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진의 청춘사유]

[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실업률이 몇 년 만에 최고라는 헤드라인이 눈에 띈다. 쓴웃음을 지으며 입술을 질겅 깨물고 마지막을 합의하는 종이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벽을 보고 한참동안이나 앉아있었다. 아니, 널브러져 있었다. 지난 100일간 일을 하지 않는 자의 삶에 나타나는 현상을 조목조목 정리해보았다.

조우울증의 신이 임하다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기대된다. 이곳에서 저 일을 하고 저곳에서 이 일을 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뛴다. 대학을 졸업하던 시절, 가슴 설레는 마음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던 때가 생각난다. 그러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아직 걷지도 못하는 녀석을 생각하면 갑자기 가슴이 타 들어간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다. 아무 곳에서도 날 원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나는 인생 낙오자인가.

머리감기가 두렵다

미용실에서 헤어디자이너가 말씀하셨다. “고객님, 탈모가 있으시네요. 뒤쪽에 뻥 뚫린 부분이 있어요. 알고 계셨어요?” “아, 네, 그거 별거 아니예요” 나는 꿈에도 몰랐다. 내가 탈모라니. 그리고 머리를 감고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면 머리카락이 바닥에서 춤을 춘다. 무슨 우박 쏟아지듯 우두두두둑.

잘 지내시죠?

아니! 못 지낸다 임마! 이렇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랜만에 연락 오는 모든 사람들의 안부인사에 묵묵부답 한다. 일일이 내 상황을 설명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여유롭게 만나서 식사할 생각은 더더욱 없다. 이게 바로 대인기피증의 시작인가.

자동 다이어트

오늘 점심 뭐 먹을까? (나는 아무 생각이 없어) 매 끼니를 먹어야 할 이유를 상실했다.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으니 돈도 절약하고 살도 자연스럽게 빠진다. 그렇다면 좋아해야할까. 보는 사람마다 살이 빠졌다고 하니 기분이 좋으면서도 인간의 고유한 욕구인 ‘식욕’이 사라져버린 것이 어째 서운한 마음이 든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넘치도록 먹고 숨이 안 쉬어지는 현상을 경험했었는데.

ⓒ심규진

카페로 출근

집 안에 가만히 있으면 가만히 시간이 훌쩍 간다. 나가서 무언가라도 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카페의 문을 두드렸다. 하하호호 웃는 연인들. 비즈니스 미팅을 하는 회사원들. 혼자서 여유를 즐기는 중년의 여성. 각자만의 이유를 가지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그들. 나는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0.5평 남짓 자리에 앉아 미래를 설계한다.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기웃거린다. 놀랍게도 어떤 날은 과거 정상근무를 했을 때 보다 시간이 더 잘 가는 날도 있다. 이렇게 백수생활에 익숙해지는 것일까. 아니면 나는 백수 체질일까.

확인 또 확인. 잔고 확인

모바일뱅킹의 시대. 실시간으로 잔고를 확인한다. 혹시 돈 떨어지면 돈을 구하러 가야하니까. 빌릴 수 있는 사람을 항시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모두 거절당하면 최후의 보루로 남겨둔 ‘범죄의 재구성’도 있다. 아차, 이건 비밀인데. 더 구체적으로 말하진 않겠다. 나도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 하므로.

월화수목금금금

하루도 마음 편히 쉴 수 없다. 그래도 일을 할 때는 주말에 쉴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늘어지게 자고 때로는 인터넷에 떠도는 의미없는 영상을 보며 혼자 웃곤 했다. 이제는 주중에 일을 하지 않으므로 쉴 수 없다. 차라리 그 시간에 집안일을 하나라도 더 하는 것이 생산적이다. 끝나지 않는 주중의 중압감이 내 어깨에서 떠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조금 만 더 시간을 보내고 현장으로 나가서 무슨 일이라도 할 생각이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스스로 카운팅하며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내고 있다. 지금의 시간이 미래에 빛나기 위해서는 좋은 결실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경기가 어렵다며 환경을 탓하는 시간에 음식물 쓰레기라도 한 번 더 버리고 와야지. 대한민국에서 평범하게 살기란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나는 지금 평범하게 살기 위해 온 힘을 다하여 발버둥치고 있다. 그렇게 연말이 성큼 다가왔다. 

 심규진

 퇴근 후 글을 씁니다 

 여전히 대학을 맴돌며 공부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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