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렬의 맹렬시선]

[오피니언타임스=이명렬] 난 걱정이 많다. 사서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당장 눈앞의 일이 급한데도, 그 너머의 일을 고민하곤 한다. 걱정들의 다수는 실현되지 않는다. ‘경우의 수’ 중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또 다른 걱정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해변가의 파도가 그치지 않는 것처럼 내면의 걱정도 끊임없이 밀려든다. 차곡차곡 모래가 쌓이는 것처럼 걱정도 쌓인다. 지독한 악순환이다. 최근 이직을 하게 되면서 걱정이 더욱 늘었다. 낯빛이 어두워지고 쉽사리 움츠러든다.   

바둑을 둘 때 프로는 100수 앞을 내다 본다고 한다. 난 다음 수는커녕 자충수(自充手)를 두고서도 이를 모를 때가 많다. 나의 걱정 대부분은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다. 미래에 대한 깊은 성찰과 대안을 찾기 위한 고민이 아니라, 시시각각 떠오르는 어설픈 불안감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간편하게 정리하고 싶은 알량한 내 욕심이다. 어린 시절 방송에서 흘러나오던 김국환 님의 ‘타타타’를 따라 부르던 기억이 난다. 요즘 시대로 표현하면 아이콘의 ‘사랑을 했다’와 비슷한 레벨의 유행가다. 입에 달라붙는 멜로디와 구성진 목소리가 무의식중에도 흥얼거리게 만든다. 노래 가사 중 아직도 기억이 나는 구절이 있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 한 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다 안다면 재미 없는 세상이라지만, 세상은 나에 대해 무섭게 알아가고 있다. 나의 검색어, 카드 소비 패턴, 이동 경로, 소통 채널, 병원 기록 등이 모두 기록으로 남고 빅데이터로 분석되는 세상이다. 내가 주말이면 어디 갈지를 예상하고 할인 쿠폰과 행사 정보를 미리 보내준다. 틈틈이 검색했던 해외 여행지의 할인 상품은 SNS 타임라인 상단 배너에서 나의 클릭을 기다린다. 섬뜩하다. 더 나아가면 내 감정까지도 예측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나의 걱정거리도 눈에 띄게 줄어들 것인가? 아니면 그 기술의 미래까지 걱정하는 나로 진화할 것인가? 이런 망할. 쓸데없는 걱정을 여기서도 하고 있다.

내 걱정을 가장 빨리 알아차리는 것은 가족이다. 요즘 부쩍 아내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일이 잦아졌다. 아내는 자초지종을 다 들어주고선 명쾌한 결론을 내려준다. 걱정 오지랖.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을 부여잡고 있어봤자 상황이 달라질 것은 없다. 맥주나 한잔 하고 일찍 자란다. 우문현답에 현모양처다. 4살짜리 딸은 아빠 옆에서 아빠 고민을 함께 들어주기도 하지만, 자기 할 말을 하기에 바쁘다. 밤늦게 만난 아빠에게 어린이 집에서 있었던 일들을 자랑하기 바쁘다. 딸은 마냥 해맑다. 4살의 삶에도 나름의 걱정과 고민은 있겠지만 아빠와 마주했을 때 방긋 웃는 모습에는 순수함이 묻어난다. 얼굴은 아빠를 쏙 빼닮았지만, 이런 고민과 걱정은 아빠를 닮지 말기를.   

ⓒ이명렬

얼마 전 회사에서 진행한 ‘감정 해소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팀원들이 모두 모여 자신의 감정을 세심하게 알아차리는 방법을 배웠다. 단순히 화가 난다고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화가 나는지 이해하고, 이를 자신의 언어로 잘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마무리로 걱정 인형 만들기 실습을 했다. 철사로 된 사람 인형에 풍성한 머리를 씌우고, 실을 감아 옷을 만들었다. 만드는 내내 아무런 걱정이 들지 않고 오롯이 인형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큐빅으로 목걸이를 달고 머리에 커피콩 장식도 달아 주다 보니 30분이 훌쩍 지나갔다. 노랑머리 걱정 인형은 지금도 사무실 책상 위에서 내 걱정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질투는 나의 힘이라고 했던가. 걱정이 나의 힘이었던 시간이 많았다. 이젠 조금 더 내 감정과 걱정에 솔직해지고 싶다. 몽글몽글 솟아나는 걱정을 솔직히 인정하되, 미래를 탐험하는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꿔보고자 한다. 미래를 다 안다면 정말 재미없는 삶 아니겠는가? 쓸데없는 걱정은 걱정 인형에게 넘기고,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삶에 한 발 더 다가갈 것이다.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것은 우울한 걱정이 아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길에 한 발짝 내딛는 도전과 용기다. 오늘은 코인 노래방에서 한 곡 부르고 와야겠다.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이명렬

달거나 짜지 않은 담백한 글을 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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