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복의 잡설]

[오피니언타임스=김부복] 김모는 이른바 ‘지공거사’다.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늙은이다.

김모의 지하철과의 인연은 ‘약관’의 나이였던 197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 지하철 1호선 기공식이다. 당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기공식은 화려하고 거창했다.

"대통령 내외와 서울시장이 단상의 버튼을 누르자 대한문 앞에 세워져 있던 5개의 파일이 굉음을 울리며 땅에 박히기 시작했다.… 3만여 명의 시민과 학생이 일제히 환호했고, 풍선 5000개와 비둘기 1000마리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여고생 합창단이 부르는 ‘지하철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이 ‘역사적인 날’ 대통령의 ‘치사’가 빠질 수 없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지혜와 기술을 통합한 선구자적 대역사”라고 치하했다. 그러면서 “이번 지하철 1호선을 포함, 서울에 5개 노선의 지하철이 완공되는 80년대 중반이 되면 서울의 교통난은 완전히 해결될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었다.

ⓒ픽사베이

김모의 ‘지하철 공사장과의 투쟁’은 그때부터였다.

지하철 1호선을 공사하는 동안에는 종로가 ‘불통’이었다. 도로를 깡그리 파헤치는 바람에 차량은 ‘거북이 속도’였다. 먼지와 소음, 자동차 매연은 말할 것도 없었다.

‘불통의 거리’가 된 종로를 피해서 약속 장소를 광화문이나 명동으로 잡아도 시간이 예전 같지 않았다.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종로를 피해서 그쪽으로 다니는 차량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김모는 ‘마이카 시대’가 되면서 소형 승용차를 끌고 다닐 때부터는 ‘기름값 손해’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막히는 도로가 지하철 공사장을 만나면 아예 ‘정체’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승용차에 갇힌 상태에서 허무하게 연소시킨 기름값이 간단할 수 없었다. 그 스트레스까지 비용으로 계산하면 손해는 더욱 컸을 것이었다.

김모의 ‘지하철 공사장과의 투쟁’은 20세기를 보내고, 21세기가 10년도 더 흐르는 동안에도 ‘진행형’이다. 지금도 지하철 공사 때문에 막히는 도로를 가끔 만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김모는 ‘약관’에서 ‘지공거사’의 나이가 될 때까지 50년이나 지하철 공사현장과 맞닥뜨리며 살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김모는 ‘서울특별시 어르신 교통카드’를 ‘일종의 보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하철 공사 때문에 허비한 시간과 기름값을 늘그막에 ‘어르신 교통카드’로 보상받는 셈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런데, 지하철은 그 ‘보상’마저 해주기 껄끄러운 모양이다. 만 65세 이상 노인에게도 요금을 받아야겠다는 것이다.

그런 얘기가 잊을 만하면 나오고 있다. 지하철 적자의 주요 요인이 만 65세 이상 노인의 무임승차에 있다는 주장이다.

무임승차는 2015년 전체 승객의 14.1%였는데, 지난해에는 14.7%로 늘었다고 했다. 이에 따른 손실도 3143억 원에서 3506억 원으로 커졌다는 것이다.

수도권 민자 전철 신분당선 사업자인 ㈜신분당선의 경우는, 65세 이상 노인과 장애인 등 일부 무임승차 대상자로부터도 요금을 받겠다는 ‘운임 변경’ 신고를 국토교통부에 제출했다는 소식이 들리기도 했다. 도시철도공사가 무임 소송 노인의 연령 기준을 65세 이상에서 70세 이상으로 높이고, 사용자가 요금 50%를 부담하는 방식으로 변경해야 한다고 요구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는 서울과 5개 광역시의 도시철도를 이용한 승객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이 2013년부터 작년까지 5년 동안 15억8350만 명에 달했다는 자료도 나왔다. 전체 승객 119억8085만 명의 13%로, ‘무임승차 손실’이 1조9819억 원이나 되었다고 했다.

노인 승객은 2013년 2억8831만 명이었지만, 작년에는 3억4859만 명으로 증가했고 연간 손실도 같은 기간 동안 3344억8700만 원에서 4675억5200만 원으로 28%나 늘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노인들로서는 좀 불편하지 않을 수 없다. 노인들 때문에 지하철에 승객을 태우지 못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옥철’이 되더라도 지하철에 탈 승객은 타고 있다. 또는 태우고 있다. 언젠가는 지하철에 승객을 짐짝처럼 밀어 넣는 ‘푸시맨’도 있었다.

대한민국의 노인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빈곤율 1등’이라고 했다. 지하철은 그런 가난한 노인들에게 ‘노인 탓’한다.

지하철 눈치 때문에 운전대를 잡고 다니기도 쉽지 않다. 반사신경이 무뎌졌기 때문이다. 브레이크 대신 가속페달을 잘못 밟는 바람에 자동차가 엉뚱한 곳으로 달려들었다는 뉴스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2017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운전을 하는 노인 가운데 11.1%가 시력과 판단력, 반응속도 저하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그래서 방랑시인 김삿갓의 노음(老吟)이라는 시를 뒤적거려 보고 있다.

“오래 사는 게 행복이라고 누가 그랬던가(五福誰云一曰壽)/ 요 임금은 되레 오래 사는 것을 굴욕이라고 했었지(堯言多辱知如神)/ 옛 친구들은 황천으로 떠나고(舊交皆是歸山客)/ 젊은이들은 낯이 설어서 세상과 멀어졌지(新少無端隔世人)/ 근력이 떨어져서 앓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고(筋力衰耗聲似痛)/ 위장이 허해져서 맛있는 것 생각은 간절한데(胃腸虛乏味思珍)/ 아이 보기가 얼마나 힘든 줄도 모르고(內情不識看兒苦)/ 아이를 자꾸 맡기고 있네(謂我浪遊抱送頻).”

 김부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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