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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에게 정말 솔직하다면[도영인의 정화수(井華水)]
도영인 | 승인 2018.12.03 09:50

[논객닷컴] 자신의 약점이나 고쳐야 할 습관들을 깊이 통찰하는 것에서 오는 내적 두려움, 세상에 숨겨진 어두운 면들을 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면 그 사람은 과연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객관적인 자세로 들여다보는데서 오는 불쾌한 감정이나 참기 어려운 불안감으로부터 자아를 보호하고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 심리적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자기 삶에서 툭툭 삐져나오는 어두운 면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찍이 인간심리를 깊이 연구한 프로이드(Sigmund Freud)는 “자기 자신에게 완전하게 정직한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상의 노력이다”라고 한 바 있다.

ⓒ픽사베이

약점과 얼룩으로 뒤덮인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에 관한 불쾌하고 위험한 진실을 의식적으로 피하는 것은 매우 인간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자기 내면의 모습이 초라하거나 아름답지 않다면 자아보호 욕구 때문에 방어적으로 되기 쉽고, 방어적인 두려움은 사실을 직시하지 않고 넘겨버리는 냉담함으로 이어지게 된다.

심리적 방어기제로서의 의도적인 무관심이 정직하지 못한 자기 자신과의 타협에서 나온다면 스스로의 약점을 뚜렷이 인정하는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걸가? 누구나 자기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사랑하려는 욕구를 갖고 있기 마련이다. 남보다도 자신을 먼저 사랑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이다. 자기기만상태에 빠져있지 않은 자신의 참된 모습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사람은 누구보다도 더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가? 참 모습이 아닌 자신의 허점들을 방치하지 않고 문제가 커지기 전에 뒤틀린 자신의 모습과 정직하게 맞서는 일은 최선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술에 만취된 상태에서도 자신이 이미 지나치게 음주했다는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사람은 나중에 알코올중독이나 그와 관련된 폭력성이나 취중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 등 심각한 문제를 경험하게 되기 쉽다. 자신의 무책임한 행동패턴을 직시하지 못하고 자기부정을 하고 그와 관련된 어려운 미래상황을 미리 내다보지 못하는 사람은 거짓 자아가 아닌 자신의 참 모습에 대해 무관심한 모습을 보인다. 결국 냉담한 태도를 유지하는 가운데 바람직하지 않은 작은 습관과 소소한 문제행동이 쌓이면서 평소 삶의 혼란 상태는 더욱 큰 문제로 발전될 수 있다.

불편한 사실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자신과 직접간접으로 연결된 사회문제에 대해 책임을 지는 적극적인 태도로 해결점을 찾는 일은 종종 희생적 대가를 수반한다. 직장에서의 불의나 불법행위를 눈감지 않고 바로잡으려는 일은 동료들에 대한 배신행위로 부당하게 낙인찍히기도 한다. 전체 공동체의 이익을 도모하는 일은 문제해결에 대한 개인의지를 행사함과 동시에 사회 일원으로서의 주인의식을 발휘하는 것이다. 진솔한 주인의식이 없이 개인수준의 평온한 의식 상태나 겉으로 나타나는 평화로운 사회적 관계가 피상적으로 마냥 지속되기는 어렵다. 사회정의를 배반하고 천인공노할만한 죄를 지은 사람을 용서함으로써 자신의 작은 허물까지도 눈감아주는 무의식적 자기방어태도에서 벗어나려면 거짓자아상에 가려진 자신의 참 모습을 또렷한 정신으로 바라보는 용기가 필수적이다.

만약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약점을 직시하지 않고 대강 흘려보내며 사는데 익숙해져 있다면 집단의식차원에서 사회문제나 제도적 취약점과 비리를 덮어버리고 마는 일은 더욱 더 쉬운 일이 될 수 있다. 무의식적인 두려움 뒤에 숨은 개인들이 자신만의 문제로 보기 어려운 사회적 이슈에 대해 냉담한 자세를 유지한다면 그 사회는 좀 더 나은 사회체제를 구체적으로 발전시키기 어렵게 된다. 국회와 대기업을 비롯하여 특정 종교기관이나 교육기관 내에서까지 벌어지는 불법행위, 성폭력, 차별, 금전적 비리 등 불편한 진실들을 숨긴다면 그러한 기만에 대한 책임은 자기 자신의 참모습을 외면하는 높고 낮은 지위의 모든 방관자들에게 있다. 인류의 지혜로운 선각자들은 이미 방관자들이 보여준 냉담함이 인류사회에 불러일으키는 위험성에 대해 수차례 경고하였다.

“지옥에서 가장 뜨거운 곳들은 커다란 도덕적 위기의 시간에 중립을 유지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되어있다.”
단테(Dante Aleghieri)

“악이 승리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은 선한 사람들이 아무 것도 안하는 것이다.”
에드문드 버크(Edmund Burke)

“과학이 대부분의 악에 대한 치유를 발견했는지는 몰라도 가장 나쁜 악인 인간의 냉담함에 대해서는 아무런 처방도 찾지 못했다.”
헬렌 켈러(Helen Keller)

앨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도 얘기했듯이 이 세상은 나쁜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나쁜 일에 대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살기 위험한 곳이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엘리 위젤(Elie Wiesel)은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란 그의 말이 한국사회에 몸담은 필자에게 생소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웬일일까? 냉담함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자신을 보호하기만 하면 그뿐이고 잘못을 그냥 덮어버리면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불법주차나 취중운전 등 들키지만 않고 해낼 수 있다면 일상생활에서 모른 척 눈감고 지나치는 일이 어디 한 두 가지인가? 크고 작은 불의와 불법행동에 무감각해지고 잘못된 상황을 모른 척 지나치는 일은 물리적인 편리함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사회구조적 특성과도 관련된다.

또한 정의에 대한 무관심은 가정과 집단 그리고 조직 내에서의 심리적 평안을 유지하려는 사회문화적 환경 속에서 학습되어진다. 친구나 동료, 부모가 무책임하거나 잘못된 행동을 할 때 평화로운 관계유지를 위해 그냥 덮어버리는 일이 불쾌한 사실에 대항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다른 아이가 왕따 당하는 것을 방관하며 두고 보는 것도 사회정의에 대한 무관심이나 냉담함을 은연중에 가르치는 가정환경이나 전체 사회분위기에서 연유된다.

개인의 자유와 자급자족정신을 가치있게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타인의 어려움이나 사회부정의에 눈감는 것은 결국 독립적 개인생활 속 평안함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지 못하게 한다. 요즘 먹고 살기 위해 웬만한 일은 서로 눈감고 보아주어야 했던 구태를 벗어 던지고 용기 있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비리를 고발하는 내부고발현상이 부쩍 많이 나타나는 것은 자기기만을 털어내고 때 묻지 않은 본래의 참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의 욕구가 그만큼 강해졌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크고 작은 그룹에 속하려는 소속감에 대한 욕구가 비교적 큰 한국사회에서 내부고발이라는 쉽지 않은 결정을 하는 사람들은 먼저 자기를 본래 제 모습대로 돌려놓으려는 의지와 용기가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어두운 우리 사회에 개인으로서는 한 개의 촛불같이 미미한 영향력을 갖지만 이 촛불들이 함께 모이면 강력한 변화의 물결을 일으킬 수 있는 사회변혁의 힘을 발휘하게 된다. 자기기만행위에 스스로 등을 돌린 사람들을 향해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는다거나, 사회적 비리와 관계없는 개인적 약점을 들추어내는 일은 사실상 용기 없는 자들이 오히려 남을 비난함으로써 자신의 허점을 감추고 심리적 평안함을 유지하려는 헛된 망상일 뿐이다.

한국이 지난 수 세기 동안 경제발전을 최우선시하여 물질적 가난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을 살려내려는 불굴의 의지와 최선의 노력을 펼쳐 보인 정신적인 기반이 튼튼했기 때문이다. 이제 가족중심 또는 개인주의적 성향을 극복하고 사회 공동체 전체를 살리기 위한 상생적 집단의식의 성장에 힘써야 할 시점에 도달하였다.

더 이상 자신과 한국사회의 참 모습이 무너지는 것을 보지 않기 위해 사회적 비리나 부정의로 이어지는 개인의 허점을 용서하지 않는 내면의 용기를 발휘할 때이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올바른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는 계속 진보할 수밖에 없는 희망적 사회이다.

도영인

한 영성코칭연구소장
영성과 보건복지학회 고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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