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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실패 vs 정부실패[이영환의 코리아 프리미엄 프로젝트]
이영환 동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18.11.30 09:46

[논객닷컴=이영환] 자본주의의 역사는 다양한 자원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시장과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해왔는가에 의해 파악될 수도 있다.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주목을 받았던 아나톨 칼레츠키(Anatole Kaletsky)의 저서 『자본주의 4.0』이 바로 이런 기준에 의해 자본주의 역사를 조망한 책이다. 과거 자본주의가 수많은 경제위기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결국 정부와 시장의 적절한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메시지였다. 그리고 시장과 정부 모두 지금보다 훨씬 스마트해진다면 2008년과 같은 금융위기 및 경기침체는 더 이상 겪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과연 그럴 가능성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시장실패(market failure)와 정부실패(government failure)가 조금도 완화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시장이든 정부든 비효율적인 자원배분을 초래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미국 버클리대 골드만 스쿨의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 교수가 저서 『자본주의를 구하라』에서 적절하게 지적했듯이 문제는 시장과 정부 가운데 어느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선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장과 정부 모두 실패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 명백한 사실을 외면하고 정부의 규제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자유시장을 맹목적으로 옹호한다든가 정부가 나서 적극적으로 시장의 문제를 치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모두 문제를 호도(糊塗)하는 것이다. 현재와 같이 자본주의의 심각한 문제점들이 드러난 상황에서 글로벌 차원에서든 국가적 차원에서든 중요한 것은 시장실패와 정부실패를 어떻게 줄이는가에 있다. 이 모두 쉽지 않은 과제들이다.

ⓒ픽사베이

먼저 시장실패부터 살펴보자. 간단히 말해 이것은 시장을 통한 자원배분이 비효율적으로 귀결되는 현상을 말하며 이를 초래하는 대표적인 원인으로는 외부효과, 독과점, 공공재 및 비대칭정보를 들 수 있다. 지금까지 주류 경제학에서는 시장실패가 마치 예외적인 현상인 것처럼 다뤄왔다. 이것부터가 잘못된 것이지만 경제학계 내부에서는 이에 대한 반성이 거의 없었다. 단적인 예로 모든 경제학 텍스트에서 시장실패가 늘 뒷부분에서 다뤄지고 있는 것은 이를 사소한 문제인 것처럼 평가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경제학이 진정 현실의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실증적인 학문으로 거듭나려면 시장실패에 대한 논의를 경제학의 중심으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201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장 티롤(Jean Tirole) 교수가 최근의 저서 ‘공동선을 위한 경제’(Economics for the Common Good)에서 이 점을 지적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여기서 시장실패의 원인과 대응방안에 대해 상세히 논의하기는 어려우므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독과점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독과점의 특징은 시장지배력이 있는 기업이 자신이 원하는 수준으로 가격을 책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경제에서 독과점 기업들이 장악하는 산업의 비중이 높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자원배분이 왜곡되고, 따라서 비효율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이유로 경제학자들은 누구나 시장이 경쟁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데 현실은 이와 정반대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면 주요 산업들은 몇몇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으며 이런 추세가 점차 심해지는 것 같다. 즉 과거의 굴뚝산업만이 아니라 디지털 경제를 주도하는 IT산업도 상당부분 독과점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점은 미국을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운영체계시장을, 인텔은 비메모리 반도체시장을, 구글은 검색시장을, 아마존은 전자상거래시장을, 페이스북은 소셜미디어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한 마디로 디지털 경제에서 오히려 독과점산업의 비중이 점점 더 커지고 있으며,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이런 추세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예컨대 인공지능 기술은 승자독식의 성향이 강하므로 독과점화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이러한 추세는 세계적인 경제지 《The Economist》가 최근호에서 카버 스토리로 경쟁의 약화를 심히 우려하는 기사를 내놓은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보수 성향이 강해 자유시장을 옹호하는 글을 자주 실었던 경제지로서는 예외적으로 경쟁의 약화로 자본주의가 심각한 위기에 처할 수 있다면서 구체적인 통계자료를 제시하고 있다.

예컨대 1997년 이후 미국 산업의 3분의 2에서 시장집중도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미국 경제의 10분의 1의 비중을 차지하는 산업에서는 상위 4개의 기업들이 시장의 3분의 2이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게다가 글로벌 차원에서 볼 때 이런 기업들이 거둬들인 초정상이윤의 규모가 6600억 달러에 달하며, 이 가운데 3분의 2가 미국에서 창출된 것이므로 대략 4400억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금액 중 3분의 1이 구글 같은 기술 기업들에 귀속된다는 것이다. 이런 데이터만 보아도 디지털 경제로 전환한 이후 독과점 기업의 위력이 감소하기는커녕 더 커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추세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자본주의 특유의 역동성이 사라지고 자본주의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울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이 기사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관심 있는 분들은 11월 17일자 《The Economist》의 특별 보고서를 참조하기 바란다.

이와 같이 시장실패는 더 이상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사실이 공개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인터넷과 스마트폰 혁명에도 불구하고 시장실패의 또 다른 중대한 요인인 비대칭정보는 완화되기는커녕 더욱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이는 국민경제에서 금융시장의 비중이 줄어들지 않는 한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왜냐하면 금융시장에서 벌어지는 수익률 게임의 원천이 바로 정보를 이용해 단기 이득을 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시장실패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취약점으로 남아 있을 전망이다.

ⓒ픽사베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시장과 정부로 구성되어 있다. 경제학자 조셉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가 간결하게 표현했듯이 시장은 난데없이(out of thin air) 등장한 것이 아니다. 시장이 경쟁적인 상태를 유지하면서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합리적으로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하는 것이 정부의 책무이다. 이런 관점에서 스티글리츠 교수가 저서 ‘경제 규칙 다시 쓰기’(Rewriting the Rules of the American Economy)에서 미국 경제의 규칙을 새롭게 써야한다고 주장할 때 핵심은 시장에서의 경쟁의 약화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시장실패를 교정하는 정부의 현명한 정책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정부의 시장 개입이 시장실패를 치유한다는 원래의 목적과는 반대로 시장을 더욱 비효율적으로 만드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이른바 정부실패가 예외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정부 정책의 목적이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추구하는 데 한정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시장으로 인한 비효율을 치유하려는 목적으로 추진된 정책이 다른 가치, 예컨대 불평등을 완화하지 못하면서 비효율을 더욱 악화시킨다면 이는 명백히 정부실패의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현 정부에서 불평등 완화를 목적으로 추진한 최저임금제 개선방안이 졸속으로 추진된 결과 오히려 불평등이 악화되고 실업률이 상승한 것으로 확인된다면 이것은 정부실패의 사례에 해당된다. 물론 이 경우 단기적인 평가의 함정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정치인들은 단기적인 성과를 가지고 현 정부를 성토하는 반면 경제학자들은 상호작용을 모두 고려한 장기적인 성과를 가지고 평가하는 성향이 있는데, 후자가 바람직한 것은 더 이상 강조할 필요가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부실패도 시장실패 못지않게 매우 흔한 현상일 뿐만 아니라 시장경제 전반에 상당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다. 정부실패에도 다양한 유형이 있는데 필자가 보기에 한국의 경우 대표적인 유형으로는 정책 담당자의 도덕적 해이와 조직을 확대하고자 하는 비합리적인 욕망을 들 수 있다. 예컨대 과거 정부에서 추진했던 자원외교는 도덕적 해이에 기인하는 전형적인 정부실패의 사례에 해당된다. 그리고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고용 창출이라는 명목으로 과도하게 공무원 증원을 추진하는 정책도 정부실패로 귀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부가 직접 고용 창출의 주체가 되기보다는 기업들이 고용을 늘리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경제 환경을 만들어 주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시장실패를 줄이는 길이다. 그럼에도 이런 정책 대신, 손쉬운 공무원 증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단기주의 내지 포퓰리즘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과연 시장실패와 정부실패는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인가? 그렇다. 이는 결코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이 점을 인식하는 것이 그나마 문제를 완화하는 첫걸음이다. 티롤 교수는 앞서 언급했던 저서에서 이런 유형의 포퓰리즘이 경제를 더욱 어렵게 한다면서 이에 대한 상당한 책임이 경제학자들에게 있음을 강조한다. 티롤 교수는 일부 경제학자들이 정치인들의 장단에 맞춰 포퓰리즘을 정당화하는 어설픈 논리를 전개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경제학자들은 전문가들 간의 치열한 논쟁에서와 같은 정도의 정교한 논리를 바탕으로 정책을 평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경제학자들이 깊이 새겨야 할 충고다.

시장경제를 구성하는 수많은 다양한 주체들 간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드백(feedback)을 고려할 때 한 두 사람의 아이디어로 난마처럼 얽힌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당랑거철(螳螂拒轍)에 비유할 수 있다. 자기 분수도 모르고 무모하게 덤벼드는 격이다.

복잡한 경제현실에서 발생하는 시장실패와 정부실패를 그나마 완화할 수 있는 길은 경제 전문가들이 권력의 차원이 아니라, 국민 복지의 차원에서 머리를 맞대고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것이다. 그리 하려면 자신의 무지(無知)를 인정하고 여러 사람의 지혜를 집약해야 한다는 대원칙에 동의해야 한다. 그런데 과연 현재 우리나라의 실정에서 이것이 가능할지가 의문이다. 그래서 걱정이 떠나지 않는다. 

 이영환

  동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지식협동조합 <경계너머 아하!> 이사

  <시장경제의 통합적 이해> 외 다수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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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환 동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ylee11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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