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규의 하좀하]

소득주도 성장을 한국 혼자 실험한다는 주장

대한민국 경제정책을 책임지는 두 사람이 경질됐다. 소득주도 성장이 궤도를 수정해야 한다고 난리다. 사실 소득주도성장은 나쁜 것이 아니고 언론에서 말하듯이 우리나라 혼자 소득주도 성장 실험을 하는 것도 아니다. 외국에서는 벌써 오래전부터 최저임금을 가파르게 올려왔고, 지금은 최저임금이 아니라 생활임금을 시도하는 중이다. 최저임금을 안 올리고 버티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무턱대고 따라 하는 나라, 우리나라 고위 공무원이나 교수님들이 대부분 유학을 다녀온 미국이라는 나라뿐이다.

미국은 주마다 최저임금이 다르지만, 연방정부 기준으로 2009년부터 1시간당 7.25달러라고 못 박고 버티기에 들어가 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테네시, 미시시피, 루이지애나 같은 주들은 아예 최저임금 자체를 정해놓지 않아서 옛날에는 시급 1달러에 팁으로 버티는 점원들도 많았다. 보건사회복지부는 아이 둘을 키우는 한 가족의 빈곤 마지노선을 연봉 2만4600달러로 정해놓았고, 이는 주당 노동시간과 최저임금으로 계산하면 시간당 11.83달러는 벌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최저임금은 7.25달러로 정해놓았으니 엄마가 아이 둘을 어딘가 공짜로 맡겨놓고 일을 하든가 아니면 빈곤하게 살아라, 이런 뜻이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이 나라를 열심히 따라해왔다.

ⓒ픽사베이

최저임금 넘어서 생활임금으로

잘나지 못한 사람들도 좀 더 인간답게 살아가는 유럽에서 생겨난 개념이 생활임금이다. 생활임금은 노동자가 주당 40시간 정도를 일했을 때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필수적인 것들을 구할 수 있을 정도의 임금을 말한다. 여기서 최소한의 것들이란 음식, 잘 곳, 최소한의 전기, 가스, 교통비, 의료비, 육아비를 말한다. 이 사람들은 명품백, 해외여행은 바라지도 않는다.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살려면 그 나라의 중간임금의 60%를 최소한도로 받아야 하고, 거기에다 15% 정도를 더 받아 만약에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 대비할 수 있으면 최소한 인간이 불안 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라별로 최저임금이 이 중간임금의 어느 정도에 달하는지 한 번 살펴보자. OECD 발표 기준으로 평균임금대비 최저임금의 수준이 가장 높은 나라는 뉴질랜드와 프랑스로 최저임금이 평균임금의 51%에 달한다. 최저임금 1등국인 뉴질랜드와 프랑스도 60%에 한참 못 미친다. 우리의 대한민국은? 35%다. 34%를 기록한 일본보다는 낫지만 40%대의 헝가리나 폴란드보다도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더 크다. 다시 우리가 신봉하는 미국을 살펴보자. 미국은 중간임금대비 최저임금이 27%로 멕시코와 동률을 기록하고 있다. 즉, 미국에서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은 평균 근로자 연봉의 3분의 1도 못 받아가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미국에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생활임금은 2017년 기준 16.07달러지만 최저임금은 반에도 못 미치는 7.25달러로 정해놓고 이는 2009년부터 오르지 않고 있다.

다시 대한민국의 사정은

우리나라는 최근 들어 저성장을 계속하고 있고, 분명 우리나라 경제를 끌어가는 수출의 비중이 내수보다 큰 것이 사실이다. 다른 경쟁국에 비해서 최저임금을 가파르게 올리면 경쟁국에 비해서 수출경쟁력이 떨어지는 것도 맞다. 그런데 과연 반도체나 자동차 등 수출산업 업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최저임금을 받는가? 생산성 논쟁도 보자. 생산성 향상이 없는 임금 인상은 잘못되었다? 맞다. 임금 인상에는 생산성 향상이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귀족노조, 복지부동 노동자가 되어서 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는다. 하지만 생산성은 왜 안 높이냐, 높여라, 이렇게 닦달한다고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기껏해야 좀 더 서두르고 숨 돌리는 시간을 줄이는 것뿐이다.

생산성 향상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작업 도구, 즉 업무에 쓰는 도구들을 업그레이드시키거나 직원교육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종이에 원가계산을 하고 작업을 기록하는 경리직원이 있다고 하자. 그 경리직원에게 컴퓨터를 사줘서 엑셀이나 액세스 사무자동화 교육을 하면 생산성이 올라간다. 그렇게 올라간 생산성을 기반으로 임금을 올려주면 그 기업의 경쟁력도 올라간다. 즉, 최고임금을 받는 사람들이 다그친다고 올라가는 게 생산성이 아니란 말이다. 최고임금을 받는 사람이 고민하고 지원하고 먼저 뼈를 깎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직원에게 돈 들이는 일이라면? 먼저 질색부터 하고 든다. 결국, 이 돈은 자기에게 돌아오게 된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최저임금의 긍정적인 측면을 한번 보자. 최저임금이 오르고 경제적 취약층이 돈을 조금이라도 더 가지면 내수시장에 좋은 영향을 줄 것이 분명하다. 조직에서 목소리 크고 더 많은 임금을 받는 이들이 최저임금 조금 올리는 게 꼴사나워 자꾸 태클을 거는데, 아주 쉽게 예를 들어보자. 편의점 직원을 쥐어짜서 사장에게 돈을 몰아준다고 치자. 이 사장 뭐 할 거 같나? 편의점 일에서 한발 물러나 점주 노릇까지 하는 아르바이트생을 하나 더 뽑을 거다. 남는 시간에 일단 차별화된 소비를 위해 BMW나 아우디를 뽑고 아이폰 아이패드 등등 남다른 아이템으로 무장한 후 해외여행을 다닐 것이다. 그리고 남는 돈으로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땅을 사거나 자기가 살지도 않을 아파트를 사들여 땅값, 집값을 올려놓을 거다. 만약에 부동산시장이 정체기라면 은행에 돈을 묵혀둘 것이다. 이 사람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돈이 돈을 버는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이다.

반면에 편의점 직원이 돈을 좀 더 가진다고 하자. 이 직원은 좀 더 생긴 돈으로 라면보다는 고기와 채소를 사서 먼저 영양을 보충할 것이다. 가끔 외식도 하고 쉬는 날에는 영화도 볼 것이다. 책도 사고 자기계발도 할 것이다. 돈을 묵혀두지 않고 계속 돌릴 것이다. 돈이라는 재화는 몸에 존재하는 피와 같아서 돌고 돌아야 활력이 생기고 각 경제주체가 활발하게 움직인다.

경제정책의 방향을 수정하자는 주장

이래도 방향이 잘못되었나? 잘못된 것은 방향이 아니라 방법이다. 2019년에는 일자리 예산이 2018년의 19조2000억원보다 22% 증가한 23조5000억원으로 늘어난단다. 청년, 여성, 어르신, 신중년, 장애인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만드는 데 역점을 두었단다. 청년추가 고용장려금 예산도 7000억원으로 대폭 늘렸단다. 그러면서 공공근로 일자리가 역대 최고로 넘쳐나고 있다. 다 짧게는 2개월, 길게는 1년 안에 사라질 일자리들이다. 강조하지만 세금을 들여서 높여야 할 것은 각 경제주체의 경쟁력이다. 이 늘어난 돈으로 청년, 여성, 어르신, 신중년, 장애인들이 일하는 곳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그래야 이 사람들이 최저임금의 굴레에서 벗어난다.

정책과 권력의 의지는 옳지만, 정책을 실행하는 공무원들의 상상력 부재와 집행의 미숙함은 문제다. 기껏 내놓는다는 일자리정책이 중소기업에 취업하면 지원금을 주고 심지어 교통비도 준단다. 왜? 배급제로 밥도 주고 공장 옆에 기숙사도 지어주지. 다시 강조하지만 잘못된 것은 방향이 아니다. 방법이다. 하긴, 한국정부를 위해서 일할 때 가장 많이 듣던 소리가 이 소리였다. “작년에 어떻게 했는지 참고는 했나? 다른 나라 사례는 알아보기나 했냐?” 뉴질랜드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할 때는 이런 소리를 들었다. “이거 아직 한 번도 안 해본 건데? 한번 해봐. 만약에 실패하면 실패과정에서 배운 것들 꼭 다 기록해서 공유하고.” 실패하지 않는 나라, 배우지 않는 나라는 남들의 뒤를 따라갈 수는 있지만, 결코 앞서가지는 못한다.

한국사회는 망령이 있다. 큰일이 나면 먼저 비난할 대상부터 찾는 것이다. 이 비난 대상은 항상 목소리 작고 일상에 지쳐 대들 수 없는 힘없는 이들이다. 나 먼저, 우리 먼저 뭘 해야 할지 생각해 본다면 위기의 가정, 어려운 사업, 불안한 경제의 해법은 의외로 가까운 데 있는지도 모른다. [오피니언타임스=한성규] 

한성규

현 뉴질랜드 국세청 Community Compliance Officer 휴직 후 세계여행 중. 전 뉴질랜드 국세청 Training Analyst 근무. 2012년 대한민국 디지털 작가상 수상 후 작가가 된 줄 착각했으나 작가로서의 수입이 없어 어리둥절하고 있음. 글 쓰는 삶을 위해서 계속 노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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