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호의 멍멍멍]

[오피니언타임스=이광호] 최근 제기된 사립 유치원 비리 문제는 교육 현장 또한 완벽한 곳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했다. 유치원이나 학교는 교육기관이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아 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학교에도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견제와 합리적 의심을 통해 개선해 나가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체감해본 기억이 거의 없다.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가보자. 반장은 학급을 대표하는 직책이지만 유인물을 나눠주는 등의 심부름을 하거나, 수업시작과 끝에 차렷, 열중쉬어 인사를 하는 게 고작이었다. 학생들의 목소리를 아래에서 위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와 선생님의 말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이었다. 그나마 존재하는 학생회나 회의 시간 또한 형식적으로 이루어질 뿐이었다. 학교의 구성원이라는 동등한 주체로 선생님과 마주한 기억은 분명 없었다.

충북 보은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지난 7일 수능 수험생들의 고득점을 바라며 풍선을 날리고 있다. ⓒ보은여고

학교는 가장 안전하고 민주적이어야 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경쟁이라는 가치에 스스로 매몰되어 버렸다. 문제 유출이나 성적 조작 등의 사건들은 그 수법이 점점 교묘해지고 있다. 학교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분노하지만 ‘점수만 잘 받으면 된다’, ‘일단 좋은 대학에 가는 게 우선이다’고 말했던 우리의 생각을 먹고 자란 것이기도 하다. 교육현장의 비리는 되돌리기도 쉽지 않다. 수능이 아닌 내신에 문제가 발생한 경우에는 교육부가 나서서 합격을 취소할 수도 없다. 대학 측에서 취소를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성적 외의 부분이 합격을 좌우했다고 하면 합격을 취소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법원의 판결이 결정적이겠지만 대법원 판결까지 기다린다면 이미 대학에 합격된 후일 것이다.

학교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그것 뿐 아니다. 교사와 제자 사이에 성희롱이나 성폭행과 같은 범죄가 일어나기도 한다. 학생들은 불이익을 받을까봐 아무 말 하지 못하고 넘어가거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간신이 입 밖으로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나 사회는 피해자를 비난한다. 그걸 왜 이제야 말하느냐, 뭔가 다른 걸 원하는 건 아니냐면서 말이다. 아니다. 범죄의 책임은 전적으로 가해자에게 있다. 그리고 학교가 이렇게 될 때까지 방치한 우리도 공범이다.

학교와 교육이 정상적이었다면 피해자가 부끄러워해야 할 필요도, 본인에게 잘못이 있지는 않은지 탓해야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학교는 옆자리의 친구를 경쟁자로 만든다. 모든 것을 나중으로 미룬다. 교복이 불편하다, 복장 규정이 과하다 주장하면 대학 가서 마음껏 사복 입으라 한다.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눈엣가시로 여긴다. 문제 삼는 사람을 문제 삼는다. 조용히 학교의 규정과 시스템을 잘 따른 사람만이 살아남는다. 이렇다보니 학생들은 문제가 생기면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부터 생각한다. 선생님이, 학교가 잘못되었을 거라는 의심은 허용되지 않는다.

다음 주에 수능을 본 학생들이 입학하게 될 대학은 사정이 다를까. 아니다. 대학도 더 이상 민주적인 공간이 아니다. 어느 학교의 일이라 특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많은 대학에서 민주주의가 무너졌음을 보여주는 사건들이 반복되고 있다. 교수의 성희롱, 성추행, 재단의 비리, 음주를 강요하는 술 문화, 학보사 독립성 침해, 총장 선출 과정의 문제 등 말이다. 학생회나 학보사 등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들은 대학에, 혹은 국가나 기업의 지원금 앞에서 힘을 쓰지 못한다. 그리고 그게 현실이라고 자각하게 된다.

여전히 학생 자치기구와 학내 민주주의에 열정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투표율이 부족하거나 입후보자 자체가 없어서 총학생회 없이 비대위 체제로 유지되는 학교들도 나타나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유는 여럿이다. 학생회가 학생들의 복지나 교육 환경 개선에는 신경 쓰지 않고 축제 등의 이벤트에만 집중한다는 비판의 여론도 있다. 정치적으로 편향된 총학생회에 대한 반감도 존재한다. 이렇다보니 학생회라면 비리를 저질렀을 것이라던가, 장학금을 받기위해, 스펙을 쌓기 위해 한다는 편견에 근거한 비판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 교복을 입어야 했던 학생들은 더 이상 화장실에 가도 되는지 묻지 않아도 될 것이고, 짜여진 시간표가 아닌 내가 결정한 시간표에 따라 수업을 듣게 될 것이다. 당당히 친구들과 술 한 잔 마실 권리도 주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자유만으론 부족하다. 자신도 교직원들과 동등한 학교의 구성원이라는 것을 체감할 수 있는 자유가 필요하다. 중 고등학생이라면 내가 입는 교복을, 나를 제한하는 규정을, 대학생이라면 내가 먹는 학생 식당의 메뉴를, 부족한 강의실과 보수가 필요한 시설들에 대한 보완을, 평가 제도에 대한 합리적 요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게 불가능하다고, 비현실적이라고만 생각해왔다. 학생은 선생님의 말씀에, 학교의 규칙에 따라야 한다고만 생각해 왔다. 차렷, 열중쉬엇 하는 명령에 의심을 가지지 못했다.

대학 진학률은 항상 최고치라고 하는데 왜 우리 삶은 달라지지 않을까. 오히려 나빠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학교가 가르쳐야 할 중요한 가치를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학교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곳이 아니다. 자신의 삶의 주체는 자신이라는 것, 우리는 우리가 발 딛고 있는 공동체의 시민이라는 것, 그리고 그 한 명 한 명의 주체들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것을 체감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광호

 스틱은 5B, 맥주는 OB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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