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 위에서 쓰는 편지]

[오피니언타임스=이호준]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로터리를 도는 순간 쿵하는 소리가 났고, 저는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습니다. 상대방 역시 바로 차를 세웠습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꽤 오래 운전을 했지만 사고는 처음이었습니다. 낯선 도시였기 때문에 더욱 당황스러웠습니다. 내 잘못인지 상대방의 운전미숙인지 판단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정작 ‘사건’은 상대방 운전자를 만나는 순간에 시작됐습니다. 저보다 30년 이상 젊어 보이는 그녀는 일단 목소리부터 높였습니다.

“아저씨! 운전을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해요? 왜 멀쩡하게 가는 차를 들이받는 거예요?”

좋은 일로 만난 게 아니니 서로 인사를 나눌 것까지야 없겠지만, 첫 대면 치고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날이 선 고성이었습니다. 그녀는 차 사진을 찍으면서도 계속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순간 드는 생각은 한 가지였습니다. 아! 접촉사고가 나면 큰소리부터 치라고 배웠구나. 마치 ‘교통사고가 났을 때 피해자가 되는 법’이라는 책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운전을 시작할 때 흔히 그렇게 가르치고는 하지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 ‘뒷목을 잡고 내려라’ ‘무조건 입원해라’와 같은 조언들이 금과옥조처럼 전해집니다. 하지만 요즘은 굳이 ‘큰 목소리’가 필요가 없습니다. 승용차에는 대부분 블랙박스가 장착돼 있어서 사고원인을 정확하게 규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픽사베이

저는 일단 차를 살펴보고 사진을 몇 장 찍었습니다. 그녀의 차는 옆구리가 긁혀 있었고 제 차는 앞 모서리가 약간 찌그러져 있었습니다. 제가 우측으로 핸들을 꺾어 그녀의 옆구리를 받았거나 그녀가 제 차 앞머리를 받았다는 해석이 가능한 상태였습니다.

그동안에도 그녀의 고성은 계속 됐고, 사실 관계가 밝혀지기도 전에 저는 죄인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뒷목을 잡지 않고 내려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마침 출근시간이었기 때문에 도로는 엉망으로 얽혀버렸습니다. 그 상황에서 길 가운데 서 있으려니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습니다. 그녀에게 일단 차를 빼자고 제안했지만 목소리만 더욱 높인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내가 무슨 꼴을 당하려고 차를 빼요? 절대 못 빼요!!!”

그리고는 여기저기에 쉬지 않고 전화를 했습니다. 보험사뿐 아니라 도움을 줄만한 사람들을 불러내는 모양이었습니다. 제가 전화할 곳은 보험사가 전부였습니다. 그 팽팽한 상황을 깬 건 흔히 ‘길 위의 하이에나’라고 부르는 견인차(Wrecker)였습니다. 그들은 사고를 어떻게 그리 빨리 알고 나타나는 걸까요? 견인차 한 대가 쏜살같이 달려오더니 키 큰 청년이 내렸습니다.

“어떻게 난 사고예요?”
“글쎄요. 확인해보면 알겠지요.”
“딱 보니 저쪽 차 잘못인 거 같은데요?”

두 차의 상태를 살펴보던 그가 척 보면 안다는 듯 제 편을 들었습니다. 그러더니 중재라도 하겠다는 듯 말했습니다.
“일단 차를 도로가로 빼지요?”

그녀의 목소리가 더욱 뾰족해졌습니다.
“못 빼요. 절대 못 빼요. 경찰이 올 때까지 그대로 둘 거예요.”

견인차 청년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제게 속삭이듯 말했습니다.
“좀 이상한 사람이네요. 제가 볼 땐 저쪽 과실이에요. 병원에 가서 드러누우세요.”

허! 그가 무슨 이유로 제 편을 드는지는 모르지만, 그 정도 접촉사고에 무조건 드러누우라는 말은 사고 자체보다 더 황당했습니다.

보험사 직원보다 경찰관 두 명이 먼저 도착했습니다. 한 사람은 사진을 찍고 한 사람은 음주 측정을 하더니 양 쪽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물론 그녀는 여전히 큰 목소리로 피해자임을 주장했습니다. 경찰관들은 가타부타 말없이 차분하게 기록만 했습니다. 사무적이긴 하지만 고압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요청으로 도로가로 차를 빼자마자 양쪽 보험사 직원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경찰관들과 함께 블랙박스 기록을 확인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제 과실이 큰 사고였습니다. 제가 차선을 잘못 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과정을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요. 저는 경찰관이 설명해주는 결과를 순순히 받아들였습니다. 영상 판독 결과에 이의를 제기해봐야 결과를 뒤집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일방적 피해자라고 큰 소리 친 적도 없으니 특별히 억울하지도 않았습니다.

결국 큰 소리를 낼 일도 싸울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결과를 기다리면 됐던 것이지요. 어느 쪽도 다치지 않았기 때문에 뒤처리가 복잡할 것도 없었습니다. 차량 수리와 관련한 보험처리만 남은 것이고요. 결과가 나오자 그때까지 주변을 얼씬거리던 견인차 기사가 슬그머니 사라졌습니다. 그녀도, 그녀가 불러냈던 사람들도 응원할 기회 한번 없이 돌아가고 경찰관들도 바로 현장을 떠났습니다.

생애 첫 교통사고는 그렇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날마다 숱하게 일어나는 접촉사고를 제가 미주알고주알 기록한 것은, 뭔가 억울하다거나 제 경험이 특별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저를 몰아붙였던 상대방에 대해서도 아무 감정이 없습니다. 저라도 갑자기 황당한 일을 당하면 흥분부터 할 수 있으니까요. 다만 ‘큰 목소리’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목소리 큰 사람이 무조건 이기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또 사고가 나도 너무 당황하거나 흥분하지 말라는 말도 전하고 싶습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 숱한 변수가 있지만 접촉사고는 대부분 제가 경험한 정도의 절차로 끝납니다. 상대방의 기를 죽이겠다고 악다구니 쓸 필요 없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블랙박스 정도는 있는 게 좋겠지요.

지난해 발생한 교통사고는 21만6335건이었다고 합니다. 사고 처리된 건수가 그 정도니 실제 발생한 건수는 훨씬 많겠지요. 통계에 잡힌 것만 해도 하루 평균 600건 가까이 됩니다. 그중 단순 접촉사고가 다수를 차지한다고 할 때, 날마다 수백 명이 길 한가운데 서서 목소리를 높이고 잘잘못을 따진다면 얼마나 혼란스러울까요?

교통사고가 아닐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갈등을 큰 목소리와 우격다짐으로만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무조건 양보까지는 아니더라도 좀 더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풀어나간다면 지금보다 훨씬 따뜻한 세상이 되겠지요. 정치판은 말할 것도 없고요. 처음 겪은 교통사고가 제게 준 교훈이었습니다.  

 이호준

 시인·여행작가·에세이스트 

 저서 <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문명의 고향 티크리스 강을 걷다> 外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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