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미주의 혜윰 행]

[오피니언타임스=최미주] 며칠 전 ‘만신(萬神, 무당을 높여 부르는 말)’으로 불렸던 오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한 때 노량진에서 임용고시 준비를 하며 살았을 때 공식 커플의 결혼소식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수험생으로 만나 결혼까지 하는 그들이 너무 신기했다. 만신 오빠의 근황이 궁금했으나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고, 잠시 노량진 시절의 생각에 잠겼다.

2015년 겨울, 1차 불합격 통보를 받은 수험생들끼리 기분이 울적할 때마다 자주 가던 술집에 모여 신세한탄을 했던 그날이 떠오른다. 당시 중등 교원임용고시 1차 합격자 공고에는 ‘합격을 축하합니다.’ 혹은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라는 성의 없는 글자만 적혀 있었다. 모범답안을 비롯해 자신의 점수마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수험생의 1년간 노고는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 단 한 줄로 요약, 정리됐던 것이다.

만신 오빠는 그중에서도 장수생이었다. 시험에 계속해서 떨어지자 앞길이 하도 막막해 합격을 비는 굿을 한 뒤로 사람들은 그를 ‘만신(萬神)’이라고 불렀다. 힘들게 뒷바라지 하시는 부모님께 죄송해 늘 어깨가 쳐져 있던 만신 오빠가 술에 취해 “무당은 사기꾼”이라며 술주정을 시작했다.

대보름맞이 대동놀이굿 한마당에서 굿판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오빠는 답답한 마음에 어머니와 함께 서울에서 유명하다고 소문난 무당을 찾았고, 무당은 올해 합격할 운이 강하다며 합격을 확실하게 보장받고 싶으면 얼마를 주고 굿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그는 건강이며, 기분이며 다 맞추는 이름난 무당의 권유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굿을 했고, 신으로부터 합격을 보장받았다. 애석하게도 오빠의 1차 합격 결과가 신의 통보와 엇갈렸다. 그날 밤 우리는 서로의 손을 부여잡고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만신 오빠와 달리 시험을 제대로 준비하기도 전에 무당에게 악담을 듣고 울던 언니도 있었다. 임용고시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해도 되겠냐는 언니의 질문에 무당은 ‘당신은 관운이 하나도 없어서 엄청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당신은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니 포기해라’고 말했다고 한다. 어떻게 ‘노력하지 않을 것 같다’도 아니고,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확신할 수 있냐며 울던 언니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오는 11월 24일 예정인 교원임용고시 접수가 지난주에 끝났다. 각 지역 교육청은 최종 경쟁률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또 어딘가에서 한 수험생이 유명한 점쟁이로부터 합격에 관한 정보를 듣고 울거나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합격을 보장받고 굿을 했던 만신 오빠는 현재 임용고시를 포기한 뒤 다른 일을 하고, 무당으로부터 독설을 듣고 울던 언니는 이를 갈고 공부한 끝에 올해 9월 정교사가 되었다.

무엇이 그들의 삶을 결정지었을까? 진인사대천명,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서 하늘의 뜻을 기다리라는 말이 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미래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그저 묵묵하게 자신이 원하는 일에 전력을 다하는 것, 그것이 신을 뛰어넘는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최미주

일에 밀려난 너의 감정, 부끄러움에 가린 나의 감정, 평가가 두려운 우리들의 감정.

우리들의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감정동산’을 꿈꾸며.

100가지 감정, 100가지 생각을 100가지 언어로 표현하고 싶은 쪼꼬미 국어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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