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경의 현대인의 고전읽기]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The Grapes of Wrath)

루트 66의 기나긴 행렬

미국의 루트 66(Route 66)은 동부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출발해 태평양이 내려다보이는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산타모니카 절벽 앞에서 끝난다. 총 길이 2,451마일(3,945km)의 이 길은 미국 최초의 대륙횡단 도로이다. 미국의 발전에 엄청난 역할을 했으나 현재는 Historic 66으로만 존재한다.

1930년대 어느 날부터 이 길은 갑자기 트럭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오클라호마주 샐리소(Sallisaw)를 출발한 트럭 한 대도 하루 종일을 힘겹게 달려 페이든(Paden)에 이르렀다. 먼지 날리는 길가의 통나무집에서 기름을 파는 사내는 “휘발유를 사면 물을 마음껏 마시게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논평했다.

(하루에) 50대에서 60대의 차가 매일같이 이리로 지나가는데, 애들과 세간들을 몽땅 싣고 모두 서부로만 몰려가니 그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가며, 또 가서는 무얼 하려는 건지.

기름을 살 돈이 없는 사람은 물물교환을 한다.

어떤 사람은 자기네 애들 인형을 주면서 휘발유 한 갈론을 가져갔어요. 그러니 나는 그런 물건을 가지고 무얼 한단 말이오? 또 어떤 친구는 신고 있던 구두를 벗어주면서 휘발유 한 갈론을 달라지 않겠소?

짐작하다시피 그의 창고에는 그렇게 받은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전부 쓰레기들이다. 불행한 것은 그러한 쓰레기들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이다.

‘루트66’은 시카고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이어지는 미국의 최장 고속도로이다. ⓒ김호경
ⓒ김호경

은행이라는 괴물을 이기지 못한 사람들

66번 도로를 질주하는 트럭에 탄 사람들은 전부 가족이고, 농부들이다. 그들이 농토를 떠나 서부로 가는 이유는 간단하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시절부터 농사를 지은 땅이 갈수록 메말라가고 가공할 흙먼지가 사시사철 불어와 옥수수밭을 황폐화시켰다.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은행에 땅을 저당 잡히고 돈을 빌렸다. 그 돈을 갚을 방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고, 은행은 법적 절차에 따라 땅을 몰수했고, 대지주가 그 땅을 매입했다. 오클라호마의 농민 모두가 오갈데 없는 신세가 되었다.

거지로 전락한 농민은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땅을 빼앗긴 분노를 이기지 못해 그 원수에게 총을 쏘려 한다. 50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땅을 일구고, 도랑을 파고, 옥수수를 심고, 거름을 주고, 목화를 재배하고, 소와 돼지를 키웠으나 그 모든 것들이 단 한 장의 은행서류에 의해 증발해 버렸다. 분통이 터진다. 그 원수를 죽여야 한다. 과연 누구를 쏘아야 할까? 은행원을 쏘아야 할까? 은행장을 쏘아야 할까? 아니면 대지주를 쏘아야 할까? 그런다 한들 빼앗긴 땅을 되찾을 수 있을까?

남은 방법은 하나이다. 샐리소 읍내의 모든 벽에 붙어 있는 현란한 전단지를 믿는 것이다. ‘오렌지 수확 인부 대모집, 포도 수확 인부 대모집, 숙식 보장, 가족 환영, 초보자 환영, 친절과 믿음, 최고 일당 보장’ 그 전단지 하나를 믿고 온 가족이 서부 캘리포니아로 떠난다.

그 전단지들은 80년이 흐른 지금도 우리의 삶에서 우리를 매일 유혹하고 있다. ‘믿고 쓰는 일수’, ‘아파트 담보 대출, 친절한 상담’, ‘투자가치 100%’...... 진실이 아닌 줄 알면서도 전단지에 적힌 전화번호를 누르는 이유는 삶이 막다른 길에 내몰렸기 때문이다.

<분노의 포도>는 자본주의의 냉정함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김호경
<분노의 포도>에 그려진 삽화 중 하나. ⓒ김호경

왜인지 잘될 것만 같은 불편한 생각

조드 가족이 떠나기 며칠 전, 아들 톰 조드가 기적적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4년 만이다. 삽으로 사람을 때려죽인 죄로 7년 형을 언도받았으나 모범수로 가석방되었다. 출소할 때 맥 알레스터 교도소에서 새 구두와 새 옷, 모자도 주었다. 그러나 전혀 기쁘지 않다. 집이 망해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거대한 파도를 이겨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는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모든 가재도구를 시장에 내다 팔았다. 말 2마리와 마차, 온갖 살림살이를 팔았음에도 손에 쥔 돈은 18달러였다. 거기에 그동안 모은 150달러와 톰이 가진 20달러를 합하면 현금은 170달러이다. 그 돈이면 충분하다. 그 믿음을 안고 모든 식구가 트럭에 오른다.

‘거주지를 떠나서는 안 된다’는 가석방 규정을 어겨야 하는 톰 조드,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존 삼촌, 형 노아, 남동생 앨, 여동생 로자샤안, 그 남편 코니, 여동생 루시, 남동생 윈필드, 떠돌이 케이시 목사, 사람만 13명이다. 거기에 셰퍼드가 2마리 있다. 그들을 버리고 갈 수는 없다. 그래서 도합 15 생명체이다. 돼지는 싣고 갈 수 없어서 전날 잡아먹었다. 출발하는 날 개 1마리는 실종되어 트럭에 올라탄 생명체는 14가 되었다. 어머니는 낙관적이었다.

“왜 그런지 캘리포니아에 가면 모든 것이 잘될 것만 같은 생각이 자꾸 드는구나.”
정말 그럴까?

미국 사회의 또 다른 일면을 보여주는 소설로는 <아메리카의 비극>을 꼽을 수 있다. ⓒ김호경
존 스타인벡은 미국 작가로는 여섯 번째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김호경

내쫓김의 모순과 자본주의의 참모습

미국은 철저한 자본주의 국가이다. 오늘날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 자본주의는 전 세계와 전 인류를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엄격한 의미에서의 자본주의를 지키고 있는 나라는 드물다. 어쩌면 미국이 유일하다 할 수 있다. 미국에 가보면 이 말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진짜 배가 고플 때는 별로 없어요. 다만 차(트럭)를 달리는 것이 신물 나서 잠깐 머무는 것뿐이오. 간이휴게소 같은 곳이 차를 멈출 수 있는 유일한 곳이오. 차를 세워놓고 들어가면 무언가 주문을 해야 카운터 뒤에 있는 아가씨와 허튼 말수작이라도 두어 마디 해볼 거 아니겠소?

음식을 시키지 않으면 아가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돈이 있어야 한다.

누구든지 농사를 지어먹고 살고, 또 세금만 제대로 낼 수 있으면 계속 갈아먹으라는 것이었다. 누구든지 그렇게 할 수만 있으면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금을 내지 않거나 은행이자를 갚지 않으면 모든 것이 몰수된다. 이는 어느 나라나 똑같지만 미국은 특히 무자비하다. 땅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제기랄! 전쟁이나 자꾸 일어나라. 그래서 목화값이 천장만큼만 올라가라”고 기도한다. 실제 미국은 자국의 군비산업을 부흥(혹은 유지)시키기 위해 세계의 모든 전쟁에 참여한다.

이 소설은 그러한 미국의 무자비한 자본주의를 보여준다. 또한 미국 역사의 모순도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오클라호마 농민들은 은행과 대지주의 횡포에 의해 고향에서 추방된다. 그 과정은 극히 분노스럽고 비참하지만 “할아버지가 처음에 이 땅을 갈기 시작했었다. 인디언들을 죽이고 쫓아냈던 것이다”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성이 없다. 자신들이 쫓겨나는 것만 억울할 뿐 자신의 선조가 죽인 인디언들은 그 죽음과 내쫓김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철저한 모순이다.

이 소설을 통해 1930년대의 경제 대공황, 농업의 중요성, 노동의 의미와 가치, 부익부 빈익빈, 인간성의 상실, 가족의 소중함을 논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것들은 다 말장난이다. 내가 찾아낸 것은 자본주의의 참모습이었다. 과연 자본주의는 인간의 얼굴을 할 수 있을까? 그렇기는 어려울 것이다.

* 더 알아두기

1. 스타인벡(John Ernest Steinbeck)은 1902년 캘리포니아에서 출생했다. 신문기자와 작가를 거쳐 오클라호마에서 이주민들과 함께 서부로 가는 체험을 직접 했다. 그 체험을 담은 소설이 <분노의 포도>(1939년)이다. 캘리포니아, 오클라호마 두 주에서 금서(禁書) 판정을 받았다. 또 다른 대표작은 <에덴의 동쪽>이며, 196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2. 건포도는 다양한 비타민과 미네랄을 함유하고 있으며 특히 철분이 풍부하다. 빵을 비롯한 여러 음식에 사용된다. 전 세계 건포도 소비량의 약 50%는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된다.

3. ‘루트66’은 1925년에 시작되어 1932년 무렵 완전하게 건설되었다. 농업 중심의 남부를 북부의 산업도시뿐 아니라 캘리포니아의 ‘햇살 머금은’ 도시들과 연결시켜 주었다'고 설명되어 있지만 스타인벡은 루트66을 매우 비관적으로 묘사했다. 냇킹콜(Nat King Cole)의 노래에도 <Route 66>이 있다.

4. “아무리 농사를 지어봤자 별 볼일 없어요. 당신도 빨리 아무데나 가서 일당 3달러짜리 일을 찾아보세요. 그 수밖에 없을 거예요”라는 말은 농업의 미래에 대한 경고이다.

5. 미국 사회를 가늠할 수 있는 소설로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Death of a Salesman), T.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T.드라이저의 <아메리카의 비극>(American Tragedy, 일명 ‘젊은이의 양지’)이 있다. 조금 더 시간이 있다면 어윈 쇼의 <야망의 계절>(Rich Man, Poor Man)도 독서 목록에 추가하기 바란다.

6. 미국의 ‘성애 소설’로는 나보코프(Vladimir Nabokov)의 <롤리타>(Lolita), 헨리 밀러(Henry Miller)의 <북회귀선>(Tropic of Cancer)을 꼽을 수 있다.  

 김호경

1997년 장편 <낯선 천국>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여러 편의 여행기를 비롯해 스크린 소설 <국제시장>, <명량>을 썼고, 2017년 장편 <삼남극장>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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