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의 들꽃여행]

돌나물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Orostachys malacophylla (Pall.) Fisch.

등대(燈臺)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 중에서

[오피니언타임스=김인철] 매서운 바람이 드디어 본격적인 겨울에 접어들었음을 실감케 합니다. 모든 것이 얼어붙는 때에 ‘꽃 타령이 웬 말이냐’고 하겠지만 야생화 동호인 사이트를 접속하면 의외로 많은 꽃 사진이 오르는 걸 볼 수 있습니다. 털머위, 산국, 감국, 해국, 개망초, 개쑥부쟁이, 바위솔, 진주바위솔, 둥근바위솔, 들개미자리, 솔잎난, 미역취 등 늦둥이 가을꽃들과, 호자덩굴, 배풍등, 이나무, 겨우살이, 노박덩굴, 자금우 등의 열매, 그리고 이미 지상에선 사라진 봄여름 야생화들의 추억을 담은 사진 등등.

부산 동백섬 바위 절벽에서 하얀색 꽃송이를 탐스럽게 피워 올린 둥근바위솔. 해운대 해수욕장 바로 뒤에 건설 중인 초고층 빌딩들을 향해 ‘탐욕과 허영의 바벨탑을 쌓지 말라.’는 자연의 소리를 전하는 듯싶다. ⓒ김인철
ⓒ김인철

이런저런 많은 꽃 가운데 이번에 ‘12월의 야생화’로 꼽은 것은 바로 둥근바위솔. “상상력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지식이란 참으로 허망한 것이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숱하게 많은 꽃이 피고, 또 그들이 한결같이 예쁘고 화려하지만, 그 어떤 상상력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면 그저 화중지병(畵中之餠)처럼 허망한 꽃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황량한 겨울 바다를 지키는 등대처럼 오뚝 선 둥근바위솔은 보는 이의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초겨울의 대표 야생화로 꼽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짙푸른 동해를 품에 안을 듯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바위 위에 자리 잡은 둥근바위솔. 바다의 수호신인 양 고성에서부터 거제에 이르기까지 동·남 해안가에 폭넓게 자생한다.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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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부산 동백섬 해안가 아슬아슬한 바위 절벽에 핀 둥근바위솔에선 사상누각을 쌓으려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꾸짖는 자연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바로 뒤 해운대에 들어서고 있는 초고층 빌딩들에 주눅 들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곧추세운 일군의 둥근바위솔이 던지는 무언의 메시지를 상상해보았습니다. 그러자 탐욕과 허영, 사치로 빚은 장밋빛 개발의 덧없음을 일깨우는 둥근바위솔의 외침이 들려옵니다. 그뿐만 아니라 멀리 강원도 고성에서부터 시작해 경남 거제도에 이르기까지 동, 남해안 일대 바닷가 곳곳에서 크고 작은 선박은 물론 세상 사람들에게 길 잃고 헤매지 말고 정도(正道)를 가라며 길라잡이 하는 둥근바위솔의 분주한 손놀림이 눈에 들어옵니다.

‘철 지난 바닷가의 숨은 보석’ 같은 둥근바위솔의 꽃차례. 촛대에 꽂힌 초 모양의 꽃차례에 흰색의 꽃잎과 홍자색 꽃밥, 그리고 붉게 익어가는 골돌(씨방)로 이뤄진 꽃송이가 다닥다닥 달려 있다. 9월부터 12월까지 핀다. ⓒ김인철
ⓒ김인철

거센 파도가 넘실대는 척박한 바닷가에서 12월 초순까지도 기운찬 생명력을 과시하는 둥근바위솔. 바위 겉에 뾰족한 이파리를 동그랗게 돌려내며 자라는 모습이 솔방울을 닮았다고 해서 그 이름을 얻은 바위솔의 한 종류입니다. 정선바위솔·연화바위솔·포천바위솔·가지바위솔·진주바위솔·난쟁이바위솔·좀바위솔 등 국내에 자생하는 여타 바위솔에 비해 이파리 끝이 둔하고 둥글어서 둥근바위솔이란 별도의 국명으로 불립니다.

강원도 고성 백도 해변에 핀 둥근바위솔. 푸른 바다와 모래밭은 물론 뒤편으로 설악산 등 굵직한 산줄기가 또렷하게 눈에 들어온다. ⓒ김인철
ⓒ김인철

9월부터 12월까지 촛대에 꽂힌 초처럼 생긴 꽃차례(花序)에 흰색 꽃이 다닥다닥 달리는데, 수술의 꽃밥이 유사 종인 정선바위솔은 노란색, 연화바위솔은 담황색인 데 반해 둥근바위솔은 자줏빛이 도는 적색으로 차이가 난다고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식물체의 전체 키는 10~30cm 정도, 그중 꽃차례가 5~20cm를 차지한다. 여러해살이풀로 분류되어 있지만, 한해를 살았든 두 해를 살았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면 곧 말라 죽기 때문에 실제로는 한해살이도, 두해살이도 되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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