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 위에서 쓰는 편지]

“오빠, 그래도 우리 어머니는 참 양호한 편 아냐?”

저절로 귀가 기울여지는 대화였습니다. 어머니가 양호하다니요? 일상적으로 쓰기에 적절한 낱말은 아니지요.

“왜? 다른 치매도 있나?”

“그럼! 치매 증상도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나봐. 어떤 노인은 자식들에게 끊임없이 패악을 떨고, 누구는 끊임없이 가출해서 길을 잃고, 불을 내는 노인도 있고, 심지어 어떤 노인은 물건을 마구 사들인다잖아. 그에 비하면 우리 어머니는 엄청 얌전하시잖아.”

“치매 노인한테 무슨 돈이 있어서 물건을 사?”

남자는 치매 노인들의 여러 증상 중 물건을 산다는 말에 가장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카드가 있었겠지. 치매라고 모든 기능이 정지되는 건 아니거든.”

어느 음식점에 들렀다가 들은 대화였습니다. 오누이로 보이는 중년의 남녀가 저와 멀지 않은 곳에 앉아 있었습니다. 요양원에 어머니를 모셔다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식사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남의 손에 어머니를 맡겼으니 마음이 헛헛하고 감당하기 쉽지 않은 죄의식도 있었겠지요. 무거운 표정에서 언뜻언뜻 읽은 내용입니다.

©픽사베이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추석 때 저를 찾아온 모녀가 떠오른 이유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연결고리라고는 ‘어머니와 자식’이라는 것밖에 없는데. 배경을 조금 설명하고 가야겠군요. 글을 쓴다고 산 속 마을에 들어와 산지 몇 달째. 제가 이곳에 있다는 게 알려지면서, 찾아오는 손님들이 하나 둘 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동종의 ‘직업’을 가진 문인들이 주로 찾아오더니 점차 그 대상이 다른 분야의 예술인, 일반 독자 등으로 확대되었습니다. 마침 빈 방이 서너 개 있어서 그들을 재워 보낼 수 있었고요. 가끔은 소문을 듣고 낯선 손님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추석 때 찾아온 모녀도 그랬습니다. 아니, 딸 되는 이가 먼저 찾아와 하룻밤 머물고 간 적이 있으니 초면은 아니군요. 먼 나라에 나가 사는 분인데 귀국하자마자 저를 찾아 왔었습니다. 돌아간 뒤, 추석 때 어머니를 모시고 오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러라고 대답은 했지만 무척 의아했습니다. 명절 때 노인을 모시고 여행을 한다는 게 예사로운 일은 아니니까요.

추석 전 날 정말 그들이 왔습니다. 서울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강원도 인제의 산골마을까지. 명절만 아니라면 특별히 눈에 띌 것도 없는 평범한 모녀였습니다. 노인과 몇 마디 나눠봤는데, 특별히 편찮은 데도 없어 보이고 정신도 맑았습니다. 마침 저와 고향이 같은 바람에 대화가 수월하게 이어졌습니다.

그분들이 명절에 집을 떠나게 된 사연은 나중에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아들에게 ‘버림 받은’ 것이었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며느리에게 버림 받은 것이겠지요. 추석 한참 전에 며느리가 자신의 남편에게 그랬답니다.

“추석 때 어머니가 집에 계시면 내가 나갈 테니, 알아서 하세요.”

그래서 아들은 외국에 있는 누이에게 연락을 했고, 급히 귀국한 딸은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기 전에 며칠 함께 지내고 싶어 저를 찾아왔던 것이지요. 명절 때는 집이 아니면 갈 곳이 거의 없으니까요. 이런 경우 자칫 잘못하면 진실과 상관없이 일방적인 매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듣고 눈에 보인 것이 그랬다는 것이지, 그렇게 된 과정의 잘잘못은 알 수 없지요. 그래서 아들이나 며느리가 무조건 나쁘다는 식으로 몰아 부칠 생각은 없습니다.

딸은 어머니가 없는 자리에서 “어머니가 집에서 나올 때 들고 온 보따리가 세 개 있었는데, 그 중 하나에 밥 한 그릇과 반찬 한 가지가 들어있더라”며 울었습니다. 지금 집을 나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고, 약속장소에서 딸을 만나지 못하면 굶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싸갖고 나온 것이지요. 밑바닥에 자식이라는 존재에 대한 불신도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야기를 듣는 저도 가슴으로 울었습니다. 주섬주섬 밥을 싸는 노인의 모습이 저절로 그려졌기 때문입니다. 노인에게 얼마나 큰 잘못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아니 설령 큰 문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명절을 앞두고 버리듯 내보내는 상황은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제 거처에서 사흘쯤 묵은 모녀는, 요양원이 문을 여는 날 다시 버스를 타고 떠났습니다. 명절 끝이니 대중교통으로 요양원이 있는 곳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을 것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버스터미널까지 태워드리는 것뿐이었습니다. 차에서 내릴 무렵 노인이 제 손에 1만원짜리 지폐 한 장을 쥐어주었습니다. 펄펄 뛰면서 사양했지만 도저히 노인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명철하고 사리가 분명한 어른이었습니다. 그런 깔끔한 성격이 자식들, 특히 며느리를 힘들게 했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모녀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함부로 입에 올릴 이야기는 아니지만, 아득한 옛날에 있었다는 고려장이란 말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고려장은 이 시대에도 엄연히 자행되고 있었습니다. 특정한 사람을 비난하려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저 자신이 노모를 모시지 못하니 큰 소리 칠 자격도 없습니다. 남태평양 군도에 살고 있다는 원시부족 이야기도 떠올랐습니다.

그들은 일정 연령 이상 나이 먹은 노인이 나오면 친족들이 모여서 야자나무 꼭대기에 올라가게 한답니다. 노인이 나무 꼭대기에 오를 때쯤이면, 밑에 있던 청년들이 사정없이 흔든다고 하지요. 나무에 붙어 있을 힘을 가진 노인은 살아남는 것이고, 힘이 없으면 떨어져 죽거나 살아있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마을에서 살 수 없게 됩니다. 참으로 잔인한 짓이지만 그게 그들 나름의 살아가는 방식일 것입니다.

문제는 그런 일이 아주 먼 곳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여전히 부모에게 극진한 자식들이 훨씬 많지만, 원시부족처럼 노인을 나무에 올려놓고 흔드는 일도 없지 않습니다. 나무를 붙잡고 버티지 못하면 도태되는 게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말이지요. 냉혹한 현실 앞에 누구나 노인이 된다는 사실은 쉽사리 망각되고는 합니다. 그래서 노인들 사이에서는 죽을 때까지 재산을 넘겨주면 안 된다는 ‘금언’이 금과옥조라도 되는 양 공유되고는 하지요.

자식들이 부모를 모시고 살거나 지극정성으로 봉양하는 시대는 어느덧 아득한 옛날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재주 좋은 사람이라도 그 그림을 복원할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가슴에 칼질하듯 부모에게 상처를 주고 추방하는 일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새삼 도덕성 회복을 외치려는 것이 아니라, 가정의 문제가 고스란히 사회적 부담으로 전가될 수도 있다는 걸 지적하는 것입니다. 인간이란 측면으로도 오늘의 내가 존재하는 근원이 부모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절대 벌어질 수 없는 일입니다.

날은 갈수록 추워지는데, 버림 받은 노인들이 초점 없는 눈길로 세상 한 귀퉁이를 떠돌고 있다고 생각하면 가슴 한켠이 자꾸 뻐근해집니다. [오피니언타임스=이호준] 

 이호준

 시인·여행작가·에세이스트 

 저서 <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문명의 고향 티크리스 강을 걷다> 外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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