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성의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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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회에서 예배 후 청년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던 중 단풍 구경 가자는 의견이 나왔다. 울긋불긋 단풍잎을 감상하면서 가을 분위기를 즐기자는 주장에 모두가 동의했다. 언제가 좋을지 달력을 보면서 다같이 고민해보았다. 하지만 쉽게 날짜를 정하지 못했다. 다음 주는 누가 못 오고, 그 다음 주는 누가 빠진다기에 모두를 만족시키는 타협점을 찾느라 애를 먹었다. 그러는 사이 누군가 말했다.

“단풍잎이 다 지기 전에는 가야지.”

단풍잎이 남아있을 때 가야한다는 사실. 그게 가장 중요했다. 그리고 그게 가장 걱정스러웠다. 다음 주, 다다음 주에도 가을 풍경을 구경 못 하고 나중으로 미루는 사이 잎이 다 떨어져 버리는 건 아닐지. 가을다운 가을을 제대로 누리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이번 계절과 작별인사를 해야하는 건 아닐지. 바람 한 번 불 때마다 은행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요즈음, 더 지체하다가는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조급해졌다.

#2

90분 동안 진행되는 축구 경기. 당연한 얘기지만, 승부는 종료 휘슬이 울리기 전까지 기록된 득점으로 판가름 난다. 뒤집어 말하면, 종료 휘슬이 울리고 난 후에는 멋진 오버헤드킥으로 골을 넣어도 무효다. 경기가 끝난 뒤 텅 빈 골대에 100골, 1,000골을 아무리 차 넣어도 정규시간 내에 넣은 한 골만도 못하다. 지고 있는 팀 선수들에게는 종료 휘슬이 마치 시한폭탄이 폭발하는 것만큼이나 무섭고 듣기 싫은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3

지난 주, 할아버지가 하늘나라로 가셨다. 오랜 기간 편찮으셨던 할아버지를 끝내 천국으로 보내드리고 나서 할아버지에 대한 지난 기억들을 떠올려보았다. 어린 시절 자주 놀러갔던 할아버지, 할머니 댁은 늘 편안했다. 먹을 게 풍부했고, 하루 종일 TV를 보고 잠을 자도 쓴소리 들을 일이 없었다. 명절에는 물론이고 평소 심심할 때 종종 찾아가기도 했다. 그런데 중고등학생이 되고, 스무살 성인이 되면서 점점 할아버지 댁을 찾지 않았다. 명절에도 짧게 머물다 집으로 돌아오고는 했다.

마지막으로 할아버지 어깨를 주물러드렸을 때가 언제였더라? 작년 초, 군대에서 휴가 나왔을 때였나? 정확히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만큼, 할아버지께 안마를 해드린 지가 오래 전이라는 사실에 죄송스럽다. 철없던 나의 투정을 다 받아주시고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실 만큼 인자하셨던 나의 할아버지. 하지만 그런 할아버지를 점점 뒷전으로 밀어내었다. 시간을 내자면 충분히 만들어 내어 찾아뵐 수도 있었는데, 노력을 별로 하지 않았다. 바쁘다는 핑계를 포함해 이런저런 이유를 내세우면서 얼굴을 비추지 않는 나 자신을 합리화하고는 했다. 내가 왜 그랬을까. “있을 때 잘 해, 후회하지 말고”라는 노래 가사가 귓가에 맴돈다.

#4

수능이 끝났다. 고3, N수생과 그들의 가족에게는 몹시 조마조마한 하루였을 터. 이날을 위해 수험생들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을까. 달력 속 11월 15일에 ‘D-Day’라고 표시해놓고 얼마나 오래전부터 초조했을까. 드디어 찾아온 결전의 날. 매 과목 종료 벨이 울리기 전까지 머리를 쥐어짜며 하얗게 불태웠을 그들의 노고가 충분히 보상받기를. 큰 고비를 넘겼으니 잠시나마 한숨 돌리기를. 수능도 끝났고, 고등학교 생활에 마침표를 찍는 시점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교복을 벗을 날이 머지않은 그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5

인생무상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각나는 가을밤이다. 단풍도, 축구 경기도, 수능도, 인생도 결국 언젠가는 끝나니 말이다. 항상 그대로 남아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나 보다. 애석하게도 유한한 삶이기에, 마지막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가을이 가기 전에 단풍 구경을 실컷 하고,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기 전에 골을 가급적 많이 넣고, 시험 종료 전에 정답을 최대한 맞히고, 세상을 떠나기 전에 열심히 살아가고 사랑해야겠다. 어서 서두르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오피니언타임스=김우성]

 김우성

낮에는 거울 보고, 밤에는 일기 쓰면서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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