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진의 지구촌 뒤안길]

합의안 EU 승인에도 英의회 거부 가능성
무엇이 영국에 최선인가 민심 사분오열
46년 불편한 동거 종식, 불확실성 늪으로

[오피니언타임스=유세진] 많은 사람들이 그런 날이 정말 올까 의심했다. 하지만 그날은 결국 왔다. 11월25일 영국과 다른 27개 유럽연합(EU) 정상들은 브뤼셀에서 19개월에 걸친 길고 지루한 협상 끝에 영국의 EU 탈퇴에 관한 합의안(초안)을 승인했다. 2016년 6월23일 실시된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찬성 52% 대(對) 반대 48%의 근소한 차이로 브렉시트가 통과된 뒤 29개월만이다.

이에 따라 영국은 2019년 3월29일 EU에서 탈퇴하기 위한 첫 관문을 넘었다. 그러나 의회에 비준을 호소해야 하는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결코 승리자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노동당 등 야당들은 물론, 집권 보수당 내 많은 의원들이 그녀와 EU 간에 합의된 탈퇴안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내년 초로 예상되는 유럽의회의 비준 통과도 남아 있다. 탈퇴안은 합의됐지만 넘어야 할 산들은 이제 시작될 뿐이다.

ⓒ픽사베이

메이 총리는 EU 정상들이 25일 합의안을 승인하자마자 의회에 대한 설득에 나섰다. 합의안이 비록 완벽하진 않지만 이를 거부하면 영국이 미지의 세계로 빠져들 것이고, 부결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누구도 알 수 없고, 영국 국민들을 위해 합의안을 지지하고 힘을 모아 함께 앞으로 나아가자고 그녀는 호소했다. 영국의 이익이 무엇인지 결정하는 것이 의원들의 의무라고도 말했다.

그러나 냉담한 의원들의 태도 앞에 메이 총리의 호소는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메이는 의회에서 2주일여의 찬반토론을 거쳐 12월11일 합의안 승인이냐, 거부냐를 결정할 표결을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대했던 것처럼 그녀는 반대 의원들 설득에 성공, 비준을 받아낼 수 있을까? 지금으로선 실패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의회가 영국의 EU 탈퇴 합의안 비준을 거부하면 메이 총리의 지도력은 물론 영국 정부 자체가 타격을 받고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다른 EU 정상들이 모두 동의한다면 2019년 3월29일로 예정된 탈퇴 시점을 연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EU 정상들이 이에 동의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의회에서 합의안 비준이 거부되면 메이 총리는 의회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EU와 재협상을 벌여야 한다. 하지만 EU는 이미 이번 합의안에서 추가로 양보하는 일은 없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때문에 재협상을 시도하더라도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은 낮다.

재협상이 안 된다면 EU와 아무 합의도 없이 영국이 EU를 떠나는 ‘노 딜 브렉시트’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현 합의안에 불만을 가진 강경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차라리 ‘노 딜 브렉시트’가 영국과 유럽 간 관계를 확실하게 단절할 수 있다며 이를 지지하기도 한다. 하지만 유럽으로부터의 물자 공급, 무역, 교통 등을 둘러싼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 등으로 ‘노 딜 브렉시트’는 결코 안 된다는 반대 목소리도 무시할 수 없다. EU 잔류를 주장하는 야당 노동당의 제러미 코번 당수는 ‘노 딜 브렉시트’는 영국에 최악의 재앙이라면서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막을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메이 총리의 지도력이 도전받으면서 결국 그녀의 총리직 사임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그러나 메이 총리는 자신의 브렉시트 합의안보다 더 낫다고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내용을 들고 나오는 경쟁자가 나타나지 않는 한 쉽게 총리직에서 물러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럴 경우 조기총선이 치러질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또 브렉시트와 관련해 2번째 국민투표가 실시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그러나 새로운 국민투표가 이뤄지더라도 영국의 EU 탈퇴 여부를 물은 첫 국민투표와 같은 성격이 아니라, 메이 총리가 EU와 합의한 탈퇴안을 의회가 받아들일 것인지 아닌지, 아니면 어떤 조건의 브렉시트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를 묻는 성격의 국민투표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문제는 어느 쪽이 됐든 영국 국민들이나 정치인들로부터 과반 이상을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EU를 떠날 것인지, EU에 잔류할 것인지를 놓고 의견이 갈린 데다, 탈퇴를 주장하는 세력들 내에선 또 그들대로 탈퇴의 조건을 놓고 서로 치고받으며 대립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브렉시트 자체를 없었던 일로 하고 영국이 다시 EU에 잔류하는 일은 어려울 것으로 여겨진다. 결국 브렉시트 자체는 되돌릴 수 없다는 얘기이다. 제러미 헌트 영국 외무장관은 이번 합의안 도출에서 영국은 원하는 것의 70∼80%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브렉시트로 인해 예상되는 영국에 대한 부정적 영향의 대부분을 완화시켰다고 평가했다. 메이 총리 내각의 각료 발언이라고는 해도 영국이 EU에서 탈퇴한 이후에 대해서는 상당히 낙관적인 평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영국의 EU 탈퇴는 흔히 영국과 EU 간 이혼으로 불려왔다. 지난 1973년 1월1일 영국의 유럽경제공동체(EEC) 가입 이후 46년 가까이 계속돼온, 편의에 의한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사실 영국은 유럽보다도 미국과의 관계에 더 매달리는 경향을 보였고 유럽에 의해 구속되는 것에 대한 반발도 강했다. 브렉시트는 이처럼 유럽에 대한 영국의 반발심을 충족시켜줄 것이다. 그러나 영국이 그동안 EU 내 핵심 회원국으로서 누릴 수 있었던 여러 경제적 이점들을 포기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EU 탈퇴가 과연 영국에 도움될 것이냐는 아무도 단언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렇지 않아도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 및 EU 간 협상은 브렉시트 이후의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이루어졌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유세진

 뉴시스 국제뉴스 담당 전문위원

 전 세계일보 해외논단 객원편집위원    

 전 서울신문 독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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