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규의 하좀하]

[오피니언타임스=한성규] 21살, 아직 활짝 피어나기도 전에 한 생명이 사라졌다.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누군가의 아들로, 친구라는 이름으로 자신과 관계 맺은 모든 이들의 가슴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최근 PC방 살인사건으로 모델이라는 밝은 꿈을 꾸며 어려운 가정형편을 헤쳐나가던 한 청년이 숨을 거두었다. 서비스가 불친절하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서비스가 불친절하다는 이유로 손, 머리 등을 30차례나 칼로 찔렀다고 한다. 아무리 심신이 미약했다고 하지만 이런 일이 과연 정상인가?

ⓒ픽사베이

타인으로서 한국 사람

외국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온 나에게 사람들은 묻는다.
“오래 외국에 나갔다 오면 한국 생활 적응이 돼?”
다 좋다. 음식도 맛있고, 생활하기 편하고, 사람들도 따뜻하고, 서비스도 외국에 비하면 월등히 좋다. 진짜 서비스는 외국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좋은데.
내가 정말 적응이 어려운 게 딱 한 가지 있다면 타인으로서의 한국 사람들이다. 길거리에서 아무 이유 없이 적대적인 한국인들이다. 한국친구들은 정말 좋다. 관계를 맺게 된 한국친구들은 정말 친절하다. 계산하지 않고 나를 챙겨주고 항상 나를 도와주려고 한다. 하지만 나와 아직 관계를 맺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가 불가능할 정도로 무례하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밀치고도 아무렇지 않게 활개 친다.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먼저 가려고 내 구역을 침범한다. 자기가 먼저 밀고도 째려보고, 새치기하고도 화내고, 이해할 수 없다.

한국 적응기

벌써 한국에 온 지 8개월이 지났다. 나도 이 타인에 대한 무례함에 적응을 해야 했다.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는 최고의 방법은? 그 사회 대다수 사람들의 행동과 사고방식을 따라하는 것이다. 나도 이제 길거리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면 미안하다고 하지 않는다. 내가 바쁠 때는 남들 배려고 뭐고 없다. 이러다 보니 내 성격도 바뀌었다.

한번은 약속 시각에 늦었을 때 버스를 탔다. 벨을 누르는 사람, 밖에서 손을 들어 버스를 부르는 사람에 대해 화가 났다. 한 번은 벨을 누른 아줌마가 내리지 않았다. 그 아줌마 때문에 버스는 이유 없이 섰고, 곧 교통 신호에 걸렸다. 아줌마에게 가서 따질까 하다가 가까스로 참았다.

버스카드를 찍느라 쭈뼛거리는 청년이 있었는데 싸우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밖은 또 어떤가, 버스를 타려고 몸짓만 취하고 타지 않는 녀석들에게 내려서 주의를 주려다 참았다. 천천히 내리는 사람, 빨리 안 타고 느릿한 사람들 다 내 신경을 건드렸다.

생활의 속도와 커뮤니케이션 문제

한국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정이 넘치지만, 너무 바쁘고 서두른다. 너무 바쁘니까 정을 보여줄 시간도, 상대를 배려할 시간도 없다. 그냥 남을 제치고 내가 먼저 가야 한다. 나는 바쁘니까 남이야 어떻게 되는 상관없다, 이다.

또 다른 문제는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이다. 한국 사람들은 친밀한 관계가 아닌, 타인과의 소통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 친구들은 입을 모아서 말한다. 한국 상사들은 자기의 생각을 한번 읽어봐라, 하는 식으로 업무 지시를 내린다고. 공장이든 사무실이든 다 똑같다. 친구들과는 밤새도록 수다를 떠는 문화가 있으면서 자신과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는 최대한 피한다. 길을 가다가 부딪쳤을 때는 사과 한마디면 끝이 난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가. 친구라면 어떤 잘못을 해도 다 관대하게 넘어가지만, 모르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칼까지 들고 덤빈다. 이게 정상인가?

죽음이 문제인가, 경제가 어렵다는데, 라는 사회

경제가 어렵다는 소식에 벌써 사라져간 한 생명에 대한 뉴스는 묻혀버렸다. 하지만 이런 타인과의 소통의 문제로 인해서 얼마나 불필요한 경제적 비용이 드는지 아는가? 타인과의 불신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아시는가? 이게 다 경제에 안 좋다. 대한민국 경제를 끌고 가는 자동차와 조선이 힘들다는데, 이 경제를 끌고 가는 주체인 사람들은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죽어간다. 이것보다 더 큰 경제문제가 어디 있나.

한국 문화는 물론 좋은 점이 많이 있다. 하지만 변화하는 사회생활에 안 맞는 것이 있다면 아무리 전통 미덕이라고 하더라도 과감하게 바꿔가야 한다. 타인과의 접촉을 조심하고 꺼리는 것이 동방의 이유 있는 옛 미덕일 수도 있다. 하지만 더는 아니다.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대한민국은 변화가 많을 것이고 그 변화속도 또한 다른 나라보다 훨씬 빠를 것이다.

PC방 살인사건이 일어나자 즉시 피의자가 조선족이라는 소문이 퍼져 근거 없는 분노가 번졌다고 한다. 또 심신미약 감형논쟁만 벌이다 잠잠해졌다. 제대로 벌주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불필요한 싸움이 아예 벌어지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계속해서 빨라지는 사회 속도의 문제와 불특정다수에 대한 분노,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이번 사건처럼 문제가 심각해졌을 때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한성규

현 뉴질랜드 국세청 Community Compliance Officer 휴직 후 세계여행 중. 전 뉴질랜드 국세청 Training Analyst 근무. 2012년 대한민국 디지털 작가상 수상 후 작가가 된 줄 착각했으나 작가로서의 수입이 없어 어리둥절하고 있음. 글 쓰는 삶을 위해서 계속 노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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