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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하루는 삶의 모든 나날이었다[김호경의 현대인의 고전읽기]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One day in the Life of Ivan Denisovich)
김호경 | 승인 2018.11.05 10:54

감옥에 가두어야 할 이유는 많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거대한 체육관에 모여 있다. 이윽고 높으신 양반이 입장한다. 사람들은 모두 일어서 열렬한 박수를 친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그런데 박수라는 것은 시작이 있었기에 끝도 있어야 한다. 아무리 뜨거운 환영이라 해도 무한정 박수를 칠 수는 없다. 그리하여 적당한 시기(길어봐야 1~2분)에 박수는 멈춘다. 이것이 문제가 된다. 행사가 끝난 후 정보부는 수천 명 중에 한 명을 붙잡아 족치기 시작한다.

“왜 박수를 멈추었지? 높으신 양반에 대한 저항 혹은 비웃음의 표시인가?”

“아닙니다. 저는 높으신 양반을 몸과 마음으로 존경합니다. 단지 제 옆 사람이 박수를 멈추어서 저도 어쩔 수 없이...”

정보부는 이제 그 옆 사람을 찾아내 족치기 시작한다.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추적하여 맨 처음에 박수를 멈춘 불순분자를 찾아내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낸다. <수용소 군도>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한 사회와 국가를 유지하기 어렵다. 국가 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국민의 권리, 행복, 존재보다 앞선다. 수용소 혹은 감옥에 가두어야 하는 이유는 수백, 수천 가지가 넘는다.

다행히 우리나라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비슷한 이야기는 적지 않다. 1970년대 유신시절에 한 선생님이 수업 도중에 “남북은 통일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3일 후 그 선생님은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시베리아의 강제노동수용소(영화의 한 장면) ⓒ김호경

아무도 죄가 없으며, 모두 엄청난 죄를 저질렀다

소련의 스탈린은 레닌의 뒤를 이어 정권을 장악한 후 1925년 무렵부터 무자비한 숙청을 단행하여 대략 2천만 명을 사형, 투옥, 유배시켰다. 경제정책의 실패로 수백만 명이 아사하기도 했다.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으나 전쟁 기간에도 반혁명분자라는 죄명을 뒤집어 씌워 수백만 명을 죽였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위대한 혁명 조국’을 만들기 위해 잔인한 학살, 투옥, 숙청, 유형/유배, 추방은 계속되었다.

세니카 클렙신은 독일군과 전투를 치르다가 포로가 되어 바이마르의 부헨발트(Buchenwald Concentration Camp)에 감금당했다. 고문으로 청력을 잃었으나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독일군 스파이라는 이유로 수용소로 보내졌다. 안드레이 프로코피예비치는 육군 일병이었지만 아버지가 부농이었기에 군에서 쫓겨나고 수용소로 왔다. 영화감독 체자리 마르코비치는 영화에 공산주의 이념과 다른 표현을 넣었다는 비판을 받아 수용소에 감금되었다. 부이노프스키는 해군 중령이었으나 영국 해군 제독에게서 선물을 받은 것이 문제가 되어 간첩죄로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시베리아 이곳저곳의 강제수용소 굴라크(Gulag)에 갇힌 사람들의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아무도 죄가 없다는 점이다(실제 간첩행위를 한 사람도 있기는 하다). 주인공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Ivana Denisovicha Schuhhof)는 평범한 농부였다. 독소전(獨蘇戰)에 참전했고 1943년 독일군에 생포되어 2일 동안 붙잡혀 있다가 귀환했다. 그것이 그의 죄였다.

수용소가 고달픈 이유는 사람이 있기 때문

굴라크는 ‘국가보안국 교정노동수용소의 주관리기관’이지만 통상 수용소 자체를 의미하는 단어로 쓰였다. 굴라크는 소련 땅에 480여 개가 있었으며 1929~53년까지 1800만 명이 이곳에서 노동을 했고 매년 10%가 사망했다. 사망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지경이다. 굴라크에 갇힌 사람들의 일과는 처참을 넘어 극에 달했다. 시베리아는 얼어붙은 땅, 즉 동토(凍土)이다.

도대체 무엇으로 불을 피운단 말인가? 꼿꼿한 동태가 되지 않으려거든 죽어라고 곡괭이를 휘두르는 수밖에 없다.

어느 해 겨울인가는 밑바닥에 낡은 타이어 조각을 댄 짚신 비슷한 물건을 신발이라고 꿰신고 다닌 적도 있었다.

빈대 투성이의 낡은 담요, 누더기와 다름없는 옷, 몇 숟가락에 불과한 까샤(죽), 썩은 생선과 야채로 수프 흉내를 낸 발란다, 검은 빵 흘렙이 주식이다. 이나마도 풍성한 음식이다. 5일에 하루는 절식일(絶食日)로 정해져 있어 거의 굶주려야 했다.

이렇게 먹고 늘 영하의 날씨에서 새벽 5시부터 무지막지한 중노동을 해야 한다.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기에 날씨가 너무 추우면 노동이 중단된다. 그 기준은 영하 41도이다. 지구촌의 평범한 사람들이 대부분 접할 수 없는 영하 20도 안팎은 매우 온화한 날씨에 든다. 그러나 거지같은 밥만 먹고 힘들게 노동만 한다 해서 못살 것은 없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고,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의미가 있는 행위이다. 수용소가 고달픈 이유는 그곳에 다름 아닌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최대 적은 사람이다. 권력자, 밀고자, 감시자는 어느 조직에나 있기 마련이고, 그곳이 고달픈 곳일수록 기승을 부린다.

ⓒ김호경
솔제니친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집필했다. ⓒ김호경

수용소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른바 ‘감금 문학’이 있다면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가 최고 걸작이다. 그 이유는 솔제니친(Aleksandr Solzhenitsyn)이 직접 수용소에서 강제노동 생활을 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소설이 집필되었기 때문이다. 솔제니친은 포병 대위로 동프로이센에서 복무하던 중 친구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스탈린을 비판한 문구가 있었다(그 편지를 당국에 보고한 친구는 누구였을까?). 카리닌그라드(Kaliningrad)에서 체포되어 모스크바 인근의 형무소에 머물다가 카자흐스탄 북쪽의 탄광 수용소로 옮겨졌다. 그곳에서 8년 1개월 동안 석공과 주조공으로 일했다.

이 소설은 그 중 하루의 일과를 새벽부터 밤까지 기록한 작품이다. 슈호프의 ‘하루’는 1년을 있었다 하여도, 100년을 있었다 하여도 똑같은 나날이다. 얼어붙은 침상에서 가까스로 일어나 빈한한 음식을 먹고, 강제노동을 하고, 틈틈이 담배를 얻어 피우고, 수감자들과 좋았던 시절의 이야기를 나누고, 감시자에게 벌을 받지 않고 무사히 하루를 마치기를 바란다. 그것이 최대의 행복이고 존재의 목적이다. 기적처럼 성경을 숨겨 들어와 몰래 읽는 알료사의 경건함과 위안은 바라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슈호프는 얼결에 하나님을 찾는다.

하나님, 덕분에 또 하루를 무사히 보냈습니다. 영창에 들어가지 않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여기서라면 어떻게든 견디어낼 수 있겠습니다.

알료사는 그 말을 무심히 넘기지 않았다.

“이반 데니소비치, 지금 당신의 입에서는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다. 왜 영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 것입니까?”

“어째서냐구? 기도라는 것은 죄수들이 써내는 진정서와 똑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꿩먹은 소식이 되기 일쑤고, 그렇지 않으면 ‘이유없음’이라고 퇴짜를 맞을 게 뻔하거든.”

수용소 본부 앞에 4개의 <진정서 접수함>이 붙어 있다. 뭐랄까? 군대의 <소원수리함>과 같다.

수용소는 조직의 축소판이고, 사회의 축소판이다. 다른 점은, 원하지 않았는데도 들어왔다는 점뿐이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상황, 인간의 행동은 여느 사회와 다를 바가 없다. 다른 점은, 생의 목표가 없다는 점뿐이다. 그러함에도 굳건히 살아가는 이유는 수용소 너머의 땅에 제한된 자유나마 있기 때문이다. 울타리 너머의 따뜻한 햇빛이 내려쬐는 온토(溫土)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솔제니친은 8년 1개월 동안 강제노동을 한 뒤 운좋게 살아남아 이후 교사를 거쳐 세계적 작가가 되었다. 제104 작업반 수인번호 III-854번 이반 데니소비치는 정확히 10년을 채우고 석방되었다. 3,653일을 이 소설처럼 하루같이 보냈다. 10년이면 3,650일이어야 하는데 왜 3일이 늘어났을까? [논객닷컴=김호경] 

스탈린에게 추방당한 레온 트로츠키 ⓒ김호경
<어머니>의 작가 막심 고리키 ⓒ김호경

* 더 알아두기

1.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흐루시초프가 집권한 이후 스탈린을 비판하는 정책이 있었기에 출간이 가능했다. 그러나 훗날 솔제니친이 반체제 소설을 연이어 발표하자 1974년 국외로 추방했다. 감옥에 가두지 못했던 이유는(잠시 레포르토보 감옥에 있었다) 1970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세계적 작가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2. 러시아어 원제는 Odin den’ Ivana Denisovicha이다. Odin은 “낮, 주간, 해가 떠 있는 동안, 일광, 하루”의 뜻이다. 이 제목을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로 번역한 것은 괜한 멋을 부린 듯싶다.

3. 러시아 혁명을 다룬 소설로는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Mat)가 가장 유명하다. 보리스 페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를 혁명소설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러시아 혁명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책은 김학준의 <러시아 혁명사>이다.

4. 스탈린과 권력투쟁을 벌이다가 패하여 추방당한 뒤 멕시코에서 사망한 트로츠키(Leon Trotsky)의 <배반당한 혁명>(The Revolution Betrayed)은 스탈린의 실체를 여실히 보여준다.

5. 1990년 12월 28일 신문기사에 의하면 카리닌그라드는 40년 동안 외국인 출입이 금지되었으나 “1991년 1월 1일부터 개방한다”고 보도되었다.

6. 도스토예프스키는 시베리아의 옴스크(Omsk) 감옥에 수용되어 4년을 보냈다.

7. 러시아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는 이반 알렉세예비치 부닌(1933), 보리스 파스테르나크(1958), 미하일 숄로호프(1965), 알렉산드르 솔제니친(1970), 조지프 브로드스키(러/미 1987)로 모두 5명이다. 그후 31년 동안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호경

1997년 장편 <낯선 천국>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여러 편의 여행기를 비롯해 스크린 소설 <국제시장>, <명량>을 썼고, 2017년 장편 <삼남극장>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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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경  sosul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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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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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철웅 2018-11-05 12:58:43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더 알아두기에 착오가 있습니다. 원제 Odin den’ Ivana Denisovicha(러시아어로는 Одинь день Ивана Денисовича)에서 ‘하루’는 Odin den’(영어로 치면 One day)입니다. Odin은 One이고 den’이 day지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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