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의 글로 보다]

[오피니언타임스=김동진] 예전에 내가 사는 동네에 해상 케이블카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가족과 함께 찾아갔다. 그동안 국립공원이나 다른 관광지를 갈 때마다 그 지역 주민들에게만 주어지는 가격 할인 혜택을 은근히 부러워했던 나와 아내는 드디어 우리에게도 그런 기회가 찾아왔다며 기뻐했다. 막상 가보니 지역주민에게는 1000원이 할인되었다. (얼마 후 2000원 할인으로 변경되었고 지금은 조조, 심야 시간대에 한해 더 많은 금액이 할인되고 있다) 다른 지역에는 더 많이 할인되는 곳도 있던데 할인율을 보고 적잖이 실망했지만, 줄을 서서 탑승권을 구입하고 다시 길게 늘어서 있는 탑승대기 줄 뒤에 섰다.

개장한지 얼마 안 되서 그런지 대기 줄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케이블카 타고 바다 본다고 신나하던 아이는 어느새 몸을 배배 꼬며 한자리에 계속 서있지 못하고 자꾸 줄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가려했다. 그런 아이를 달래가며 기다리고 있는데 대기 줄을 그냥 지나쳐 탑승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내에게 저 사람들은 뭔데 줄도 안서고 그냥 들어가냐고 묻자 기본요금의 2배를 내면 줄 안 서고 타는 요금제가 있다고 했다. 나는 그런 게 어디 있냐며, 돈 많으면 다냐고, 어떻게 그런 요금제를 만들 수 있냐고 흥분(?)했지만 아내는 그런 나의 반응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요즘 놀이공원이나 유명테마파크에서도 다들 그런다고, 추가 요금을 내면 줄을 서지 않고 놀이기구를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이러다가 한 시간, 두 시간씩 줄을 길게 서야 들어갈 수 있는 유명 맛집에서도 음식 값의 2배, 3배를 내면 줄 안서고 바로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거 아니냐고 투덜거리자, 아내는 돈 많은 사람들은 그러고 싶겠지라며 무심하게 받아들였다.

ⓒ픽사베이

시간이 돈이라는 말이 이제 책 속의 격언이 아니라 현실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부자들은 1시간씩 2시간씩 줄 서는 시간을 들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놀이기구를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됐다. 테마파크에서 똑같은 시간을 보내더라도 어떤 요금제를 이용하느냐에 따라 그 안에서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간다. 어떤 사람은 하루 종일 기껏해야 2~3개의 놀이기구 밖에 타지 못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원하는 만큼 실컷 탈 수 있다. 1시간 넘게 줄을 서고 있는 아이는 줄을 서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아이를 보며 부모에게 물어볼 것이다. 저 아이는 왜 줄도 서지 않고 바로 타냐고. 진실을 알게 된 아이는 그럼 우리도 그렇게 하자고 할 것이고 그 말을 들은 부모는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아이는 그날 당장 장래 희망이 부자로 바뀔지도 모른다. 돈만 많으면 지루하게 기다리는 시간 없이 원하는 놀이기구를 실컷 탈 수 있으니까.

미국에는 유료도료가 있다. 4차선 도로 중에 1차선을 유료도로로 정해 그 도로를 이용하면 요금이 부과되는 식이다. 교통 체증을 방지하기 위해 그런다는데 1차선을 비워두었기 때문에 길이 더 막히는 건 아닐까? 공항에는 패스트트랙이란 제도가 있는데 교통약자와 출입국 우대자는 출국 심사 시 긴 줄을 서지 않고 이 트랙을 통해 빨리 통과할 수 있다. 보행상 장애인, 7세 미만의 유·소아, 70세 이상 고령자, 임신부 등이 교통 약자에 포함된다.

최근에 인천공항에서 비즈니스석 이상을 이용하는 승객과 별도의 비용(1만5000원 정도)을 지불한 일반석 승객을 위한 패스트 트랙을 도입하려다 많은 사람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사람들 사이에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그러나 찬성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외국 유명공항에서는 이미 시행하고 있고 패스트 트랙으로 사람들이 빠져나가면 일반 트랙의 줄도 빨리 줄어들어 모두가 편리해질 것이라는 것이다.

백화점들도 일정금액 이상을 소비하는 고객들을 MVG(Most Valuable Guest)로 선정하여 발렛파킹 서비스를 해주고 전용 휴게실을 마련하는 등 각종 편의를 제공한다. 주말에 백화점 지하주차장에서 1시간 이상 앞차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주차해 본 사람이라면 전용 주차장이 제공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편의이고 혜택인지 실감할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불한 돈 만큼의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왠지 모를 씁쓸한 감정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부자들과 빈자들은 이미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 올해 기준 최저임금 7530원이 지나치게 높다며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하루 노역으로 400만원씩의 벌금을 경감받는 사람들도 있다. 편의점에서 빵 몇 개 훔쳐 징역 3년을 선고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몇 백억씩 횡령하고, 권력자에게 뇌물을 바쳐도 '시켜서 강제로 한 일이니까',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으니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사람도 있다. 이러다가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들에게 투표권을 여러 장씩 더 주어도 이상하지 않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21세기에도 투표율이 100%가 넘는 정상(?)국가가 엄연히 존재하는 이 세상에서.

김동진

한때 배고픈 영화인이었고 지금은 아이들 독서수업하며 틈틈이 글을 쓴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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