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니의 날아라 고라니]

출근길에 교통사고가 났으면 하는 생각,
자고 일어나면 지구가 멸망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퇴근인사를 무시하는 팀장의 뺨따귀를 냅다 후려치고 싶다는 생각.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면 당신도 불행한 직장인이다.

극단적인 상상은 극심한 스트레스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도피처다. 그러나 법정근로시간은 길고 상념의 시간은 짧다. 돌아갈 곳은 언제나 현실, 그러니까 꼴 보기 싫은 인간들과 아무 보람도 없는 업무가 기다리는 사무실이다. 고통의 원인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는 무언가가 가장 아픈 부분이라면 상처는 결국 덧난다. 하루하루를 억지로 버티다 보면 상상 속 장면들은 점점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고, 건강검진 결과는 매년 암울해진다. 이와 함께 ‘퇴사’는 보다 현실적인 선택지로 부상한다.

그런데 막상 퇴사를 결심하면 걸리는 것들이 한 둘이 아니다. 나이가 많아 서류전형에서 탈락할 거라는 현실적인 걱정 이전에, 설득하고 안심시켜야 할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멀쩡한 직장을 때려 치겠다는 자식을 보며 부모님은 복장이 터지고, 불확실한 미래를 공유하게 된 애인에게는 미안한 마음 반, 나를 떠날 것 같은 불안한 마음 반이다. 리스크가 낮은 길을 성실하게 걸어온 나 같은 보통 사람들에겐 길 위에서 벗어나는 두려움도 만만치 않다. 이 모든 상황을 고려하고도 의지가 꺾이지 않았다면 비로소 퇴직금을 수령할 자격이 생긴다.

ⓒ픽사베이

적지 않은 나이에 사표를 내며 나름의 다짐이 있었다. ‘인생 긴데 좀 늦더라도 맞는 방향으로 가자.’ 자신감도 있었다. ‘뭘 하든 지금보다 힘들까.’ 그리고 의원면직 발령이 뜨던 날, 사무실을 나와 회사로고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보이던 해방감은 두 시간을 채 가지 않았다. 낙오자가 된 것 같은 열패감과 끝 모를 불안감으로 하루 종일 심장이 터질 듯 쿵쾅거렸고, 머릿속엔 ‘내가 무슨 짓을 벌인 거지.’라는 생각만 가득했다. 베개에 머리를 대기 무섭게 잠이 드는 체질임에도 불구하고 그 날 밤은 뜬 눈으로 지샜다. 결국 날이 밝자마자 집에서 가장 가까운 독서실에 등록했고, 다음 직장의 합격소식을 들을 때까지 하루도 쉬지 못했다.

몇 번의 이직 경험이 있는 친구가 얼마 전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난 니가 퇴사하자마자 빌빌댈 줄 예상했다.” 어딘가에 적을 두고 있다가 갑자기 백수가 됐을 때의 심리적 압박감은 상상을 초월한다는 걸 이미 경험해서 알고 있었다고 한다. 개고생할 거 뻔히 알면서 왜 말리지 않았냐고 물으니 친구가 말했다. “그 땐 말해도 안 들려.” 그러고선 하는 말이, 자기는 어떻게든 그 지옥에서 안 죽고 기어 나와 보니까 그 다음에는 사는 게 제법 편해졌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되리라 믿었다고.

당시에는 지독히 괴로웠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퇴사는 살면서 가장 잘 한 일 중에 하나다. 지금 직장이 편해서는 아니다. 이곳에도 카누가 다 떨어졌는데 빨리 사놓지 않는다며 탕비실 곳곳에 맥심커피를 뿌려놓거나, 회사 행사에 개인 휴가를 쓰도록 강요하는 또라이들이 수두룩하다. 감당 안 되는 업무량에 허덕일 때도 많다. 다만 직장생활을 다시 시작하고 나서 무척 마음에 드는 변화가 느껴졌는데, 그건 상식 밖의 상황에 마주했을 때의 내 태도였다. 이젠 더 이상 상상의 세계나 다른 직장으로 도망칠 생각은 들지 않는다. 대신 이 몰상식한 인간들과 불합리한 상황을 어디까지 수용하고, 어느 선을 넘으면 싸울 것인지를 냉정하게 판단하게 됐다. 또한 한 번 떠나봤는데 두 번은 어려울까 하는 자신감은 어떤 부당한 고통도 감수하겠다는 ‘을의 마인드’를 버리도록 도왔다. 이 회사를 떠나서도 밥 벌어 먹고 살 수 있는 대안을 꾸준히 모색하는 생활습관은 덤이었다.

퇴사를 앞두고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이 글을 읽는 유리멘탈 개복치가 있다면 주변 사람들의 무책임한 훈계는 걸러들으라고 얘기하고 싶다. 특히 “어딜 가도 똑같다.”라는 말. 본인이 모든 직장에 다녀본 것도 아니고 다 똑같은지 어떻게 알까. 경험에 매몰되면 독선적인 꼰대가 되기 쉽지만, 경험에 근거하지 않은 조언만큼 공허한 것도 없다. 어딜 가도 똑같을 수는 없다. 좋고 싫음을 판단하는 기준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직장생활도 연애와 마찬가지로 하면 할수록 내 기준이 바로 선다. 중요한 부분들에 있어서 새로운 직장과 나의 궁합이 맞으면 함께 가면 되고, 그게 아니라면 뜨겁게 헤어지면 그만이다.

고통에 익숙해지는 대신 다른 가능성을 선택한 당신을 존경한다. 불확실한 미래를 감내하는 용기는 아무나 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웬만큼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이 시기가 언제 끝날지, 끝이 있긴 한 건지 알 수 없어 절망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도 알고 나도 알다시피 분명 끝은 있다. 아마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괴로운 시간은 이미 지나가 있고, 그 땐 또 다른 고민을 움켜쥐고 씨름하고 있지 않을까. 늘 그래왔듯이.

그러니까 견딜 수 없는 초라함에 잠 못 드는 밤을 보내고 있다면, 어서 쉬이 잠들길 바란다.

그래도 괜찮다. [오피니언타임스=고라니] 

고라니

칼이나 총 말고도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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