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호의 멍멍멍]

[오피니언타임스=이광호] 살까 말까 하는 고민은 결국 지름으로 끝을 맺기 마련이다. 고민은 배송만을 늦출 뿐이라는 신념 아래 살아왔지만 전자책 리더기 앞에서의 고민은 해를 두 번 넘길 때까지 계속됐다. 지름신의 결단을 돕기 위해 후기를 참고했지만 혼란만 커졌다. 책을 더 많이 읽게 되었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적응이 안 돼서 중고로 처분하고 다시 종이책으로 넘어왔다는 사람도 많았다. 극과 극의 평가였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요? 샀다.

ⓒ픽사베이

전자책을 사지 않은 이유

소장이긴 한데 말이야

구글에 ‘리디북스’를 입력하면 ‘리디북스 망하면’이라는 예상 검색어가 제일 먼저 뜬다. 소심한 고민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반가움에 바로 검색 결과를 찾아봤다. 진지한 고민과 답변이 오고 갔던 흔적들이 있었다. 전자책 구매 시 ‘소장’이라는 문구를 사용하지만 사실상 ‘전자책 회사가 망하기 전까지’라는 문구가 생략되어 있는 것이라는 결론이었다. 전자책은 종이책처럼 실물이 배송되어 오지도 않고, 파일 형태로 저장할 수도 없어 전자책 서비스 업체가 서비스를 중단하면 소장한 책들이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2014년 올레e북이 서비스를 종료한 선례가 있다. 올레e북은 서비스를 종료하며 ‘바로북’이라는 전자책 서비스 업체에 회원을 이관했다. 하지만 기존에 서비스하던 도서 중 대부분이 저작권 문제로 이관되지 못해 소비자들은 불편을 겪었다. 삼성북스 또한 같은 해 자체 이북 서비스를 중단하고 교보문고와 협력해 컨텐츠를 제공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이용이 어렵거나 불가능한 경우 환불을 해주었지만 이용자 입장에서는 소장했던 전자책이 사라지는 경험이 달갑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KT와 삼성 같은 대기업에서 제공하던 전자책 서비스도 중단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과연 전자책을 소장할 수 있는 게 맞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전자책에 도서정가제를 적용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있다. 종이책은 출판사가 망하거나, 책을 구매한 서점이 망해도 내 책꽂이의 책을 회수해가지 않지만, 전자책은 서비스 업체가 망하면 내 전자책이 사라지거나 읽을 권한이 없어질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책밖에 못 읽는데 그렇게 비싸?

전자책 리더기의 핵심은 전자잉크(e-ink)다. 거칠게 말해 철가루를 이용해 썼다 지웠다 할 수 있었던 장난감과 비슷한 원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전력 소비량도 적고 눈의 피로도 적다(피로도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는 주장도 존재한다)는 장점이 있다. 무게도 가볍다. 대신 그다지 높은 사양이 채택되지 않고, 화면에 잔상이 남기 때문에 책을 읽거나 만화를 보는 등의 기능 외에는 사용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가격 또한 만만치 않다. 한국 이퍼브의 크레마 그랑데의 경우 20만원 초반, 크레마 엑스퍼트의 경우에는 약 50만원이다. 리디북스 자체 리더기 페이퍼 프로도 20만원 중반대의 가격이 책정되어 있다. 조금만 돈을 더 보태면 일반 태블릿 PC나 저가형 노트북을 살 수 있는 금액이다. 스스로도 이런 생각이 드는데, 책에 관심 없는 사람에게 책이 포함된 것도 아닌 책을 읽는 기능만 있는 리더기를 이 돈 주고 산다고 하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돌아오는 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종이책만의 매력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책의 매력에도 빠져든다. 읽지도 않을 책들을 책꽂이에 꽂아놓고 흡족한 미소를 짓는 것을 보면 독서가 아니라 도서가 취미이고, 독서는 뒤따라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게 종이책만의 매력이다. 오프라인 서점에서 새로 나온 책들의 표지를 만져보고, 디자인과 편집을 살피고, 오래된 책의 냄새를 맡고, 누군가의 낙서와 메모를 보는 그 맛. 이런 종이책만의 감성을 포기하기 힘들다.

반면 전자책은 리더기를 통해 구현되기 때문에 종이책과 느낌이 다르다. 나는 얼마쯤 읽었는지, 반전이 나올 만 한 지 등을 남은 분량을 통해 짐작한다. 아, 아직 많이 남았으니 사건이 하나 더 있겠구나, 혹은 주인공이 살아날 가망은 없겠구나 하는 걸 남은 두께로 어림짐작 한다. 무조건은 아니어도 대체로 들어맞는다. 하지만 전자책은 디스플레이를 통해 보는 것이기에 이러한 짐작도 힘들다. 책 표지의 질감도, 종이의 냄새도 느낄 수 없다. 책의 크기도 내가 사용하는 모니터 혹은 리더기의 크기로 통일된다. 시험기간마다 책꽂이를 보며 느끼는 정리 충동도 없다.

전자책을 산 이유

우리집 전셋집이야

내 방 옷장은 반 정도밖에 안 열린다. 책꽂이가 옷장 문을 침범해버렸다. 반대쪽 문을 열고 안으로 손을 넣어 옷을 꺼내야 한다. 가끔 예상치 못한 다른 옷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방문도 책꽂이에 걸려 45도정도 밖에 안 열린다. 그 사이에는 책상이 있어서 방을 들어오거나 나가려면 몸을 살짝 기울여야만 한다. 자연스레 예의바른 모습이 된다. 왕을 알현하고 종종걸음으로 나가는 모습 마냥.

공간의 문제다. 종이책을 산다는 건 그만큼 나의 공간을 내어줘야 함을, 공유해야 함을 의미한다. 금전적, 공간적 여유가 있으면 서재를 만들어서 보관하면 된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상당수 사람은 그럴 여유가 없다. 이사 갈 때마다 버리기는 아깝고 가져가기는 번거로운 게 책장과 책이다. ‘언젠가 다시 읽을 일이 있겠지’ 하고 가져가봐야 모셔놓기만 한다. 이제는 포기하기로 했다. 관리도 안 되고 움직이는데도 불편하다. 결정적으로 전세 기간이 얼마 안 남았다. 곧 이사 가야 한다. 이번엔 책 걱정 없이 이사하고 싶다.

나무야 미안해

종이책이 주는 감성은 종이, 그러니깐 나무에서 온다. 내가 책을 사고, 책꽂이를 늘릴 때마다 나무는 베어진다. 논문이나 자료도 출력해서 본다. 나무는 또 베어진다. 하지만 전자책으로 보면 약간의 용량과 전기를 소모할 뿐이다. 종이로 책을 만들거나 출력하는 것과 비교하면 아주 적은 양이다. 회의 자료처럼 몇 번 보고 버려질 것들은 출력하지 않고 리더기로 보는 습관을 가지기로 했다.

물론 논문 등의 자료를 전자책 리더기로 보는 건 그리 편하지 않다. 글씨크기가 자동으로 조절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화면을 확대하고 이동하는 걸 반복해야 한다. 종이로 뽑아 보는 게 눈에 훨씬 편하다. 하지만 한 번에 여러 권의 책이나 자료를 봐야 할 경우에는 전자책의 이점이 있다. 여러 권의 책을 들고 다니면 가방이 너무 무거워진다. 일정이 끝나면 항상 피곤에 지쳐버린다. 하지만 이제는 전자책 리더기 하나만 들고 다니면 된다. 기억해야 하는 부분은 하이라이트 표시를 하면 된다. 주섬주섬 펜을 꺼내 밑줄을 긋는 수고는 이제 안녕이다.

전자책 리더기, 불편함을 산다

전자책 리더기를 사놓고 보관만 하고 있다는 사람도 있다. 리더기보다 핸드폰으로 보는 게 더 편하다고 하는 지인도 있었다. 하지만 책을 보관할 공간이 없어 고민하고 있거나, 독서가 아닌 책에 욕심이 생겨 자꾸만 책을 사놓고 후회한다면, 혹은 책꽂이에 책들을 흡족스럽게 바라보고만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구매할만하다. 물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 비하면 구동이 느리고, 액정에 잔상도 남는다. 그걸 뭐하러 사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전자책 리더기의 가장 큰 장점이 있다. 오로지 독서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점이다. 때로는 행동의 제약이 습관을 만들기도 한다. 전자책 리더기는 그 불편함을 구매하는 것이다. 

 이광호

 스틱은 5B, 맥주는 OB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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