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베리아 기행 4 ]

[오피니언타임스=신세미] 스페인 빌바오에 대해 ‘잘 알 못’이었다. 신조어의 뜻처럼 잘 알지 못했다. 스페인 북부 바스크지방의 주도 빌바오라면 구겐하임빌바오미술관이 도시의 모든 것으로 잘못 알았다.

그러면서도 스페인 여행을 앞서 특히 빌바오에 마음이 갔다. 꼭 가봐야 할 미술 명소로 손꼽히는 구겐하임빌바오미술관, 프랭크 게리의 그 유명한 건물을 직접 둘러본다는 기대가 컸다. 빌바오가 세계적으로 도시 재생의 성공 사례이며, 구겐하임빌바오미술관의 이미지가 친근할 만큼 미술관을 품은 도시의 성공스토리를 듣고, 또 들었기 때문이다.

11월 초 빌바오를 둘러보며 수시로 ‘잘 알 못’을 절감했다. 항구공업도시 빌바오가 철강 조선업 등의 퇴조로 1980년대 들어 지역경제가 악화됐다가 1990년 후반 세계인이 주목하는 도시로 변모한 것은 들어서 알고 있는 대로였다. 그러나 유명미술관 하나 잘 유치함으로써 도시가 살아난 건 아니었다. 실제 빌바오에서 그 미술관은 상징적인 랜드마크일 뿐 도시 전체가 총체적으로 잘 계획된 매력적인 도시였다.

스페인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가 설계한 빌바오 신공항 터미널. ⓒ신세미

도시의 관문인 공항부터 볼거리였다. 비행기 착륙 전 창으로 내다보이는 새, 혹은 비행기 형태의 공항 터미널은 스페인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가 설계를 맡아 2000년 개장했다. 환하게 자연광을 끌어 들인 터미널 내부는 카페트 아닌, 대리석 바닥에 부분적으로 녹색을 더한 흰 디자인 의자 등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인테리어며 탁 트인 경관과 원활한 동선 등이 밝고 쾌적해 도시에 대한 기대감을 더해주었다.

빌바오의 복합문화레저 시설인 ‘아주쿠나 센트로아’. 1909년 건립된 포도주 저장고는 프랑스 디자이너 필립 스탁이 리모델링을 맡아 시민들이 즐겨 찾는 명소로 재탄생했다. ⓒ신세미
100년전 건물 '아주쿠나 센트로아'의 실내 중앙 광장. 천정에 매달린 스크린에 인공태양이 이글거린다. 붉은 벽돌 건물을 지탱하는 43개의 기둥은 소재, 디자인이 제각각이다. ⓒ신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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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방문지 ‘Az(Azkuna Zentroa-아즈쿠나 센트로아)’는 관광 유적이 아니라 시민들이 즐겨 찾는 생동감있는 생활 공간이었다. 별 생각 없이 Az의 아치형 문을 들어섰다가 탄성이 절로 나왔다. 외관은 벽돌 콘크리트 소재로 평범하지만 내부는 3층 높이 벽돌집 3동이 들어선 독특한 구조였다. 길죽한 철근 기둥 사이로 인공태양 등의 영상이 투사되는 천장의 대형 스크린 및 안쪽 만남의 광장에는 라이트 박스 형태의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1909년 건립된 와인 거래소는 용도 폐기됐다가 10년 계획과 공사를 거쳐 2010년 복합문화레저공간으로 변신했다. 도서관 영화관 수영장 피트니스센터 강당 전시장 식당을 갖췄다.

'아주쿠나 센트로아' 1층 광장의 위로 옥상 실내수영장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신세미
'아주쿠나 센트로아' 외부에 장식된 철제 탁자, 의자, 조명, 쓰레기통도 프랑스 출신 디자이너 필립 스탁의 작품이다. ⓒ신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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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옛 건물의 외관은 유지하되 내부를 완전히 바꾼 리모델링의 책임자는 프랑스 출신 디자이너 필립 스탁이다. 투명한 플라스틱 의자, 레몬 짜는 주방용품 쥬시 등으로 유명한 그는 옛 건물을 전통과 첨단이 공존하는 새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건물 외부에 설치된 탁자 의자 액자 조명 등 모양의 철제 조형물도 필립 스탁의 작품이다.

내부서 벽돌집을 지탱하는 1층의 43개 기둥도 색달랐다. 이탈리아 무대디자이너 로렌조 바랄디는 동서고금의 각종 기둥 중 43개를 골라 나무 청동 자기 돌 시멘트 등을 소재로 용 꽃 무늬 등 각양각색 디자인의 기둥 43개를 형상화했다. 1층 로비에서 옥상 수영장의 투명한 바닥 위로 수영하는 사람들을 올려다 보는 것도 이 건물의 별난 볼거리다.

몇 군데 명소를 거쳐 구겐하임빌바오미술관으로 향하며 발길이 빨라졌다. 멀리 미술관 건물이 보이고, 진입로에 강아지 형상의 제프 쿤스 작 ‘퍼피’에 다가서며 눈으로 직접 현장을 즐기느라 사진 촬영도 잊을 정도였다.

빌바오구겐하임미술관 내외부의 작품들. 외부에 설치된 제프 쿤스의 '퍼피', 루이스 부르주아의 '마망'. 내부 1층에 전시된 리차드 세라의 철 소재 작품, 쟈코메티 특별전 및 포르투갈 출신 작가 조아나 바스콘첼로스 개인전. ⓒ신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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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르비온 강가, ‘강 옆 미술관’은 티타늄 패널로 덮힌 유려한 곡선의 외벽이 빛났다. 석회암 유리가 더해진 건물의 전면 뒷면 측면이 각기 다르게 비정형으로 물고기 혹은 꽃의 형상을 드러냈다.

프랭크 게리의 설계로 1997년 완공된 미술관에선 건물의 위용과 유명세에 밀려(?) 자칫 건물 안팎의 현대미술 명작을 허투루 여길 뻔했다. 1층 홀에 영구 설치된 리차드 세라의 초대형 철 조각을 비롯, 2층 알베르토 쟈코메티 특별전 등 3개층 20개 전시실의 미술품들은 규모부터 엄청 났다.

이밖에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설계해 1995년 개통한 지하철역도 빌바오 시의 상징이다. 아르헨티나 출신 건축가 시저 펠리가 설계한 빌딩, 구겐하임빌바오미술관과 인접한 보행자 전용의 주비주리다리는 빌바오공항을 설계한 산티아고 칼라트라바의 작품이다.

강변에 자리잡은 빌바오구겐하임미술관 주변은 시민들이 즐겨찾는 도심 산책로 겸 휴게공간이다. ⓒ신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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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바오의 도시재생 스토리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시, 주 정부, 각 분야 전문가와 시민이 뜻을 모아 체계적으로 추진된 도시 재개발의 성과이지, 미술관 하나에서 비롯된 기적은 아니었다.

1983년 대홍수로 네르비온강이 범람하고 도심과 공업지역이 초토화된 뒤 1985년 도시재생협회가 설립됐다. 이어 1990년대 초반 민관협력체 빌바오메트로폴리 30, 시와 바스크 주정부가 투자한 개발공사 빌바오 리아 2000 등이 구성되면서 도시 전역에서 일대 혁신이 이뤄졌다. 도시 재생 사업은 총체적인 계획과 전략아래 강변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재개발의 핵심은 ‘시민들이 살기 좋은 도시 만들기’였다. 전통적인 공업 도시에서 문화 중심 도시를 지향하면서 미술관 건립이 핵심 프로젝트이기는 했지만 최우선 사업은 네르비온강의 수질 개선이었다. 문화와 환경을 모토로 오염된 강을 살리고 강변에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빌바오 분관을 유치하고, 산책로와 공원을 조성했다. 수질 개선 사업을 위해 구겐하임미술관 건립 예산의 6배가 넘는 8억 유로를 들였다. 산업용수 생활용수의 정화시설을 확충하고 도심 강변의 항만시설을 강 하구 바닷가로 이전시켰다. 강과 시가지사이의 폐기된 공장 지대에 녹지와 도로를 건설했다. 빌바오가 지향하는 살기 좋은 도시의 일부로서 ‘강옆 미술관’이 한결 가깝게 느껴졌다. 

또 다른 현대미술관인 빌바오미술관. 미술관 입구 정원의 인물 조각 뒤로 보이는 건물은 아르헨티나 건축가 시저 펠리가 설계한 이베르드롤라 타워. 시저 펠리는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의 건축가다. ⓒ신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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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바오미술관 아트샵에 진열된 빌바오 명소의 그림 지도. ⓒ신세미

빌바오의 구겐하임미술관 같은 랜드마크를 건립해 도시 재생을 도모하는 국내 지자체들의 사업안을 보도를 통해 접하곤 하는데, ‘잘 알 못’에 따른 시행착오가 아니기를. 빌바오의 도시 재생 성공 스토리에서 미술관은 가시적인 일부일 뿐 종합적으로 추진된 장기 프로젝트였다. 

신세미

전 문화일보 문화부장.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서 기자로 35년여 미술 공연 여성 생활 등 문화 분야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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