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혜탁의 말머리]

부다페스트는 아름다웠다.

고개를 돌리면 눈에 들어오는 모든 장면이 그림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멀리 떠난 첫 여행, 우리는 부다페스트에서 먹고 마시고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이 좋았다.

사실 신혼여행으로 휴양지를 많이 권유받곤 했다. 결혼 준비로 그동안 매우 피곤했을 테니, 따뜻한 햇볕을 쬐며 바닷가에서 여유롭게 쉬라는 취지였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그런데 그녀와 나는 왠지 모르게 예전부터 헝가리가 끌렸다. 부다페스트의 거리를 같이 걷고 싶었다. 연애할 때에도 막연하게나마 우리가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되면 부다페스트에 가자고 했다.

때로는 이런 막연한 끌림이 가장 강력한 선택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결혼준비에 막 돌입했던 수개월 전 그녀와 나는 헝가리행 티켓을 끊었다. 분에 넘치는 축하를 받고 우리는 이스탄불을 거쳐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헝가리에서 낭만적인 하루하루를 보내던 마지막 날, 우린 겔레르트 언덕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하늘색 커플 운동화를 신은 우리는 100년이 넘은 에르제베트 다리를 걸어서 건너 겔레르트 언덕까지 가기로 했다.

사진에서만 보던 시타델라 요새 속 높이 40m의 자유의 여신상이 눈에 들어왔다. ‘자유’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역사적인 맥락에서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찌 됐건 다리를 건너기 전부터 눈에 들어온 그 모습은 퍽 인상적이었다.

부다페스트의 아름다운 건축물, 풍경, 음식에 취할 대로 취해버렸던 그때, 나와 그녀의 눈은 동시에 한곳에 잠시 머무르게 되었다. 깨끗한, 연한 베이지색 재킷을 입고 크로스백을 맨 할아버지, 또 비슷한 색의 코트를 입고 가방을 들고 있는 할머니. 그리고 맞잡은 그들의 손.

‘카페인족(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는 거리가 멀어서인지, 부지런히 사진 찍는 것에 둔한 나는 결례일 수도 있음을 알면서도 두 분의 뒷모습을 멀리서 나의 오래된 카메라에 담았다.

©석혜탁

수년 간의 예쁜 연애 끝에 이제 막 결혼식을 마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그녀와 나. 결혼식을 마친 당일 유럽으로 날아가서 하루에 다섯 시간씩 자면서 부지런하게 여행을 다녀도 하나도 지치지 않은 젊디 젊은 한 쌍. 예쁜 거실에, 아늑한 안방에 어떤 소품을 어떤 각도로 배치할지 고민하기 바쁜 우리들 눈에 저 정갈한 어르신들의 뒷모습이 왜 그렇게 크게, 그리고 묵직하게 다가왔을까.

큰 버스가 오는 것을 보고, 부인의 손을 꽉 잡았던 할아버지. 헝가리의 그 어떤 풍광보다 이채로웠던 노부부의 뒷모습을 보며 다짐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초록불을 기다릴 때도, 빨간불을 만나게 될 때도 있을 터. 또 큰 버스가 우리 눈 앞에 늘 왔다 갔다 하게 될 진대, 언제든 그녀의 손을 놓지 않겠노라고. 그리고 내가 훨씬 더 그녀를 많이 사랑하겠다고.

두 어르신이 우리에게 준 큰 울림, 그 울림의 여파가 따뜻하게 남아 있는 늦가을 저녁. 나는 노트북을 열어 글을 쓰고, 그녀는 헝가리에서 산 작은 찻잔에 커피를 담아준다. 오랜만의 출근을 앞두고 쓰는 이 글에 그녀가 타 준 커피의 잔향이 담기기를. 또 언젠가 우리도 수십 년 후 노부부가 될 텐데, 그때 우리의 뒷모습을 보며 어떤 젊은 연인이 우리처럼 미래의 자신들의 모습을 그려보게 되길.

부다페스트는 아름다웠다. [오피니언타임스=석혜탁] 

 석혜탁

대학 졸업 후 방송사 기자로 합격. 지금은 기업에서 직장인의 삶을 영위. 
대학 연극부 시절의 대사를 아직도 온존히 기억하는 (‘마음만큼은’) 낭만주의자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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