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렬의 맹렬시선]

[오피니언타임스=이명렬] 올해 초부터 동네에 우후죽순 코인 노래방이 생기기 시작했다. 젊은 고객이 자주 찾는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오래된 노래방들도 덩달아 리모델링을 하더니 말끔한 외관을 갖추기 시작했다.

코인 노래방의 요금은 4곡에 1000원이다. 한 곡에 250원 꼴이다. 버스 요금보다 싸니 크게 부담이 없다. 올 여름 부산에서 들른 코인 노래방도 비슷한 가격이었다. 암묵적인 전국 공통 소비자 가격인 모양이다. 코인 노래방에 들르기 전에 꼭 주머니를 뒤져 현금을 찾아놓아야 한다. 웬만한 소비는 신용카드와 간편결제로 해결 가능한 시대에 보기 드물게 올드한 공간이다.

현금을 들고 지하 노래방으로 내려간다. 청소년은 10시 이후 출입금지, 주류 반입금지라는 팻말도 보인다. 입구에 들어서면 지하 공간 특유의 무거운 공기와, 둥둥대는 스피커 소리가 훅 들이친다. 게임 속 지하 던전의 입구같은 묘한 음침함이 매력적이다. 카운터에서 마이크에 씌울 위생 커버를 하나 집어든다. 그리고 비어있는 방 중 가장 으슥한 공간을 찾아 들어가면 된다. 문을 닫으면 1평 남짓한 크기에 오롯이 나만을 위한 공간이 생긴다. 곡당 250원짜리 콘서트장이다.

ⓒ플리커

일반 노래방처럼 시간에 쫓기지도 않는다. 1분 남겨놓고 굳이 히트곡 메들리를 넣는 수고로움도 없다. 단골인 척 서비스 요금 달라는 불편함도 없다. 1000원 한 장을 집어넣고 원하는 노래를 천천히 고르면 된다. 재촉하는 이도 없다. 선곡이 별로라고, 노래를 못 부른다고 비난하는 이도 없다. 코인 노래방의 선곡은 일반 노래방의 선곡 기준과 궤를 달리 한다. 코인 노래방은 일반 노래방에서 부르기 애매하거나, 불러서는 안 되는 이른바 금지곡들을 불러줘야 제맛이다.

회식 후 일반 노래방에서 부르는 노래는 기승전결 드라마 대본처럼 순서와 곡 선정에 규칙이 있다. 시작은 무조건 접대용 노래다. 자리를 옮긴 뒤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노래다. 얼추 가사도 다 외우고 춤도 완벽히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 걸쭉한 남진의 트로트와 싸이의 댄스 노래 정도면 적절하다. 흥겨운 노래로 분위기가 달아오르면 자랑용 노래가 등장한다. 자신의 가창력을 어필할 수 있는 이른바 18번 노래다. 여자들은 이은미, 소찬휘, 거미 등이 예약되기 시작하고, 남자들은 임재범, 윤도현 등 수컷 냄새 가득한 목소리가 등장한다. 분위기가 무르익은 후반부에는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화합 가요가 필요하다. 화합용 가요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공감’이다. 모든 세대를 아우르고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여야 한다. 전 연령을 아우르는 쿨, 김건모, 이문세 정도의 선곡이면 무난하다.

위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노래는 ‘갑분싸(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해짐)’를 불러일으키기에 유의해야 한다. 오래된 명곡은 함께 흥얼거릴 수 있지만, 애매한 히트곡이나 비주류 장르의 노래를 부른 뒤 차갑게 가라 앉은 분위기는 다시 살리기 어렵다. 게다가 4~5명이 노래방에 가서 1시간을 즐겨도 한 사람이 부를 수 있는 노래는 최대 5~6곡이다. 선곡에 신중해야 한다. 이 마저도 전주는 점프해야 하고, 2절은 눈치껏 불러야 한다. 모임에 가창력 좋은 사람이 있다면 선곡은 더욱 어려워진다. 히트곡 몇 소절을 따라 부르고 탬버린을 치다 보면 예약한 시간이 끝나기 마련이다. 당최 성에 차지 않는다.   

코인 노래방에서는 일반 노래방에서 금지된 노래들을 순서 상관없이 마음껏 부를 수 있다. 비주류 인디 음악이나, 찢어질 듯한 고음이 이어지는 있는 록 발라드도 당차게 선곡할 수 있다. 목소리가 갈라지고 음 이탈이 나고 영어 발음이 촌스러워도 된다. 자기만족을 위한 콘서트 장이다. 내 귀가 청중이고 내 목이 마이크다.

나만의 콘서트는 역사가 제법 오래되었다. 10여년 전 노량진에서 공부할 때도 코인 노래방이 있었다. 3층 오락실 한 쪽에 가벽식 형태로, 환풍기도 없는 열악한 구조였다. 마이크에선 역한 찌든 내도 났다. 불안한 미래에 우울할 때면 들어가 노래를 부르곤 했다. 시궁창 같은 현실과 불안한 미래 속에서 악에 받쳐 노래를 불렀다. 직장인이 되면서 코인 노래방은 점차 멀어졌다.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일이 많아졌고 점차 노래는 ‘일’이 되어 갔다.

코인 노래방의 진정한 가치는 저렴한 가격도, 말끔해진 인테리어도 아니다. 혼자서 즐기는 오롯한 일탈이 가장 큰 매력이다. 나만의 맛집, 나만의 여행지, 나만의 책처럼 나만의 노래를 부르고 즐길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나를 위해 부르는 노래가 공허한 메아리 같기도 하지만, 노래를 부르는 그 시간만큼은 나만의 것이다. 코인 노래방의 주 소비층이 10대~20대라고 하지만, 나 같은 30대가 즐기기에도 무리가 없는 공간이다. 250원에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이 마냥 고마울 따름이다. 여전히 미래는 불안하고, 주변의 코인 노래방이 얼마나 흥할지도 모른다. 다만 250원짜리 콘서트에서 나의 노래를 찾고 부르며 나 스스로를 애써 다독여 본다.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

이명렬

달거나 짜지 않은 담백한 글을 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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