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렬의 맹렬시선]

[오피니언타임스=이명렬] 청년들이 모여있는 글쓰기 토론방의 단체 채팅 창은 가끔 재미난 글들이 오간다. 방장이 먼저 말문을 연다. 방금 풍성한 사냥을 끝낸 사자 어미 같이 청년들이 좋아할 따끈한 글들을 여럿 풀어 놓는다. 이젠 필진들이 열심히 물어뜯을 차례이건만, 도리어 채팅창은 진지해진다. 진부한 문체, 소재 고갈, 마감 압박 등 잔뜩 묵혀둔 고해성사가 한바탕 벌어진다. 날카로운 시선과 자기만의 감성으로 세상을 들여다보는 필진들이건만 앞다투어 자기비판을 하는 모습이 사뭇 낯설다.

나도 반성에 앞장서는 편이다. 출퇴근길에 다른 사람들의 글을 다 보면 내 글은 왜 이다지도 아쉬워보일까. 마냥 부끄럽다. 글쓰기방 방장은 칭찬의 미덕을 잊지 않으며 작가 지망생들에게 용기를 불어넣는다. 그 칭찬 몇 마디가 글 쓰는데 큰 힘이 된다. 서로 물어 뜯지 않아도 씹을 거리가 넘치고, 반성과 칭찬이 오고 가는 재미난 생태계다.

ⓒ픽사베이

이번 달 방장이 나에게 준 피드백은 ‘제목’에 독자가 훅 이끌릴 수 있는 재미를 넣어 달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글이 좋아도 포장이 예뻐야 독자가 집어 든다는 주문이었다. 그간 오피니언타임스에 연재한 칼럼 제목들은 한강 냄새, 개미 제국, 외할머니, 도시 어부처럼 가능한 한 단순하게 지었다. 변명하자면 이곳 칼럼은 담백하게 쓰는 것을 목표로 했고, 제목의 기름기도 빼고 싶었다. 되짚어보니 너무 뺀 듯하다.

요즘 책들은 고화질 TV처럼 제목과 표지가 선명하다. 인터넷 서점에서 책 고르는 것은 옷 쇼핑과 비슷하다. 예쁘고 잘 빠진 책들이 잘 나가기 마련이다. 내 칼럼 제목은 80년대 고딕 글꼴의 낡은 문고판 스타일이었다. 이번엔 매끈한 제목으로 독자들을 낚아 보겠다고 당차게 포부를 던졌다. 그런데 어떤 주제로 글을 쓸지 막막하다. 낚시꾼들이 무엇이 낚일지 알고 바다로 낚싯대를 던지겠는가. 짜릿한 손맛을 기대하며 노트북을 켠다.

미완성 폴더에 그 동안 내어놓지 못한 글들이 담겨있다. 지난 여름 휴가를 다녀온 뒤 부산의 해수욕장 소개 관련 글을 반쯤 쓰다 노트북 바탕화면에 저장해 놓았다. 관광객들에게 익숙한 해운대, 광안리가 아닌 송정, 송도, 다대포 해수욕장에 대한 알찬 소개가 목적이었다. 인터넷 쇼핑을 하다 무심코 미완성 글을 읽은 아내에게 혼이 났다. 더럽게 재미가 없단다. 이 주제로 더 쓰지 말라고 충고도 했다. 반성한다. 그리고 조심스레 고백한다.

난 부산에서 태어났지만 사실 바다를 좋아하지 않는다. 바닷바람에 배인 짭조름한 비린내도 싫다. 회도 서울에 와서 처음 맛봤다. 부산 사람은 모두 바다를 좋아한다는 선입견은 버려달라. 딸아이가 부산에 오면 모래 놀이가 하고 싶다고 하도 졸라대서 매번 해수욕장에 들르는 것이지, 나에게 바다는 그다지 매력적인 소재가 아니다. 하다못해 고향집은 산과 강으로 둘러싸여 바다는 보이지도 않는 곳이다. 글은 솔직하다. 글 쓰는 필자가 재미가 없으면 읽는 독자는 미친다. 내가 관심 없거나 매력적이지 않은 글감은 애써 글로 남길 필요가 없다. 데이터 낭비다.

카드회사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신용카드를 발급받은 에피소드도 글로 써 둔 적이 있다. 연회비가 무려 60만 원이나 되는 고가 카드다. 단종 직전이라 막차를 타야 한다고 재촉하는 친구 말에 덜컥 신청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카드 심사팀에서 전화가 오더니 고객님은 카드 발급 조건에 미달한다고 했다. 내부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부끄럽기도 하고 심사에 떨어지면 어쩌나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친구 덕분인지 추가 심사는 겨우 통과했고, 레스토랑 할인, 마일리지 적립, 공항 발렛 등 여가 혜택이 풍성한 이 카드는 가계 과소비의 막중한 역할을 충실히 수행 중이다.

고가 연회비 카드 발급에서 겪은 이 소소한 경험을 우리 사회의 계급, 평가, 기준이란 말에 담아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보고 싶었다. 그러다 글을 멈췄다. 글의 주인이 없다. 이 글을 누가 읽을까? 사람들은 이 글을 원할까? 방장은 넌지시 독자가 명확하고 주인이 있는 글이 좋은 글인 것 같다고 말한다. 맞다. 그런 글은 쉽고, 편하고, 툭 던져도 마냥 좋다. 내 주제에 과분한 고가 신용카드 발급 얘기는 어떻게 써도 불편한 방향으로 흘렀다. 글에도 분수가 있다. 분수가 넘치는 글은 분모를 키워서 값을 줄여야 한다. 분모는 자기 주제다. 주제를 넓혀야 가분수가 되어 쓰러지지 않는다. 소크라테스는 마지막까지 현명했다. 너 자신(주제)을 알라.

글 제목만 적어 놓은 것들도 제법 있다. 최근 배우기 시작한 골프와 야구의 원리 비교, 지하철 빈 상가를 잠시 채우는 깔세의 생존 전략, 서울에서 살아남기 위한 부산 촌놈의 사투리 교정기, 대학교 친구들의 웃픈 인생 변천사, 소방관으로 퇴직하신 아버지와 의무소방 군복무 시절 이야기, 하늘에서도 여전히 고달픈 청춘을 밝게 노래하고 있을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이야기 등이다. 내가 겪었고, 좋아하고, 내 주제 안에 있는 소재들이지만 아직 글 쓸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회사 일과 원고 마감 기한에 쫓기게 될 때 급히 꺼내어 써 볼 생각이다. 칼럼을 쓰는 것은 하루면 되지만, 지루하고 공허한 도시인의 삶 속에서 맛깔 나는 글감은 한 달에 한 건 찾기도 어렵다.  

이번 칼럼 제목은 글을 쓰면서 여러 번 바꿨다. 매력적이고 독자를 혹할 만한 제목을 뽑겠노라고 공언했건만 내 주제를 보니 영 무리다. 처음 떠올린 제목은 윤동주 시인의 ‘참회록’이었다. 필진 채팅 창을 보면서 반년 정도 써온 칼럼에 대한 반성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목에 여전히 ‘재미’가 없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제목을 살짝 빌려와 ‘죽은 칼럼의 사회’라고 바꿔보았다. 여태껏 힘들게 써온 글들을 죽은 칼럼이라고 표현하고자 하니 마음 한 켠이 씁쓸하다. 지금 쓰는 글도 시한부 인생일 것 같아 미안해진다.

제목을 다시 고민해 본다. 사실 이번 글의 진짜 주인은 나다. 차마 세상에 내어놓지 못한 글들과 나의 글쓰기를 되짚어 보는 시간이다. 제목을 ‘낡은 칼럼 주인의 참회록’으로 타협했다. 썩 만족스럽진 않지만, 글의 주인을 명확히 드러낸 것을 나름의 위안으로 삼고 싶다. 이다지도 욕될 것을 알면서도 굳이 오래된 폴더의 유물을 꺼낸 것도 내 주제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의 치부를 오롯이 드러낸 참회록을 누가 애써 읽어주기를 기대하진 않는다. 시간이 흐른 뒤 이 글을 읽고 나 스스로가 부끄럽지 않기를. 다음 참회의 글은 길지 않았으면 한다. 녹이 슬지 않도록 제목도 자주 매만져 줄 것이다. 낡은 칼럼 주인의 참회록은 이만 줄이고자 한다. 부끄러움이 많은 가을의 새벽 바람이 차다.

이명렬

달거나 짜지 않은 담백한 글을 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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