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관의 모다깃비감성]

[오피니언타임스=신명관] 새벽 두시 즈음인가. 친구의 사진을 보았다. 널따란 포도밭과 그 너머로 보이는 유럽 가정집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친구의 사진을 보고 아무 생각도 없이 나는 친구에게 카톡으로 말했다. “나도 가고 싶다!” 친구는 금방 내 메시지를 읽고서는 답했다. “놀러오면 되지!” “그래!!”

본래 여행을 싫어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여행의 필요성에 대해서 이해를 못하는 편이었다. 굳이? 내가? 거길? 왜? 힐링이라는 목적과 자기고민, 계발, 더 넓은 세상과 글로벌의……. 막 뭐라고 하는데, 모르겠다. 그게 굳이 그 먼 곳으로 나가야지 가능한 걸까 하는 생각이 강했다. 그저 집이던 학교던 직장이던. 자기가 있는 곳이 피하고 싶은 ‘현실’인 것만 같아서 도피를 시도하려는 게 아닐까 싶었으니까. 그래서 해외로 나가본 건 10년 전, 유니세프 봉사 차원으로 간 몽골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 독일로 도피를 감행했다. 완벽한 ‘현실도피’였다. 휴가를 받기가 어려워서 일주일 전에야 항공권을 끊을 수 있었고, 비행기 값만 170만원이 나가는 초호화 사치 플레이를 했다. 기체가 우악스럽게 덜컹거리다가 이륙하고, 창밖에 멀어지는 한국 땅을 보면서 생각했다. ‘아 그럼. 못 견디겠으면 일단 튀고 봐야지.’

ⓒ픽사베이

슈투트가르트는 독일 남부에 위치한다. 여섯 번째로 큰 도시일뿐더러 그만큼 교통권까지 발달해있다. 특히 메르세데스-벤츠와 포르셰의 본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걸 모두 무시하고 콥(마을 이름)으로 갔다. 포도밭이 뒤쪽에 능선을 따라 쭉 펼쳐져있는 마을이었다. 벤츠고 베를린이고 브란덴부르크고 관심도 없었다. 내가 원한 건 휴식이었으니까. 한글을 철저히 보고 싶지 않은 한국인이 되어서 쉬고 싶었다.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친구는 비싼 돈까지 주고 왔는데 뭐 보고 싶은 거라던가 먹고 싶은 게 있는지를 연거푸 물었다. 나는 친구가 사준 케밥을 우물거리다가 말했다. “글쎄. 그냥 케밥만 먹으면서 6박 7일 있다가 돌아가도 괜찮을 것 같은데.”

조용한 마을에 온 것은 신의 한 수였고, 6박 7일동안 나는 마을 뒤에 있는 포도밭만 세 번을 올라갔다. 한국에서는 이유 없는 정적이 불안했다. ‘무한경쟁사회’라는 분위기 속에서 찾아오는 침묵이 여유나 휴식이 아닌 ‘도태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변질되어버려서 그럴 것이다. 조용한 것은 둘째치고 움직여야 했고, 놀 때도 ‘본전’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빽빽한 스케줄을 짜는 것이 보통이었다. 반면에 독일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평화롭다. 이렇게 해서 살 수 있나 싶을 정도다. 특히 포도밭은 가끔씩 부는 바람소리를 제외하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여유가 가득한 곳에서 넋 놓고 아무 것도 안하는 시간, 천국이다.

친구가 낮에 독일어학원을 가있는 사이에도 나는 뭉그적거리면서 일어난 뒤 포도밭으로 올라갔다. 울타리도 쳐져있지 않은 데다 무단침입해도 뭐라 그럴 사람이 없다. 애초에 사람이 거의 없으니까. 매년마다 질 좋은 포도를 생산하는 곳. 마을에는 포도주를 만드는 집만 여러군데가 있었다. 포도밭의 둘레길을 쭉 따라 한 시간정도 걷다보면 능선의 꼭대기가 나오고, 그곳엔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 하나와 슈투트가르트의 풍경이 있다. 나는 그곳에 하염없이 앉아있었다.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곳. 예전에는 단호히 그런 경우는 없다고 했지만, 세상은 넓었다. 래퍼 마미손의 말처럼, 나는 우주의 조빱이니까.

나는 아직도 넓은 세상과 안목과 자기계발 등등의 이유로는 여행을 할 생각이 없다.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고, 서로 다른 생각을 교류하고, 철학과 인문학 서적을 꾸준히 읽는 것만으로도 아직은 충분하다고 생각하니까. 다만 도피는 별개가 되었다. ‘못견디겠다’란 말은 근처에 화장실이 없어서 급한 사람들만 하는 말이 아니다. 그렇다고 화가 단단히 난 사람들만 하는 말도 아니다. 숨 쉬는 것마저 벅찰 정도로 자신을 압박하는 모종의 분위기를 느낄 때가 있다. 그런 사람들은 여하불문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 견디지 못하면 무너지는 게 사람이다. 다만 빽빽한 계획 대신에 무계획 자리고정으로 여행해보기를. 그것도 도심이 아니라 외곽처럼 조용한 곳으로. 휴식은 어떻게 해야 잘 쉬었는지 소문이 날까 고민하는 일이 아니다. 아무 생각 없이, 생각을 버리고 오길 추천한다. 

 신명관

 대진대 문예창작학과 조교 / 대진문학상 대상 수상

 펜포인트 클럽 작가발굴 프로젝트 세미나 1기 수료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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