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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선과 기업의 역할[이영환의 코리아 프리미엄 프로젝트]
이영환 동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18.10.30 07:54

[논객닷컴=이영환] 몇 년 전 하버드대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교수가 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한국 사회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샌델은 정의에 관한 여러 이론과 사례들을 소개한 후 공동체주의자로서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란 미덕과 공동선(common good)을 장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다시 정의에 관한 논의를 하려는 것은 아니니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당시 공동선이 잠깐 사회적 담론의 대상이 되더니 곧 자취를 감추었다는 점이다. 구글 검색을 해보면 최근 한국 사회에서 공동선에 관한 논의가 전혀 없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면 이제 한국 사회에서는 더 이상 공동선에 대한 논의가 필요 없는가? 필자는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진지하게 공동선, 특히 경제적 관점에서 공동선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사회 곳곳에서 양극화가 심화되어 불만과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데도 사회통합을 유지시켜줄 어떤 보편적인 규범과 기준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서구의 몇몇 나라에서는 최근 공동선에 대한 논의가 주목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심각한 문제들이 치유될 가능성이 매우 낮으며 이로 인해 민주주의가 위태롭다는 위기감이 부각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대표적인 사례를 미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클린턴 정부에서 노동부장관(1993~1997)을 역임했고 현재 버클리대 골드만 스쿨의 석좌교수로 있는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는 최근 『The Common Good』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이 책에서 라이시는 현재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미국의 공동선을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그 이유를 그의 막말과 돌출행동보다는 민주적 절차를 철저히 무시하는 행동에서 찾고 있다. 나아가 그는 이와 같이 공동선을 파괴하는 행위가 범람하게 된 역사적 원인으로 다음 세 가지 사건을 언급하고 있다: 첫째는 닉슨 대통령의 사임을 초래한 워터게이트 사건이고, 둘째는 전문경영자 잭 웰치(Jack Welch)와 정크본드의 제왕 마이클 밀켄(Michael Milken)으로 대표되는 경영 방식이며, 셋째는 루이스 파월(Lewis Powell Jr.) 대법관의 비망록에서 비롯된 기업의 영향력 확대다.

이 세 가지 사건 중 앞의 두 사건이 널리 알려진 것에 비해 셋째 사건은 그렇지 못한데 필자가 보기에는 이 사건의 영향력이 더 컸던 것 같다. 왜냐하면 현재 미국을 위태롭게 하고 있는 극단적인 불평등과 양극화가 이 사건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된 상세한 내용을 알고 싶은 사람은 루이스 파월이 대법관에 취임하기 직전인 1971년 8월에 작성했던 이른바 “파월 메모”로 알려진 글을 참조하면 좋을 것이다. 구글 검색창에 “The Powell Memo”를 치면 그가 작성한 전문을 볼 수 있다. 지금 봐도 가히 치밀하고도 대담한 전략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후 미국에서 대기업들이 벌인 일들은 모두 그가 메모에서 제시한 지침을 따랐던 것으로 보일 정도다. 그밖에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적 지식인이면서 작가인 톰 하트만(Thom Hartman)의 『2016 미국 몰락』이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책에도 파월 메모와 관련된 상세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으니 참조하기 바란다.

나아가 파월의 지침은 2010년 시민연합(Citizens United)이 미국 연방선거위원회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승소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기업은 자기가 지지하는 정치인들에게 무제한 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갖게 됨으로써 입맛에 맞는 정치인들을 당선시키는 결정적인 키를 쥐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비장기업의 소유주인 코크 형제(Koch brothers)이다. 이들의 활약상은 앞에서 언급한 하트만의 책에도 잘 정리되어 있다. 여기서 특히 루이스 파월과 관련된 사건을 비교적 소상하게 언급한 이유는 이와 유사한 일들이 분명 한국 사회에서도 벌어졌을 것으로 짐작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현 정부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으로 믿어 의심하지 않으며 향후에도 이런 일이 절대로 발생해서는 안 된다. 기업이 부와 권력을 동시에 장악하려는 시도는 결국 공동선을 파괴하고 스스로 파멸하는 길로 접어들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다시 라이시 교수의 주장으로 돌아가 보자. 그는 이 세 가지 사건들의 배후에 있는 공통된 기조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whatever it take)”라는 태도로 요약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닉슨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권력을 유지하려 했으며, GE의 전문경영자로서 한때 “경영의 신”으로 불렸던 잭 웰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익을 극대화하려 했고, 이는 정크본드를 이용해 기업을 사고팔았던 마이클 밀켄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루이스 파월은 기업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정치와 언론, 그리고 교육을 장악해 소수의 부유계층이 효과적으로 미국을 지배하도록 촉구했다는 것이다. 라이시에 의하면 이들로 인해 촉발된 사회 분위기는 미국에서 공동선이 퇴조하게 만들고 일반대중도 이에 부화뇌동해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데 전력을 다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미국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라이시 교수의 이런 지적은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필자가 기억하는 한 한국 사회에서 공동선에 대한 공개적이고도 깊이 있는 논의가 진행된 적이 없었다. 오로지 정부 차원에서 권력 안정과 재창출을 위해 전략적으로 내놓은 허울 좋은 국정지침만 있었을 뿐이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1961년 5.16 쿠데타에 성공한 후 군사정부에서 내놓은 “부정부패 추방”이라든가 1981년 신군부가 제5공화국을 출범시키면서 내놓았던 ”정의사회 구현“과 같은 슬로건은 단지 정치적 상징 조작의 일환이었을 뿐 한국 사회에 공동선을 확립하는 데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다. 오히려 국민들의 냉소적인 반응만 초래했을 뿐이다. 이런 상황은 이후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시민적 차원에서 대다수가 지지할 수 있는 공동선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제시하는 지침은 그것이 무엇이든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형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동선이라 할 수 없다.

ⓒ픽사베이

여기서 늦은 감이 있지만 잠깐 공동선이란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공동선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다른 내용을 갖고 있기에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이지만 대체로 “사회 구성원 전부 또는 대다수에게 혜택을 주는 물질적 또는 비물질적인 것들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물질적, 제도적, 관념적인 것들 가운데 모두에게 이익이 되고 혜택을 제공하는 것들은 공동선에 포함될 수 있다. 그리고 공동선이라는 개념은 실체와 과정 모두에 적용된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공공도서관이 공동선에 포함된다고 할 때는 실체적 측면에서 말하는 것이고, 공공도서관을 건립하는 것이 공동선이라고 할 때는 공동선에 이르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공동선에 관한 논의는 주로 정치와 철학의 관점에서 이루어져 왔으며 매우 포괄적이기 때문에 현실에 적용하는 데는 적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도덕적 측면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공동선을 실천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이제 경제적 관점에 초점을 맞추어 좀 더 구체적으로 공동선을 논의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나아가 경제적 공동선에 관한 논의를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논의로 압축하면 더욱 구체적인 대안을 모색할 수 있다. 그럼에도 경제적 공동선은 여전히 포괄적인 개념이기에 필자는 공동선을 파괴하는 것들, 예컨대 도덕적 해이나 지대추구행위 등을 추방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공동선의 소중함을 알리는 더 나은 전략이라고 본다. 필자는 이와 같이 공동선을 파괴하는 모든 것을 “공동악(common bad)”이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구글을 검색해도 이 용어가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마도 필자는 최초 명명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해도 무방할 듯 하다.

한국 사회에서는 경제적 공동선을 파괴하는 행위가 오히려 능력의 상징으로 간주되는 기가 막한 현실이 오랫동안 지속되다 보니 이제는 이것이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공동선을 주창하는 것은 마치 사회주의나 전체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의 허무맹랑한 구호로 매도되기도 했다. 그러나 공동선을 실천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개인의 자유와 가치를 보호하는 방법이다. 로버트 라이시 교수의 표현대로 공동선이 없으면 사회도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사회가 해체되면 모두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 사회통합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공동선은 불가결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에 대한 논의가 절실한 것이다.

필자가 경제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그래야만 실천 가능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동악을 추방하는 데 집중하자는 것은 전략적으로 이 방법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도덕적 해이와 지대추구행위는 공동악의 일례에 불과하다. 우리 모두의 의견을 모아 구체적으로 한국사회의 “공동악 리스트”를 만들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합의를 바탕으로 기업부터 공동악을 추방하는 운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다 하는 조직으로서 거듭 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한국 사회를 선도하는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할 수 있다. 이제는 기업이 환골탈태(換骨奪胎)한 모습으로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할 때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을 이루는 파괴적 기술의 파급효과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주체는 기업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한국 사회를 선도할 새로운 기업의 등장을 기대하는 것이 과연 불가능한 일인가? 

 이영환

  동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지식협동조합 <경계너머 아하!> 이사

  <시장경제의 통합적 이해> 외 다수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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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환 동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ylee11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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