀랍게 바뀐 친절과 서비스에 놀라게 된다. 언제부터 바뀌었는지를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나 아마도 공무원 처우개선도 큰 역할을 했으리라 보인다.

세상이 바뀌어 이제는 공무원이 정부예산으로 민간인들에게 식사를 대접해도 이상하지 않게 변했다. 공무원들에게도 업무추진비나 특활비가 예산으로 편성되어 필요시 쓰도록 제도화되어 있다. 심재철 국회의원이 폭로한 청와대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을 둘러싼 불법여부에 대한 시비가 아직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국정모니터링지표인 e-나라지표에 의하면 국제투명성기구에서 발표한 부패인식지수에서 우리나라는 OECD 35개 회원국 중 2008년 22위에서 조금씩 하락하여 2017년에는 29위라 한다. 이 지표는 공공부문 및 정치부문에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부패정도를 측정한다고 하니 공공부문 개혁에서 갈 길은 아직도 멀어 보인다.

공공부문이나 민간부문이나 업무추진비를 둘러싼 유용시비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원칙적으로는 업무를 위해 사용했다는 분명한 근거가 요구 되나 현실적으로는 해당고위직의 개인 재량에 맡겨져 형식적인 요건만 맞추어 놓는 경우가 많다고 의심받고 있다.

영수증처리가 필요 없는 기밀비가 부패의 온상으로 지탄받다 2000년 이후 접대비로 처리하게 되며 공식적으로는 제도권에 편입되긴 했으나, 우리 기업문화상 윗사람이 격려금이다, 위로금이다 하여 아래 사람들을 챙겨주는 풍토가 사라지지 않고 있어 우회적인 수단을 찾아야하는 동기가 존재한다.

독일 등 선진국에서 회사비용으로 획득한 항공마일리지에 대해 과세를 한다는 보도가 오래전 나왔을 때 선진국이란 이런 거구나 크게 느낀 바 있다.

회사에서 가족동반 야유회를 가거나 정년퇴직을 기념하기 위한 송별회식까지도 회사가 돈을 대주는 게 아니고 참가자들이 비용을 내던 캐나다은행의 관습이 우리에게는 아직도 낯설기만 하다.

파고들면 업무추진비의 유용이나 법규위반을 초래하는 가장 큰 요인은 고위직에 올라갈수록 직원들이나 지인들과의 식사 때 높은 사람이 밥값을 내야하는 문화가 지속되고 그럴 때 법인카드 사용을 당연시하는 풍토다. 이제는 회사나 나랏돈으로 무시로 밥 먹으며 당연히 여기는 문화를 버려야 할 때이다. 또 점심값 지원 등 저임금시절 제공되던 각종 복리후생에 대해 세제상 특혜를 주지 않고 월급에 포함시켜 단순화시키고 필요하다면 세율을 낮춰주는 게 선진화의 첫걸음이다. 저임금을 받는 근로자나 비정규직일수록 회사나 나랏돈으로 공짜밥 먹기가 어려운 점을 감안하면 조세정의실천에도 도움이 된다.

 김선구

 전 캐나다 로열은행 서울부대표

 전 주한외국은행단 한국인대표 8인 위원회의장

 전 BNP파리바카디프생명보험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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