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따듯한 생각]

[오피니언타임스=김연수] 매주 수요일 18시 30분이면 독서클럽에 간다. 미리 정한 책을 읽어온 10명의 학생이 모여 함께 토론한다. 사회적 문제와 자신의 견해에 대해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눈다. 처음에는 단순히 장학금에 눈이 멀어 시작한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아주 재밌는 책을 한 권 발견했다.

소설 ‘편의점 인간’은 사회 규격에 맞춰지기 위한 두 사람의 기묘한 선택을 담은 이야기이다. 연애와 결혼, 그리고 출산을 포기한 채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웃픈(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자화상을 그려내고 있다. 게이코는 자신을 편의점 점원으로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는 편의점 점원으로서 세계의 부품이 되어 아침이라는 시간 속에서 계속 회전하고 있다.

그녀가 보편 정서를 느끼지 못하는 감정이 결여된 사람이라는 이유로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명시된다. 편의점 점원으로 자리 잡기 전까지 가족들은 그녀가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거나 일반적인 생각을 도출해내지 못한 것에 전전긍긍한다. 그렇기 때문에 게이코는 최대한 말을 아끼고 편의점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의 대인관계를 통해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18년간 편의점에서 열심히 일하지만, 나이가 30대 중반이 넘어서자 그 나이대에 맞지 않는 직장이라며 타인에게 간섭받게 된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제대로 된 취직과 결혼만이 그녀를 온전히 보통의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사회적 상황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어릴 적부터 게이코는 죽은 새를 보고 아빠와 여동생이 꼬치 요리를 좋아하니 먹자고 말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의 반응에 놀라며 죽은 새가 불쌍하니 묻어줘야 한다고 강요한다. 그리고 남자아이들이 맞붙어 싸움이 일어나자 머리를 삽으로 후려쳤다. 게이코는 “말리라고 해서, 가장 빠를 것 같은 방법으로 말렸어요”라고 냉정하게 대답했다. 게이코의 부모님이 여러 사람에게 사과하거나 곤욕을 겪은 후로 필요한 말 이외의 말은 하지 않고 자진해서 행동하지 않기로 하자 어른들은 안심한 것 같다. 그렇게 자라 성인이 되었고 ‘평범한 사람’인 척 흉내내며 편의점에 입사한다.

게이코는 편의점의 다른 점원들의 외양과 말투를 관찰하고 비슷해지려고 노력한다. 이처럼 세계에 쓸모있는 정상적인 부품이 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씁쓸함을 자아낸다. 나름대로 노력해서 1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자신의 본분을 다한 그녀를 단지 36세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실패한 인생이라 단정짓는 것은 다소 폭력적이다. 심지어 게이코의 가족들마저 게이코가 노력으로 일궈낸 현재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고 직장을 얻거나 결혼하길 바라는 모습을 보인다.

친구, 가족, 편의점 동료 등 많은 이들이 게이코의 삶에 질문을 던지며 간섭한다. 비교적 평화롭던 그녀의 편의점 인간생활에 다른 맥락의 사회 부적응자 신입 시하라가 등장한다. 시하라는 분노와 두려움으로 가득찬 채 경제활동을 포기한 무능한 남자이다. 그는 자신의 현재를 벗어나기 위해 괜찮은 여자와 결혼하려고 편의점에 취직한 인물로 상당히 의뭉스럽다. “이 가게는 정말이지 밑바닥 인생들뿐이에요”, “이런 작은 가게 점장은 루저에요”라는 등 계속 남을 탓하며 전형적인 자기 방어적 태도를 보인다. 게이코는 이런 시하라를 설득해 서로의 결핍을 숨기고 사람들이 원하는 평범한 모습을 충족하기 위한 동거를 시작한다. 가족에게 걱정을 덜 끼치고 친구들 사이에서 더 자연스러울 수 있게 게이코는 진심으로 애쓰고 있었다. 자신에게 가장 편안했던 공간인 편의점을 포기하면서까지 말이다.

이야기가 끝을 향해갈수록 편의점을 포기하고 사회적 규격에 맞추려고 하는 게이코를 보면서 그러지 말라고 붙잡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결국 취업을 위해 가려 했던 면접을 포기하고 편의점에 발을 들여놓을 때 묘한 쾌감을 느꼈다. ‘편의점이 죽고 다시 태어난다’, ‘편의점과 사랑에 빠진다’라는 작가의 말이 터무니없이 들릴 수도 있지만, 나는 비록 현재를 살아가야 해서 여러 불편함을 감수하며 참고 살아가지만 소설 속 인물인 만큼 나 대신 너라도 그렇게 살아줘 라는 마음이 강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각 나라의 사람들이 나와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펼쳤던 ‘비정상회담’이라는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가수, 배우 등 다양한 연예인이 나와서 자신의 문제를 토로하고 함께 고민하는 진행 방식이다. 예시로 <부모에게서 독립 못하는 한국 청년! 36세 독립 거부남 장동민, 정상인가요? 비정상인가요?>, < 남자를 모르는 여자! 남자에 무지한 31살 오나미, 비정상인가요?> 등 이런 고민 자체를 두고 정상인지 비정상인지를 단정 짓는 게 이상했다. 꼭 고민이 비정상 범주에 해당하면 고민을 하는 사람은 틀렸고 그에게 문제가 있다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어떻게 늘 정상적일 수 있을까. 우리는 과연 단 한 번도 비정상적인 사고를 한 적이 없는지 깊게 고민하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슬프게도 요즘은 개성있게 나다운 모습으로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다. 어릴 때부터 가정과 학교‧사회 모두가 단지 입시 중심교육으로 취업=성공이란 사회적 잣대만을 들이밀고 있다. 또한 책에서는 30세가 넘도록 연애를 못 한 게이코와 시하라가 문제가 된다. 현실에서는 더 가혹하게 20대인데 한 번도 연애해본 적이 없는 ‘모태솔로’, ‘마법사’ 등이라 칭하며 모태솔로인 사람과의 연애를 피하기도 한다. 연애 경험이 없는 사람과 연애하는 것은 상당히 불편하다는 사람들의 의견이 강력하게 피력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남들과 조금만 다르면 ‘왜?’ 라는 질문이 쏟아지고 다름은 틀림이 되는 우리 사회는 현재 남성혐오, 여성혐오 그리고 장애인이나 노인, 다문화 가족, 이주민과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문화로 계속 진화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한국 사회의 혐오나 차별 문제가 심각하다고 봐 내년부터 별도의 혐오, 차별 대응을 위한 특별조직까지 구성한다고 한다.

이와 같은 문제에도 우리는 섣불리 내 목소리로 반대의견을 내지 못했다. 그래서 편의점 인간을 써준 무라타 사야카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편의점 인간은 우리가 알고 있지만 쉽게 이야기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것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나다운 게이코가 될 준비가 어느새 끝난듯하다. 남과 다른 것을 두려워하고 타인의 시선에 겁내지 말고 내가 사는 세상에서 내가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잘 생각하며, 내일은 더 게이코와 닮은 면모를 당당하게 보여줄 수 있길 바란다.

김연수

제 그림자의 키가 작았던 날들을 기억하려 글을 씁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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