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혜탁의 말머리]

[오피니언타임스=석혜탁] 어릴 적부터 우리를 괴롭혀온 숙제, 바로 독후감이다. 

독후감(讀後感)의 한자를 뜯어보자. 만만한 과정이 하나도 없다. 

먼저 독(讀).

일단 본인이 읽고 싶은 책이 아니라, 읽어야 하는 책을 누군가 선정해줄 때 ‘독’의 괴로움은 배가된다. 책은 좀 두꺼운가. 시간도 많이 걸리고, 읽고 있다 보면 앞의 내용을 까먹기 일쑤다. 독서의 흐름도 자주 끊기고. 

책읽기와 그에 대한 기록의 과정은 즐거워야 한다. 독전감, 독중감을 권해본다. ⓒ석혜탁

그 다음 후(後).

뒤에 페이지가 얼마 안 남았을 때 성취감이 느껴지기보다는, “다 읽어가는데, 무슨 감상문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다 읽고 써야 한다는 것, 어떤 과정 ‘후(後)’에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 이것이 독서의 즐거움을 반감시킨다.

그래서 ‘감(感)’을 잡기 어렵다. 제대로 된 감상이 나오기 힘든 구조인 것이다.

그러니 이제 읽기 ‘전’에 쓰는 ‘독전감(讀前感)’을 권해보려 한다.

길지 않아도 좋다. 내용을 100퍼센트 다 파악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그럴 필요도 없고.

일단 원하는 책을 고르는 과정이 독전감의 산뜻한 시작이다. 제목과 표지 디자인이 끌려서 책을 짚더라도 괜찮다. 꼭 시대담론을 반영한 책을 읽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겐 없다. 얇은 책을 고르는 것도 좋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저자의 프로필이 이채로운가? 그것 역시 그 책을 고르는 유인이 될 수 있다. 신간이든 구간이든 상관없다. 책을 고르는 데 멋진 동기가 따로 있지는 않을 터, 독전감은 ‘숙제’가 아니다. 

책에 대한 첫 인상, 저자에 대한 기대를 몇 문장으로 끄적여 보자. 스마트폰 메모장에 빠르게 몇 자 적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일. 문법 오류 따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기존에 알고 있던 저자라면 알고 있는 대로, 모르는 저자라면 모르는 대로 나름의 기대되는 감상평을 적어보자. 

여행을 떠나기 전 가장 설레는 순간은 공항에 도착해 탑승시간을 체크하며 출국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전(前)이 주는 매력, 그리고 그에 따라 부풀어 오르는 설렘의 크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운동을 하기 전 몸풀기 운동을 하고, 뜨거운 사랑을 나누기 전 로맨틱한 전희(前戲)의 과정이 있어야 하듯 책을 읽기 전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몇 개의 문장을 직조해보며 독서라는 여행 버스에 올라탈 채비를 마칠 수 있다.   

목차를 읽어보자. 어떤 글이 전개될지 대강이나마 예상이 될 것이다. 그때부터 짧게 짧게 메모를 해보면 된다.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든, 포스트잇을 덕지덕지 붙이든, 책의 군데군데를 접든, 빌린 책이 아니라 내 책이라면 여러 방식으로 독서한 티를 마구 낼 수 있다. 그러면서 ‘독중감(讀中感)’에도 빠져보는 것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시간을 쪼개 책을 읽는 것이기에, 인상적인 문장이나 기억하고 싶은 구절은 따로 기록해두어야 한다. 딴지를 걸고 싶거나, 어떤 주장에 대해서 진지하게 반론을 펼치고 싶으면 그 역시 그때그때 정제되지 않아도 좋으니 적어두자. 

우리는 어렸을 때 독전감, 독중감을 배우지 못했다. 이 유의미한 단계를 뛰어 넘어 바로 독후감을 쓰기를 강요받았다. 이젠 읽기 전에, 그리고 읽으면서 우리의 감상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독전감과 독중감이 습관화될 때 책읽기가 부과하는 부담의 장벽은 낮아지고, 독서의 기쁨은 한층 커지게 될 것이다. 독후감을 쓴다 해도, 독전과 독후의 생각이 더해져 완성도가 더욱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다 안 읽어도 좋다. 완독(完讀)의 부담에서 해방되었으면 한다.

독전, 독중에 느끼는 당신의 생각이 옳다. 

 석혜탁

- 대학 졸업 후 방송사 기자로 합격. 지금은 기업에서 직장인의 삶을 영위. 
- <쇼핑은 어떻게 최고의 엔터테인먼트가 되었나> 저자. 
- 칼럼을 쓰고, 강연을 한다. 가끔씩 라디오에도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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