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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 무죄판결,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김준범의 동서남북]
김준범 | 승인 2018.11.12 11:02

[논객닷컴=김준범] 종교적 신념 등을 이유로 입영을 거부한 이른바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해 최근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것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이나 시대흐름에 합당한 판결이라고 본다. 여호와의 증인들로 대표되는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지금까지 감옥 가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상황에서 벗어나 현역이 아닌 대체복무로도 병역의무를 이행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1일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처음으로 무죄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판사 13명 중 9명의 대법관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합법으로 인정했고, 4명은 반대했다. 항소심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대법원에 상고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 아무개(34) 씨가 최종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것이었다.

이날 재판장인 김명수 대법원장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병역이행 불(不)이행 시 형사 처벌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며,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9명의 대법관들은 또 국가가 양심에 반하는 의무를 부과한 것에 대해, “이를 응하지 않았다고 형사 처벌하는 것은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이라는 자유민주주의 정신에도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김소영·이기택 등 4명의 대법관들은 “정당한 사유는 질병이나 재난 등 객관적인 사정에 한정되고, 양심적 병역거부같은 주관적 사정은 해당할 수 없으며,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어떤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는 엄중한 안보상황, 병역의무의 형평성에 관한 강력한 사회적 요청 등을 감안하면 양심적 병역거부는 인정될 수 없다”는 반론을 제시했다.

훈련 중인 군인들 ©육군훈련소 홈페이지

이번 판결을 계기로 오랜 기간 논란이 돼 왔던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일단 가닥이 잡혔다. 적어도 사법적으로는 그렇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를 둘러싼 모든 문제가 몽땅 해결되고 없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어쩌면 문제는 지금부터인지도 모른다.

우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부과될 복무기간의 경우 정부안(案)과 시민사회안(案)이 서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판결 이후 예상되는 쟁점은 크게 3가지다. ▲얼마나 복무할 것인가 ▲어디서 복무할 것인가 ▲어떤 형태로 복무할 것인가 등이 그것이다.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59개국 가운데 양심적 병역거부에 따른 대체복무제를 도입하고 있는 나라는 20개국 정도다. 이 나라들의 복무기간은 대체로 현역의 1.5~2배가 대세다. 현역 복무기간이 9개월인 그리스는 17개월, 현역 165일인 핀란드는 347일이고, 독일(9개월)과 노르웨이(12개월) 등은 현역 복무기간과 동일하다.

우리의 경우 정부는 현역병 복무기간의 2배인 36개월로 하고, 복무 장소로는 교도소나 소방시설 또는 지뢰매설 지역 등에서 합숙형태로 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36개월 복무안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정서가 깊게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18개월 복무제를 추진하고 있는 정부안의 2배인 36개월은 고생해야 한다는 계산이 그래서 나온 것이다.

국방부는 당초 이런 내용을 담은 ‘대체복무 확정안’을 11월 6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그날 53개 시민단체들이 국방부 앞에서 정부측 확정안 반대 기자회견을 하는 바람에 연말까지로 미뤄졌다. 정부안을 반대하는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참여연대 등은 ▲복무기간은 현역병의 1.5배 이내로 ▲복무문야는 의무소방과 치매노인 돌봄·장애인 활동 지원 등으로 ▲심사기구는 국방부나 병무청으로부터 독립된 행정안전부·보건복지부 등에 둘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검토중인 대체복무안에 징벌적 요소가 많다고 보고 있다. 예컨대 36개월간 사회로부터 격리돼 있는 것은 명백한 형벌이라고 보고, 국제노동기구(ILO)의 강제노동금지협약 내용(1.5배)과도 어긋난다고 지적한다.

물론 복무기간에 대해 정해진 국제적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유엔인권위원회가 “대체복무는 징벌적 성격이어선 안 된다”고 결의(1998)한 바 있고, 이를 토대로 유럽평의회가 “대체복무제는 군복무의 1.5배 초과금지(2008년)”를 권고한 정도다. 한국의 인권위원회도 지난 9월 국회에 “군과 무관한 영역에서 현역 복무기간의 1.5배 가량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낸 바 있다.

2018년 10월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인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은 227건이고, 전국의 법원에서는 930여건의 재판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해 전국의 하급심 법원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44건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인 227건은 대부분 무죄선고를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사법부의 이번 무죄판결은 소수자의 종교적 신념 보호라는 측면과 군으로 하여금 대체복무제를 마련케 하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어 줬다는 점 등에서 늦었지만 발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변화로 평가될 수 있다. 그렇지만 만에 하나 이를 악용하는 병역기피자가 발견된다면 이를 엄격히 가려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는 여론 또한 만만지 않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이번 무죄판결 직후 “여호와의 증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전화 문의와 함께, “나는 이미 해당이 안 되지만 내 아들만은 여호와의 증인으로 가서 병역을 면제 받게 해주면 좋겠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의 종교적 순수성과 신념마저 의심받는 상황에 직면하지 않으리라는 보장 또한 없을 것이다.

따라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앞으로 군복무중인 현역이나 복무를 마친 예비역들과의 갈등요소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적극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자신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도 분명히 의식해야 할 것이다.

현역병들의 대부분은 이번 무죄선고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무임승차’라고 말한다. 이들은 “헌법상 국방의 의무는 보편적인 의무가 아니라 ‘상당수의 남자들만 이행하는 의무’가 돼버렸다”고 보는가 하면, 수도권 모 사단 출신 박 모씨(26)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군대 가기 싫은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괜히 종교적 이유를 들이대는 얌체족같다”고 꼬집기도 했다.(세계일보 2018.11.7.)

국방부는 2019년 12월까지 대체복무제안을 마련해야만 한다. 그동안 양심적 병역거부자 문제가 나올 때마다 ‘대체복무제 도입은 시기상조’라며 논의 자체를 회피해 온 국방부의 발등에 이제 불이 떨어졌다. 프랑스·독일·이탈리아는 물론 대만같은 징병제 국가들은 오래 전부터 대체복무제를 통해 병역의무 이행의 형평성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해 왔다. 유엔 인권이사회에서도 대체복무제 도입을 적극 권장한 것은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충분히 해소할 수 있다는 경험칙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정부, 특히 국방부는 2016년 8월 청주지법 형사 4단독 이형걸 판사의 말을 깊이 명심해야 한다. 그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 장 아무개(당시 21)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회봉사나 대체복무 등으로 피고인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고도 국가에 기여할 방법이 있는데, 정부가 대안을 마련하지 않고 형법적 처벌만 하는 것은 부당하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둘러싼 양심의 자유와 국방의 의무 사이에 갈등이 심각한데 정부는 대안모색을 위한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고 징병제도가 실시된 이후 반세기가 지나도록 중대한 헌법적 갈등을 방치하고 있다”

정부의 무사안일과 태만에 대한 사법부의 일갈(一喝)이 아닐 수 없다.

 김준범

 80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

 전 국방부 국방홍보원 원장

 전 중앙일보 정치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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