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규의 하좀하]

[오피니언타임스=한성규] 국가 부도가 날 것 같단다. 그때처럼, 심상치 않다고? 대기자 논설위원 등등 글 좀 쓰신다는 분들이 줄줄이 영화 <국가부도의 날>을 보고 글을 쓰기에 나도 보고 왔다. 시간은 많고 돈은 없는 나는 주중에 조조로 봤다. 히익? 언제 이렇게 올랐나? 내가 한국을 떠날 때만해도 4000원이었는데, 이제 7000원이라니. 자리는 텅텅 비어있었다. 매출을 극대화하려면 매년 의례적으로 가격을 올릴 게 아니라 자리를 채울 가격으로 현실화해야 않나? 이제 8000원하는 된장찌개도 그렇고, 최저임금과 오르는 월세만 탓할게 아니라 가격전략을 잘못 짜는 거 아냐? 이러니 내수가 엉망이지. 진짜 이 나라 망하는 거 아냐, 라는 생각을 간간히 하며 영화를 봤다.

틀렸다, 선동이다, 맞다, 이게 다 미국의 음모 탓이다, 영화를 본 반응은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사람들은 원래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골라 믿으니까. IMF가 우리를 힘들 게 했던 이유 큰 두 가지, 자본시장과 노동시장의 변화를 살펴보자.

‘국가부도의날’ 스틸컷 ⓒ네이버영화

이게 다 미국 탓?

먼저 IMF, 아니 그 뒤에 있는 미국 탓에 일자리 뺏기고 중산층 쪼그라들고, 우리도 다 잘 살아보세 에서 있는 놈만 잘 살게 됐다는 음모론. IMF가 미국의 사주를 받고 협상에 임했다고? 어느 정도는 맞다. 하지만 완전한 사실은 아니다. 브래턴우즈협정으로 탄생한 IMF는 원래 태생부터가 자본을 출자한 돈 많은 나라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관이다. 설립할 때 모여서 규정을 만든 나라가 다 돈 많은 나라들이다. 많이 줄었다고 해도 현재 미국의 지분만 18% 정도다. 미국의 지분이 제일 많으니 입김이 제일 셀 수밖에 없다. 게다가 유엔의 비토권처럼 어떤 의사결정을 할 때 지분이 15%를 넘는 국가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미국이 유일하다. 그냥 생돈 내겠나? 우리도 거지한테 천원씩 줄 때는 그냥 주지만 몇 천만 원씩 기부할 때는 어디 누구에게 어떻게 써주세요 하지 않나?

쉽게 생각해서 누군가 망할 때를 대비해서 공동보험을 만들 때 한 사람은 돈을 많이 출자하고 다른 사람은 거의 안 냈다고 치자. 돈 거의 안 낸 사람이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서 사업을 하다가 말아먹으려고 한다. 그때 이 보험회사가 생각이 나서 망하지 않게 돈을 좀 꾸어달라고 했다. 이 보험회사는 빌려준 돈을 받는다는 명목으로 이런저런 조건을 달았다. 주 조건은 빌린 돈으로 매일 매일 직원들 데리고 술 먹지 말고 사업하는데 쓰라는 것이다. 그리고 보험회사를 만드는데 돈을 많이 낸 부자는 이 때다 싶어서 그동안 그 사람에게 해달라고 했지만 거부당했던 이런저런 조건까지 넣었다. 물론 나빴다. 그런데 다른 놈이 더 열심히 해서 자기보다 더 부자가 되려고 하니까 이름만 합의였던 플라자 합의를 해서 반강제로 이런 것들을 뺏어간 것 보다는 낫다. 전쟁을 해서 박살을 내놓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관철하지는 않았다.

우리의 경우는 이 돈 많은 국가가 기업 우두머리들과 정부우두머리들이 흥청망청 어울려서 노는 것을 문제라고 봤고, 돈 빌려서 분식회계하고 직원들 조금 나눠주고 자기에게는 많이 나눠준 사업가들이 문제라고 봤다. 이런 것을 하지 말라는 조건을 달면서 자기들이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인 자본시장 및 자산시장 개방 조건을 슬쩍 끼어 넣었다. 하면 안 되는 일이지만 그래도 남들이 당한 것 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미국은 기축통화국이기에 우리처럼 달러를 힘들여 벌지 않고 그냥 찍어내도 되고 그냥 찍어낸 달러로 우리나라의 자본시장 및 자산시장에 투자를 해서 돈을 왕창 벌어갈 수 있는 것이다. 반칙이다. 그런데 욕만 한다고 바꿀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

드리블 못하는 축구선수가 수비수에게 공을 뺏기는 건 당연하다. 드리블 실력을 키우든지 스피드를 키우든지 거기 수비수가 왜 서 있냐고 불평만 해서는 골을 넣지 못한다. 이제 돈을 좀 번 중국도 IMF지분율을 높여보려고 하지만 IMF가 안 받아들인다. 우리나라도 IMF에 지분율을 올리려고 노력하고 직원도 취직시키고 있지만 아직 멀었다.

1998년 서울 대치동에서 열린 IMF 위기 극복을 위한 금모으기 행사에 1Kg짜리 금괴들이 접수돼있다. ©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

​한국의 노동시장

​마지막으로 진짜 짚고 싶은 곳은 한국의 노동시장이다. IMF가 구조조정을 강요해서 멀쩡히 직장 다니던 사람들 다 잘리고, 월급 삭감되고 중산층이 사라졌다는 의견. IMF때문에 대기업 직원들 치킨 집 사장으로, 편의점 사장으로 전락했다? 맞다. 근데 그 사람들이 회사에 꼭 필요한데도 내보냈을까? 일 잘하고 능력 있었으면 영화 중의 유아인처럼 자르기 전에 나간다, 이 사람들아. 진짜 능력 있었으면 달러 비싸질 때 미국직장으로 옮겨서 달러 벌어온다. 영어가 안 된다고? 대한민국 교육 탓이라고? 공부해라. 알리바바 창업주 마윈은 영어 교과서를 그냥 통째로 외우기만 하는 중국식 영어교육를 받았지만 혼자 노력해서 영어만 잘한다. 그때 잘렸던 사람들이 회사에 꼭 필요한 인재였으면 아무리 어려워도 붙잡는다.

대우에 출근 대장만 찍어놓고 놀러 다닌 해외파견 직원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아는가? 현대중공업과 현대차에 놀면서, 쉼 없이 일하는 하청직원의 서너 배의 월급을 받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지금 당장 당신들의 회사 안을 봐라. 정말 월급 백만 원도 아까운 사람들 많지 않나? 이런 사람들이 연봉 1억 가까이 받아가는 것도 모자라 이놈의 평생고용시스템 때문에 윗자리까지 차지하고 열심히 하는 직원들의 결재권까지 쥐고 방해한다.

노동의 유연성은 실행을 잘 못해서 문제지, 확대 한다고 해서 나쁜 것이 아니다. 필요 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사람들이 나가야 그 일을 진짜 좋아하고 잘 할 사람들도 들어갈 수 있다. 그 일도 싫어하고 안 맞는데 월급 받으려고 버티는 사람들은 좀 나가기 쉽게 만들어주는 게 좋은 거 아닌가? 그게 그 사람 정신건강에도 좋을 것 같은데.

대한민국의 최대 자산은 국민들

우리는 IMF의 뜻도 모르고 공공의 적으로 삼았고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를 탓했다. ​​나라를 살리겠다고 태어나자마자​ 받은 금이며 결혼할 때 받았던 금붙이까지 다 내놓았다. 우리 잘못이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동안 열심히 할 만큼 했다. 그 열심히 모은 돈으로 샴페인 좀 터뜨리고 해외여행 가는 게 뭐가 그리 잘못되었나. 양주 마시는 게 아니꼬우면 국내 양주를 개발하고, 해외여행 가는 게 꼴 보기 싫으면 대안인 국내여행개발을 해야지 그 사람들 욕만 한다고 국산 술 먹고 해외여행 안가는 게 아니다.

대통령도, 경제 관료도, 대기업대표도, 정치인도 대한민국의 경제 펀더멘털이 견고해서 안심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 사람들이 경제 펜더멘털 견고하게 만든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가 IMF구제 금융을 받고도 태국과 인도네시아와는 달리 금방 다시 살아났던 건 근면 성실한 국민들 때문이다. 견고한 대한민국의 경제 펀더멘털은 바로 국민들이다. 다시 경제가 어렵다고 한다. 나는 대한국민들이라면 금방 털고 앞으로 나아가리라 확신한다.

한성규

현 뉴질랜드 국세청 Community Compliance Officer 휴직 후 세계여행 중. 전 뉴질랜드 국세청 Training Analyst 근무. 2012년 대한민국 디지털 작가상 수상 후 작가가 된 줄 착각했으나 작가로서의 수입이 없어 어리둥절하고 있음. 글 쓰는 삶을 위해서 계속 노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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