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진의 청춘사유]

[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남다른 카리스마. 장엄한 기운. 몽둥이를 들지 않아도 일동 정숙하게 만드는 영향력. 과거로부터 구전되는 전설의 별명. 학창시절 한 번쯤 만나게 되는 호랑이 선생님의 조건이다. 나 또한 호랑이 선생님을 고등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으로 만났다. 당시 나는 반장이었고 호랑이 선생님은 나에게 골리앗 보다 높고 높은 산이었다. 별명은 ‘맘보’였는데 맘보의 사전적 정의인 라틴 아메리카의 음악과 선생님은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람보’에 가까운 인물이었으므로. 람보보다 더 거대하다는 의미에서 4m길이의 어금니를 가진 ‘맘모스(mammoth)’와 무적의 사나이 ‘람보’의 합성어가 아닌가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그런 선생님과 1년을 함께 보내고 나니 내 성격과 말투도 바뀌었다. 철없는 히피족에서 강인한 기마병으로 성장했다고나 할까.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선생님은 영원한 담임이었고 심지어 대학엘 가서도 나의 스승은 오직 ‘맘보’였다. 얼마 전 선생님을 뵙고 식사를 했는데 ‘넌 아직도 왜 이렇게 말을 더듬냐’며 다그치셨다. 지금은 교육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전국을 다니며 강의를 하고 있는데 선생님 앞에서는 여전히 말더듬이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는 선생님과 겸상을 할 수 있는 사회인이 되었지만, 자식이 70세가 되어도 90세 부모 눈에는 어린아이인 것처럼 나는 선생님 눈에 여전히 고등학교 1학년생이었다.

ⓒ심규진

술이 한잔, 두잔 넘어가는 사이 선생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는데 호랑이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움푹 패인 주름 뒤편으로 인자한 미소만 보일 뿐이었다. 제자를 키워내시느라 삶의 훈장을 두둑하게 받은 탓일까. 호랑이는 승천했고 이 시대의 올곧은 선생님만 남아있었다. 나도 모르게 잠시 눈을 감고 과거를 상상했는데 그 순간 내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어버렸다. 음식점 주인도 놀라며 나를 다독여주었지만 이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감사의 눈물이었기에 도무지 멈출 방도가 없었다.

슬픔은 딴 생각으로 처방이 가능하지만 감사는 또 다른 감사를 낳을 뿐이었다. 그래서 눈물은 눈물을 낳았고 손으로 닦고 휴지로 닦고 고개를 떨구어보아도 도무지 울보를 면할 길이 없었다. 음식점을 나와서 찬바람을 쐬어도 눈물이 그치지 않았는데 선생님께서 나를 꼬옥 안아주셔서 민망함에 눈물을 멈출 수 있었다. 그 후 며칠이 지나도 눈물을 쏟았던 그 날이 생생하게 기억나서 선생님이 자꾸만 떠오른다. 우리를 위해 기꺼이 호랑이 역할을 하셨던 선생님을 이제는 내가 지켜드릴 차례가 되었다.

교실이 무너지고 교권이 상실되었다는 말이 나돌아서 그런지 학생들에게 애착을 가지고 호랑이 역할을 하려는 선생님을 찾아보기 힘들다. 스승과 제자가 아닌 교육서비스를 운운하고 있으니 애통할 따름이다. 학생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진짜 교육’이 무엇인지 ‘진정한 스승’은 어떤 사람인지 심각하게 고민해볼 때가 되었다. 이러한 고민은 학생들이 아닌 교육부 당국과 학부모의 몫이다. 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라는데 과연 우리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심규진

 퇴근 후 글을 씁니다 

 여전히 대학을 맴돌며 공부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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