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연 하의 답장]

[오피니언타임스=이하연] 셀프 서비스 시대다. 카페에서는 진동벨이 강력한 진동음을 내며 붉은 빛을 번쩍번쩍 발한다. 덕분에 아무리 시끄러운 카페일지라도 우리는 셀프 서비스를 착실하게 수행할 수 있다. 음료를 다 마시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진동벨은 없지만 무음의 분리수거함이 떡 하니 버티고 시선을 사로잡는다. 우리는 테이블을 치우고 그곳으로 가 분리수거를 한다. 커피를 만드는 것 빼고는 입장부터 퇴장까지 모든 것을 스스로 한다.

셀프 서비스는 이제 식당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셀프 반찬대와 무인 주문기 등이다. 무인 주문기에서 주문과 결제를 하고나면 우리는 멀뚱히 주방 위에 달린 스크린을 쳐다본다. 영수증에 적힌 번호가 뜨면 벌떡 일어나 쟁반을 들고 온다. 식사에 필요한 각종 반찬들과 수저, 휴지, 물까지 완비하고는 맛있게 먹는다. 다 먹고 난 후에 쟁반을 도로 갖다 놓는 것도 잊지 않는다. 아, 휴지와 같은 종이 쓰레기는 따로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 음식을 만드는 것 빼고는 입장부터 퇴장까지 모든 것을 스스로 한다.

ⓒ픽사베이

이젠 그 셀프 서비스가 여자 화장실에도 들어왔다. 딱히 화장실에서 쓰레기를 만들 필요가 없는 남자들한텐 이 얘기가 낯설 수도 있겠다. 몸의 구조 내지 사회적 역할이 복잡한 만큼 여자는 화장실에서 다양한 종류의 쓰레기를 만든다. 휴지와 위생용품 그리고 화장품과 그 부산물. 얼마 전 대형 서점의 한 여자 화장실에서 이런 문구를 봤다.

“휴지는 변기통에, 위생용품은 위생용품수거함에, 재활용은 바깥 휴지통에”

이상했다. 물론 셀프 서비스가 가장 먼저 도입되어야 했을 장소긴 하다. 화장실이야말로 뭐 하나 빠짐없이 셀프로 이뤄지는 곳이니까. 그곳에 또 다른 인력이 상주하는 게 더 이상해 보인다. 그래도 이상했다. 이제 칸막이 안에서 다 해결할 수 없겠구나, 싶었다. 물론 위생용품수거함은 칸막이 안에 있지만, 위생용품의 종류는 다양하다. 순면으로만 구성된 일반 생리대가 있는 반면 플라스틱 어플리케이터가 달린 탐폰―체내형 생리대―도 있다. 그건 확실히 재활용품이다. 바깥 휴지통으로 데려가야 한다. 더 이상 칸막이 안에는 휴지통이 없기 때문이다.

하여튼 화장실에서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만 한다. 원래도 그랬지만, 조금 더 복잡해졌다. 게다가 저런 구절의 룰이 모든 화장실에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어떤 화장실이냐에 따라 다른 규칙을 적용해야 한다. 어떤 곳은 “제발 변기통에 휴지를 넣지 말아 주세요”가 룰이고, 어떤 곳은 위생용품수거함 자체가 없다. 이런 게 과도긴가?

인건비가 올라가고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현상은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선 자연스럽다. 선진국으로 가는 길 위에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선진국이라 말하기 애매하다. 경제지표 상으로는 선진국이나, 복지나 여러 가지 제도, 사람들의 삶을 보면 선진국인지 모르겠다. 가장 결정적인 건, 인건비는 올랐지만 노동시간은 줄지 않았다는 점이다. 셀프 서비스가 우리의 삶에 이렇게나 가까이 들어온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사회가 도통 해주지 않는 게 하나 있다. 우리들이 어찌저찌 사는 것. 결국 우리는 살기 위해서 살아갈 방법을 우리끼리 애타게 찾고 있는 셈이다. 노동시간 대신 노동량을 줄이는 ‘셀프 서비스’처럼. 

이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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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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