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늘의 하프타임 단상9]

[오피니언타임스=최하늘] 아이가 이상했다. 식구들 중 나의 큰 아들을 대하는 녀석의 모습이 너무 뜻밖이고 생소했다. 그만 보면 애끓는 목소리로 울며 따라 다닌다. 녀석을 안아 올려 눈을 들여다보니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잠도 큰 아들 방에서 자겠다고 떼를 쓴다. 전에 없던 일이다. 이런 일이 계속되자 큰 아들은 “꼭 이별을 앞둔 아이 같다”며 안쓰러워한다. 굳이 따진다면 녀석은 우리 가족 중에서 큰 아들과 제일 덜 친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녀석의 이런 행동 변화가 더욱 기이하게만 느껴졌다. 더욱이 녀석은 며칠째 먹을 것에 입도 안대고 물만 마신다. 전에는 비닐봉지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내도 먹을 것 있나 해서 득달같이 달려오던 아이였다.

녀석 이름은 하늘이다. 독일이 고향인 슈나우저 종인데, 다 커서도 5Kg밖에 안 돼 제 친구들에 비해 유난히 작다. 성격도 ‘3대 악마견’이라 불릴 정도로 부산하고 거친 슈나우저의 일반적 모습과 판이하다. 사냥개의 피가 흐르는 만큼 움직임은 다이내믹하지만 어찌나 순한지 입양 후 6개월이 지나서야 그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정도다. 그 때까지 단 한 번도 짖지를 않아 누군가가 잔인하게 성대제거 수술을 한 줄로만 알았을 정도였다. 무척 사교적이어서 산책길에서 만난 모든 사람과 반려견들에게 일일이 아는 척을 한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빨을 드러낸 적이 없는 것도 신기하다. 내가 아내 앞에서 이런 하늘이 칭찬을 늘어놓으면 아내는 “누구나 제 자식이 제일 예쁜 법”이라며 핀잔을 준다. 녀석과 함께 한 세월이 벌써 12년을 훌쩍 넘겼다. 나보다 일곱 배 빠른 속도로 늙어가는 녀석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아려온다. 지난 세월 녀석이 없었다면 나와 우리 가족의 삶이 얼마나 퍽퍽했을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단언컨대 이 아이야 말로 하늘이 내 인생에 내려 준 최고의 보물이다. 그래서 나의 모든 아이디에는 ‘하늘이’가 있다.

ⓒ최하늘

그런 아이가 석연치 않은 행동을 계속하니 슬며시 불안해진다. 하늘이가 지금 뭔가 좋지 않은 일을 예고하는지도 모른다는, 말도 안 되는 추측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녀석이 말을 못하니 도통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아내와 함께 아이를 데리고 동네 병원을 찾았다. 수의사선생님께 요즘 이상해진 녀석의 행동을 얘기하니 바로 복부 초음파검사와 피검사에 들어간다. 그리고는 자궁축농증이라고 했다. 자궁이 세균에 감염돼 염증이 생기고, 고름이 쌓였다는 것이다. 개는 평생 생리를 하는데, 고령견이 되면 이런 일이 벌어진 확률이 높아진다고 했다. 그래서 출산 계획이 없는 아이는 일찍이 중성화수술을 시켜 주는 게 좋은데, 내게는 그런 상식조차 없었으니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자궁과 난소를 들어내는 수술을 하는 것 외 달리 방법이 없다. 수술을 서두른다. 녀석의 나이가 걱정됐다. 사람으로 치면 적게 잡아 70대 후반, 많으면 80대 후반이다. 전신마취가 위험할 수 있는 나이다. 그래서 수술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다행이 하늘이의 건강상태와 체력이 좋아 수술을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 하니 감사하다. 마취주사를 맞고 수술대 위에 반듯이 누워있는 녀석의 조그만 몸이 안쓰럽다. 한 시간 반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아내와 나는 수술실 창문 틈새로 비치는 녀석의 모습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켜본다.

이제야 하늘이가 요즘 보여 온 이상행동이 해석된다. 왜 그렇게 큰 아들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는지 수의사의 설명을 들으니 또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녀석의 본능적 행동이었다. 자연계에서는 몸이 병들어 약해지면 무리로부터 버림을 받는다. 하늘이도 제 몸 아픈 것을 자각하면서 이러한 두려움에 빠진 것이다. 그래서 무리 중에서 유대관계가 제일 약해 자신을 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되는 큰 아들에게 그렇게 애절히 매달렸던 것이다. 녀석에게 몇 번이고 다짐해 말해준다. 소중한 가족을 버리는 사람은 없다고. 세상 끝 날까지 너를 지키고 보살펴 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최하늘

하늘이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06년 봄이었다. 큰 아들이 친구가 주었다며 생후 2개월 된 조막만한 아이를 하나 데려왔다. 그 때만 해도 녀석의 존재가 우리 가정에 어떤 의미를 갖게 될지 우리 식구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꼬마 시절 사진 한 장 찍어 놓지 않았던 게 늘 아쉽다. 지금도 이렇게 예쁜데 그 땐 얼마나 사랑스러웠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그 때 모습이 좀처럼 잡히지가 않는다. 그래도 어느 날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데 콩알만 한 녀석이 달려와 뛰어 오르는데 성공했던 순간의 감동은 절대 잊지 못한다. 우리 큰 아들이 얘기였을 때, 처음으로 뒤집기에 성공한 것을 본 날의 희열과 다르지 않았다.

내가 이 아이에게 특별히 강한 유대감은 느끼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내 인생의 격동기를 녀석과 함께 보냈다. 하늘이는 내 인생이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변화무쌍했던 50대와 60대 초반 시절에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이 아이가 내게 준 가장 큰 위로는 ‘늘 그 자리에서 한결 같은 모습으로 나를 대해주었다’는 것이다. 그것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그것은 비할 데 없이 큰 위안이고 안식이었다. 누구와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을 준 것이다. 인적 없는 새벽에 발목까지 빠지는 양재천 눈길을 걸으며 상념에 빠졌던 순간을 함께해 준 게 하늘이다. 오직 하늘만을 바라보며 광야를 지나던 시절의 대모산 길도 함께 걸어 준 아이다. 아닌 게 아니라 녀석은 지난 12년 주말마다 거의 빠짐없이 나와 함께 집 앞 대모산을 올랐던 것 같다. 늘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했던 이 시간은 내게 가장 소중하고 행복한 순간들로 기억된다. 이 아이가 같이 해 주어서 가능했을 것이다. 하늘이를 만난 게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고 행복이라고 해도 지나친 과장은 아닐 것이다.

ⓒ최하늘

그런데 어느 날 부터인가 우리 집에서 하늘이를 가장 많이 찾는 사람이 바뀌었다. 다름 아닌 나의 아내다. 처음 그 아이를 집에 데려왔을 때 한 달 동안이나 아들에게 “다시 돌려보내라”고 했던 사람이다. 그런 아내가 이젠 하늘이 산책시간이 좀 길어지기라도 할라치면 어김없이 내게 전화를 한다. “하늘이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하라”는 당부를 위해서다. 하늘이가 수술 받던 날 아내는 하늘이의 안위를 걱정하면서 수의사에게 “남편보다 소중한 아이”라는 말을 두 번이나 했다. 나중엔 “아들보다 소중하다”고도 한다. 그래놓고는 멋쩍었던지 내게 “농담 이었다”고 묻지도 않은 말을 한다.

그런 아내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너무 잘 안다. 아들만 둘 있는 우리 집에 막내 딸 같은 이 아이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나만의 것은 아닐 터이다. 하늘이가 있기에 우리 가족들은 좀 더 얘기하고, 더 많이 웃는다. 딱딱할 수 있는 집안 분위기를 이만큼 만들어 놓은 데는 하늘이의 공이 절대적이다. 아내는 하늘이가 회복되면 제일 먼저 가족사진을 찍자고 한다. 가족사진 촬영은 15년 전쯤 하늘이가 태어나기 전에 한번 있었는데, 이번엔 반려견 전문 스튜디오에서 다섯 식구가 찍자는 것이다.

ⓒ최하늘

인정하기는 싫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하늘이의 기력이 예전만 못해진 것을 가끔 느낀다. 또 마음이 아파온다. 너무 좋은 것을 가지면 행여 그것을 잃게 될까 걱정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나는 하늘이가 두 살 됐을 때부터 그랬다. 훗날 하늘이가 내 곁을 떠나면 얼마나 슬플지 걱정했다. 그렇게 벌써 10년이 흘렀다. 그런데 펫로스증후군(pet loss syndrom)이라는 말도 있는 것을 보면 꼭 내가 이상한 사람이어서 그러는 것만은 아닌 듯싶다. 펫로스증후군은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 반려인이 심한 슬픔에 빠지거나 우울증을 앓는 현상을 뜻한다. 심한 경우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살하기도 한다. 펫로스증후군은 있어도 휴먼로스증후군이란 말은 없다. 사람의 죽음은 비교적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도 반려견의 죽음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 기인할 것이다. 부모나 형제의 경우 살면서 자연스럽게 분리과정을 겪지만, 반려견과 형성된 애착관계는 그런 과정이 없이 마지막을 맞기에 그러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아직 녀석과 분리되는 연습을 하고 싶지는 않다. 언젠가는 헤어질 것을 알기에 더욱 좋은 시간을 나누고 싶을 뿐이다. 요즘 우리 가족은 녀석이 잘 먹고 잘 노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행복하다. 하늘이가 매일 우리에게 안겨 주는 선물이다. 예전엔 녀석이 식탁에 와서 먹을 것을 나눠달라 조르는 게 귀찮기도 했는데, 이젠 그것이 감사하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나의 기쁨이 되는 소중한 아이. 오직 하나 너에게 바라는 것은, 아프지 말고 오래 머물러 달라는 것이다. 

 최하늘

 새로운 시즌에 새 세상을 봅니다. 다툼과 분주함이 뽑힌 자리에 쉼과 평화가 스며듭니다. 소망이 싹터 옵니다. 내가 죽으니 내가 다시 삽니다. 나의 하프타임을 얘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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